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 잎에 가을이 머뭇거리는 사이
한영수
시내버스를 탔다 뜬금없이
광화문에서 정릉 가는 길을 붙잡아
경복궁을 지나고
뒤로 뒤로
환기미술관을 지나고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
시린 별 같은 것이나
생각하면서 눈은 맑아
의자처럼 앉아서 아무 생각도 안하면서
때가 되면 버스는
나를 종점에 내려놓으리니
어디만큼 왔나
얼마를 더 가야 하나
낯선 거리
두리번거리지 않아도
때가 되면 저절로
시간의 버스는
모가지가 무거운 계절의 종점에
나를 내려놓으리니
햇님유치원 산장설비 청수약국 같은
쓸데없는 간판이나 찬찬히 읽으면서
저기 떨어지는 해처럼
한 줄 남은 영혼의 눈썹이나
높아 외로운 봉우리에 그려보면서
북한산 자락을 에돌고 돌아 아직
가을이 가로수 잎에 머뭇거리는 사이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환기 1970년 뉴욕전.
—《미래서정 13호》 2024.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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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수 / 전북 남원 출생. 2010년 《서정시학》으로 등단. 시집 『케냐의 장미』 『꽃의 좌표』 『눈송이에 방을 들였다』 『피어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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