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야콥슨의 시학
언어의 시적기능
시적 담론이 보여주는 기호학적 특성은, 이땅에도 널리 알려진 것
처럼, 러시아 태생의 언어학자인 로만 야콥슨에 의해서 과학적으로
해명된다. 야콥슨은 1915년부터 1920년까지 러시아의 모스크바
언어학회를 주도한다. 그후 1927년부터 1938년까지 체코의 프라그
언어학회의 부회장으로 활동한다. 그는 그후 미국으로 옮겨와 1940년
대에는 컬럼비아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50년대와 60년대에는 하버드
대학과 M. I. T. 에서 동시에 강의를 했으며, 70년대에는 다른 여러 대학
및 연구소에서 강의와 연구를 했다. 그는 러시아 형식주의와 구조주의의
대표적 이론가로 꼽힌다.
시의 연구에서 그가 보여준 두드러진 특성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시적 텍스트에 대한 면밀한 구조분석, 다른 하나는 언어의
시적 기능에 대한 일반 이론이다. 전자는 구조 인류학자인 레비 - 스
트로스와 함께 수행한 '보들레르의 고양이 분석'이 대표적이며, 후
자는 1958년 발표한 '언어학과 시학'이 중심을 이룬다. 이 논문
은 언어의 시적 기능을 새롭게 해명한 것으로 소쉬르의 언어학에 토
대를 두고 있다. 특히 체4계로서의 언어는 두 가지 관계, 곧 통합적
관계와 계열적 관계에 지배된다는 소쉬르의 원리에 토대를 둔다.
이 논문에서 야콥슨은 언어적 교통을 가능케 하는 여섯가지 요
소를 나누고, 그에 상응하는 여섯가지 언어적 기능에 대해 말한다.
전자로는 발신자, 수신자, 문맥, 접촉, 코드, 메시지 등 여섯 요소이
다. 모든 언어적 교통은 이 요소들이 존재함으로써 가능하다. 그러
나 이상의 여섯 요소 가운데 어느 요소가 강조되느냐에 따라 언어의
기능은 달라진다. 발신자를 지향하는 경우에는 정서적 기능, 수신자
를 지향하는 경우에는 사역적 기능, 문맥을 지향하는 경우에는 지시
적 기능, 접촉을 지향하는 경우에는 친교적 기능, 코드를 지향하는
경우에는 메타언어적 기능이 나타난다. 시에서 읽을 수 있는 언어의
기능은, 그에 의하면, 이상의 다섯 가지 기능이 아니다. 언어의 시
적 기능은 언어적 교통을 구성하는 나머지 한 요소, 곧 메시지를
지향할 때 드러난다. 이런 언어의 기능을 그는 시적 기능이라고
부른다.
메시지를 지향하는 언어란 무엇인가, 메시지란 흔히 일컬어지는
언술 내용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여기서는 에컨대 '하늘은 푸르다'고
말할 때, 말하는 행위자체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이 언술 속에는,
찬찬히 분석하면, 발신자, 수신자, 문맥, 메시지가 존재한다. 다시
말하면 이 언술은 '나는 하늘은 푸르다고 너에게 말한다'라고 분석
된다. 문맥이란 여기서 발신자와 수진자가 서 있는 환경, 혹은 발신
자가 지시하는 대상을 의미하고, 메시지란 그런 말을 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메시지를 지시하는 언어란 언술의
내용이 아니라 말하는 행위를 중시하는 태도를 뜻한다. 기표와 기의
의 관계를 도입하면 그것은 기표와 기의의 심연이 깊어지는 관계,
마침내 기의가 아니라 기표의 투명성이 강조되는 경우를 뜻한다.
그러나 한 편의 시는 이런 시적 기능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다른
언술들이 그렇듯이 시적 담론 속에도 위에서 말하 다른 기능들이 존
재한다. 그러나 역시 지배적인 것은 이른바 시적 기능이다. 그런 점
에서 한 편의 시는 시적 기능을 나타내는 언어가 중심이 되면서 다
른 기능을 보여주는 언어와 일종의 위계적 질서를 형성한다. 이때
지배적인 요소를 구조주의자들은 지배소라고 부른다.
또한 야콥슨은 언어적 기능의 위계적 질서를 중심으로 인습적인
시의 장르를 검토한다. 그에 의하면 서사시는 전형적으로 3인칭 담
론을 지향하면서 지시적 기능과 동시에 시적 기능을 내포한다. 그러
나 서정시는 1 인칭 담론을 지향하면서 시적 기능을 중심으로 정서
적 기능, 혹은 표현적 기능을 황성화한다.
그가 말하는 시적 기능이란 크게 세 가지 인자로 요약된다. 그것
은 첫째로 메시지, 곧 언술행위 자체를 지향하는 것, 둘째로 지시적
기능을 모호하게 만드는 것, 셋째로 모든 언어학적 수준에서 이에
대응되는 구조를 잠재적으로 지향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여기서 말
하는 언어학적 수준이란 음성학, 형태론, 어휘론, 통사론, 나아가 의
미론을 포함한다.
시와 비시의 차이
이런 시적 기능은, 그의 말에 따르면, '기호의 투명성을 증대시킴
으로써 기호와 대상의 기본적인 양분성을 심화시킨다.' 이런 시적
기능은 회화, 영화, 발레, 음악 등에 나타나기 때문에 단순한 언어
학이나 시학이 아니라 이른바 일반 기호학의 문맥에서 연구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에 의하면 시와 비시의 차이에 대한 질문은 근본적
으로 언어학적 질문으로 환원되며, 따라서 언어학의 용어로 기술될
수밖에 없다. 시는 시만의 독특한 언어적 속성을 소유하는 것이 아
니라 언술 행위 자체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시가 아닌 것들과 구별
된다.
시적 담론의 구조가 일상적 담론의 구조와 다른 점 역시 언어학
을 토대로 해명된다. 소쉬르에 의하면 일상적 담론은 수직의 축에서
낱말들을 선택하여 수평의 축에서 결합한다. 말하자면 계열체에서
선택된 낱말들을 등가성의 원리라는 말로 규명하고, 통합적 관계에
있는 낱말들을 접촉성의 원리라는 말로 규명한다. 따라서 그에 의하
면 일상적 언어 체계가 보여주는 선택의 법칙은 수직의 축에 있는
등가성의 원리를 따른다. 야콥슨은 이런 사정을 선택의 축과 결합의
축이라는 용어로 단순화하고 있다.
그러나 시적 담론의 경우에는 이런 법칙이 파괴된다. 왜냐하면 시
의 경우 그 낱말 결합의 법칙이 등가성의 원리를 따르고 있기 떄문
이다. 예컨대 권기호 교수가 인용한 바 있는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는 시행의 경우 '꽃'이라는 낱말과 '붉은 울음'이라는 낱
말과 '울었다'라는 낱말은 서로 등가성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시적 시능이란, 야콥슨의 정의에 따르면, 등가성의 원리를
선택의 축에서 결합의 축으로 투사한다. 쉽게 말하면 모든 시는 접
촉성의 원리가 아니라 등가성의 원리에 의해 낱말들이 결합된다. 그
는 이런 기능이 낱말들의 결합, 곧 통사론의 수준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음성학, 음운론, 형태론, 어휘론, 나아가 의미론의 수준에도
적용된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런 시적 기능과 그 보기를 '시작법'
(문학가 비평사)에서 설명한 바 있고, 최근 이형기 교수 역시 '시
에 대한 언어학적 접근'(월간'현대시'1992.6)에서 그 원리를 설
명한 바 있다.
[이승훈]-'모더니즘 시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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