[이승훈]데리다의 원리
해체주의의 등장
이상에서 간단히 살핀 구조주의와 기호학은 현대시에 끼친 현대
언어학의 일반적인 양상으로 수행된다. 그러나 현대시 나아가 현대
문학의 이론은 1966년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강연한 프랑스 철학자
데리다의 영향을 받으면서 새로운 특성을 보여준다. 데리다는 그가
강연한 '인문과학의 담론에 있어서의 구조. 기호, 놀이'라는 논문과
'문법학'이라는 책에서 기호와 구조라는 개념이 언어와 텍스트 해석
의 전통적 사고가 보여주는 균열을 땜질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고
주장하면서 소쉬르와 레비 - 스트로스의 구조주의와 기호학을 비판
한다.
데리다가 개척한 개념적 탐구 양식은 하버드에서 교육 받은 벨기
에 태생의폴 드 만이 발전시킨 수사학적 탐구 양식과 더불어 언어
형성에 관심을 두는 해체적 분석의 보리고 기여한다. 데리다와 드
만의 작업을 종합하고 이런 해체주의의 이점을 강조하면서 힐리
스 밀러는 70 년대 중엽에 미국 해체 비평을 대표하는 주요한 대변
인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실제로 밀러는 블룸, 드 만, 데리다, 하트만,
그리고 자신을 포함하는 초기 예일 학파의 작업이 보여주는 미덕을
주로 선전하고, 프랑스의 롤랑바르트, 들뢰즈, 푸코. 라캉, 미국의
도나토, 제프리 멜만. 리델, 스피박 같은 후기 구조주의자들의 업적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밀러가 수행하는 해체적 비평은 문학 걸작들로 알려진 규범적 텍
스트에 초점을 두며, 초기에는 폭넓게 인식된, 철학, 정신분석학, 프
랑스 후기 구조주의를 배제한다. 이렇게 순화된 해체주의 혹은 협의
의 해체주의는 '절충적인; 해체주의자들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
하다.
데리다는 '문법학'에서 소쉬르의 구조주의가 서구 철학, 곧 플라톤
과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하이데거와 레비 - 스트로스에 이르는 서구
형이상학적 체계의 최종단계가 보여주는 몸부림으로 규정한다. 데리
다에 의하면 이런 형이상학적 체계는 이른바 '이성줌심주의'로 불린
다. 이성중심적 전통은. 데리다가 묘사하는 바에 따르면, 언제나 진
리의 기원을 고로스, 곧 말해진 낱말, 이성의 소리, 신의 언어데 둔
다. 더욱 모든 실체의 존재를 결정한느 것은 '현존'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과학과 형이상학의 탐구 대상은 언제나 '현족적 실체'로 간
주된다.
이런 문맥에 의하면 인간의 목소리가 환기하는 충만한 현존은 글
쓰기가 환기하는 소리 없는 기호에 비해 높은 가치가 있다. 사실 글
쓰기는 전통적으로 2차적인 말하기, 목소리를 전달하는 수단, 충만
한 현존을 대치하는 도구로 인식되어 왔다. 글쓰기는 말하기가 전락
한 2차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이성중심주의는 글쓰기를 말하
기에 종속시킨다. 특히 이런 사실은 음성적 글쓰기, 곧 목소리를 모
방하는 글쓰기를 우선하는 경우 더욱 강조된다.
이런 '음성중심주의'가 보여주는 역동성은 모든 역사적 문화적 모
체로 가치론적 대립을 전제한다. 이를테면 목소리/글쓰기. 소리'침
묵, 존재/무, 의식/무의식, 안/박, 내면/외면, 실재/이미지, 본질/
외양, 진리/허위, 현존/부재, 기의/기표의 대립이 그렇다. 서로 대
립되는 두 항 가운데 첫째 항이 이성중심주의적 전통 속에서는 중심
적인 위치를 점유한다. 데리다에 의하면 소쉬르적 구조주의, 나아가
트루베츠코이, 야콥슨 기타 다른 구조주의는 모두 이런 인식론적 체
계 혹은 모체 속에 자리잡고 있다.
구조주의를 비판하면서 데리다는 언어의 기원이 말하기가 아니라
글쓰기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 점에서 데리다적 문법학은 소쉬르
의 기호학을 대치한다. 그에 의해 확장된 개념에 의하면 글쓰기는
차별성, 분절, 공간화의 실천을 의미한다. 이렇게 새로운 의미로 이
해될 때 글쓰기는 법률문서로부터 꿈의 회상, 나아가 숲길 내기라는
모든 형식을 포괄한다. '일반화된 글쓰기', 혹은 '원형적 글쓰기'라는
개념을 사용하면서 데리다는 전통적 이성중심주의가 강조하는 양극
성의 위계질서를 역전시킨다.
그에 의하면 이 양극성은 글쓰기/목소리, 무/존재, 무의식/의식,
기표/기의의 형식이 된다. 예컨대 기표 - 기의의 경우 전통적 음성중
심적 - 이성중심적 체계에서는 목소리와 진리, 목소리와 의미가 동일
시된다. 따라서 글쓰기가 보여주는 침묵적이고 무의식적이며, 공간
적인 차별성을 강조하는 조작은 억압되며, 이성중심의 시대에는 기
호를 생산함에 있어서 본질적으로 작용하는 공간화, 차별성, 그리고
기호를 형성하는 존재하지 않는 것, 곧 일동의 부재는 은폐된다, 데
리다의 시도는 부분적으로 이렇게 숨어 있지만 기호를 생산함에 결
정적인 역할을 하는 조작적이고 파괴적인 힘을 긍정하고 활동케 하
려는 데에 있다. 데리다의 용어들 가운데 '부재', '차별성', '공간화'
는 열쇠가 되는 용어들이다.
[인문과학의 담론에 있어서의 구조, 기호, 놀이]라는 논문에서
데리다는 이른바 구조라는 이성중심적 개념을 비판한다. 구조는 언
제나 중심이라는 개념에 의존하며, 또한 이 개념을 요구한다. 여기
서 중심이란 그 체계가 형이상학적, 언어학적, 과학적, 심리학적, 경
제학적, 정치적, 신학적 체계 가운데 어느 것이든 관계없이 체계 속
의 여러 요소들을 안정시키는 기능을 한다. 모든 전통적인 '중심'이
수행하는 것은 동일한 목적, 곧 언제나 '현존'으로서의 '존재'를 결정
하는 일이었다. 말하자면 존재론적 토대는 중심이라는 개념이며, 이
중심이 구조적 모체가 된다.
아무리 광활하고 복잡한 것이라 하더라도 모든 이성중심적 체계
의 경우 그 구조의 중심은 균형, 수미일관성, 조직을 보장하며, 따
라서 구조를 형성하는 여러 요소들을 규제하는 일정한 중심을 전제
로 한다. 그러나 데리다는 모든 구조를 안정화하는 일련의 역사적
계열을 이와 비슷한 구조적 역활을 하는 일련의 은유와 환유로 간주
한다. 그에 의하면 중심이란 장소, 자리, 실제가 아니라 그 목적이
구조를 지향함에 있고 그 역사가 개념들이나 기호적 대치들의 사슬
로 구성되는 '체계적 기능'이라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중심이란 실체
나 일정한 장소가 아니라 기능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결국 역사
적으로 존재한 일련의 이런 중심적 기의, 혹은 초월적 기의는 구조
적 필연성과 유동하는 기표의 놀이 속에 붕괴한다.
폴 드 만의 경우
데리다가 기호학과 문법학, 기호와 차이, 이성중심주의와 음성중
심주의, 글쓰기와 공간화, 구조, 중심, 놀이, 나아가 프로이트, 소쉬
르, 레비 - 스트로스에 대해 말하고 있다면 폴 드 만(Paul de Man)
은 이런 화제나 개념, 혹은 인물들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그의 중심 용어로는 '언어'와 '수사학'이 있다. 언어와 수사학에 대한
그의 개념은 1973년 니체의 수사학 이론에 대해 언급하면서 드러난
다. 니체는 수사학 연구를 웅변과 설득의 방법으로부터 비유의 중심
이론으로 전환시켰다. 니체에 의하면 '비유란 언어에 마음대로 첨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언어로부터 마음대로 추상화할 수 있는 것
도 아니다.'
드 만은 이런 니체의 주장을 일반화한다. 그에 의하면 언어의 계
열적 구조는 재현적 의미보다는 수사학적 의미를 노린다. 이런 주장
은 언어의 정통성이 비유라는 언어 내적 토대가 아니라 언어 외적
지시물 혹은 그런 변별적 자질로서의 이런 '수사성'은 이른바 진리라는
개념을 필연적으로 붕괴시키며, 지시물로부터의 이탈이라는 현기증
나는 가능성의 세계를 개방한다. 따라서 언어적 기호는 지시적 의미
와 비유적 의미의 고통스러운 관계 혹은 양가적인 관계가 전개되는
자리로 인식된다.
기호에 대한 이런 인식은 주제 중심의 해석이 아니라 이른바 수
사학적 해석을 불러온다. 드 만의 경우 새로운 비평은, 그렇기 때문
에, 무주제적 비유적 비평, 혹은 해체적 수사학이 된다. 궁극적으로
드 만의 수사학 이론이 노리는 것은, 데리다의 글쓰기라는 개념이
그렇듯이, 해석에 있어서 파괴적이고 탈중심적인 힘을 해체와 도구
로 삼으려는 노력이다.
이상에서 이른바 해체주의 혹은 후기 구조주의가 현대문학 이론
에 끼친 영향을 간단히 살펴보았다. 미국의 경우 특히 해체주의는
흔히 예일 학파에 의해 주도된 느낌이 든다. 예일 학파의 문학 이론
에 대해서는 계간[현대시 사상](1990, 겨울호)에서 특집으로 정리
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제대로 다루지 못한 이들의 이론, 나아가
프랑스 후기 구조주의자들의 견해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을 요구하므
로 이 자리에서는 생락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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