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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향기로 말을거는 詩

응급실 가는 길 / 김행숙

by 丹野 2024. 11. 8.


응급실 가는 길

   김행숙



올여름은 모든 게 다 체온과 비슷하게 35도, 36도, 37도쯤에 매달려 있어. 삐죽삐죽한 초록, 초록, 초록의 잎들도 38도쯤.
상갈파출소 사거리의 신호등도 39도쯤.
붉은 신호등처럼 피에 젖은 단 한 사람의 눈동자도 39.5도쯤.
축 늘어진 아이
를 업고 세상은 응급실에서…… 응급실로 뺑뺑이를 돌고 있어.
만져지는 것들이 다 피 같고 피떡 같고…… 제기랄, 나는 내가 더러운 누비옷 같은데 벗겨지지 않아 질질 끌리네.
또 한숨도 못 잤어. 잠을 못 잔 사람들이 40도의 잠 속을 걸어 다니는 것 같아. 거리에서
너를 사랑했던 이유로 너를 미워하고……
여름을 좋아했던 이유로 다 함께 정오의 여름을 증오하며
그늘을 찾아서 두리번거리던 사람들이 물끄러미 자기 그림자를 응시하는 순간이 있어.
그것은 가장 짧은 그림자.

그러나 긴 다리를 녹슨 가위처럼 벌리며
계속 달리고 있다.



     —사이버문학광장 《문장웹진》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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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행숙 / 1970년 서울 출생. 1999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사춘기』 『이별의 능력』 『타인의 의미』 『에코의 초상』 『1914년』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