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태전*을 덖다 (외 1편)
김성신
차마 멀어지는 것들 뒤로
낯익은 죽음이 젖은 손을 흔든다
나는 지금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도
육신이 뜯겨나가는 엽록의 生을 본다
그것은 새로운 옆을 향해 손을 모으고 아침을 맞는 일,
잘록한 옆을 기꺼이 내주는 것
두 눈을 뾰족 세운 채
촘촘히 쓸어 모은 근심을
소나기로 내려
서늘한 울음으로 깔았지
그늘이 말린 찻잎 절구로 찧어내는 손끝에
봄 내내 뒹굴던 볕 잘게 부서지고
잎맥을 떼어낼 때마다
아프단 말은 가루가 되어 갔지
바스락거리다 이내 주저앉아 곁이 되었어
멀어지는 순간을
둥글게 말려 구멍을 뚫은 뒤
이끼들 사라진 시간으로 입히면
그늘은 푸름을 껴안고
버려진 말들도 모닥모닥 발효시키겠지
잘 썩은 사람의 겨드랑이에서 나는 풀냄새를
오래도록 맡고 싶은 저녁
그때, 그늘은 온전하게 한 땅을 거느릴 테지
도란도란 저녁 무릎에 앉히면
저물어가던 귀가 말갛게 씻기는 거지
스치듯, 눈을 말려 묻는 거지
먼 속까지 그윽하게 번지며
떫은 일을 묻는
온전한 향기의 권역
*전남 장흥에서 찻잎을 쪄서 동근 틀에 넣어 모양을 굳힌 뒤 구멍을 뚫어 만든 녹차
—《시사사》 2024년 여름호
내림 마장조
막연하게 무엇이든
나로부터 멀어져야 할 것들을 찾았어요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구름을 언어로 분리한 채
하이든 트럼펫협주곡 3악장
웃지 않고 서있는 미루나무
얼음, 발자국, 목구멍이 사라진 목소리
더는 할 말이 없을 때까지 손을 휘젓다 빠져나가는 것들
장문의 편지를 입에 물고
밤을 넘어
암울한 날들을 기도의 지층으로 걷는다
서로 본 적 없었다는 혼잣말에 놀라
도착하지 않는 그녀를 돌아 걷는데
계단을 생략한 ‘오늘’의 포석
붉게 잇몸 부어오르는 기분을 가지런히 교열할 수 있을까
곤줄박이 바짝 매달려 나무 모서리를 통과하고
멀어지는 너를 잡기 위해
청음은 다시 분주해지고
눈 쌓여 드러난 발자국이 얼마나 다행스런 진술인지 들여다본다
최선이 불결해지는 곳에 몰입되지 않으려고
가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양손을 쥐었다 폈다
두렁에 몰딩을 씌워가는 그림자는 왜 울고 있는지
기억이 골똘해진 생각을 따라간다
이 음악의 여행은 빠르고 다소 익숙해
호흡기를 떼어낸 채 흐느적거린 어깨를 붙잡고
바람을 태중으로 키우는
아직, 겨울인 봄
—《생명과 문학》 2024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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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신 / 전남 장흥 출생. 2017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시 등단. 광주대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문학박사. 시집 『동그랗게 날아야 빠져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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