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염소의 저녁
김명리
어른어른한 물그림자 같은
땅 속의 거미들이
고요의 한가운데까지 몰려오는 이런 저녁엔
잘못 들어선 봄의 모퉁이 같은
중국식당에서
혼자 짜장면을 먹는다
채마밭이 한눈에 들어오는
거름냄새 풍기는 국도변의 중국집엔
손님이라고는 나 혼자뿐
어딘지 모르게
낡은 예배당 기우뚱한 첨탑 같은 벼랑끝에서
그토록 오래 서성이면서
결코 뛰어내리지는 않는
한 마리 검은 염소의
길다란 동공 같기만 한
검은 국수를 먹는다
꽃도 아직이고 잎도 아직인 봄날 저녁에
ㅡ계간 《시인시대》(2024,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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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리 / 1983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물 속의 아틀라스』『물보다 낮은 집』『적멸의 즐거움』『불멸의 샘이 여기 있다』『제비꽃 꽃잎 속』『바람 불고 고요한』. 산문집 『단풍객잔』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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