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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향기로 말을거는 詩

데트라포드 / 이정연

by 丹野 2024. 10. 12.


테트라포드

   이정원



어떤 격정이 길길이 파랑을 몰고 왔나

누군가에게 가닿아야 할 슬픔이
여기 와서 부딪혀 위로가 될 때
흰 거품을 물고 소스라치던 불량기 많은 바람은
너울성 울음으로 낮춘다

당신은 그 해변에 엎드린
테트라포드

모호한 시구처럼, 난해한 눈빛처럼
묵묵한 일탈의 부름켜로
조각달 같은 목선 한 척을 띄웠는데
난파된 낱말들의 잔해가
일몰의 장엄 속 수묵으로 번지는 것을 보았다

가는 게 세월인지
오는 게 세월인지
흐르는 게 세월인지
수평의 구도로 아득아득 저물다가

습관성 목마름으로 구겨져서
당신 앞에 서면
세월은 물굽이대로 이리저리 휘늘어지면서
이렇듯 발작적으로 부딪는 것이다

이끼 같은 내 마음의 더께를 더 부리지 못하고
철썩철썩 당신의 뺨만 파랗게 치다가
저물어가는 망상의 해변 저쪽으로
낡은 어제를 힘껏 구겨 던지는 것이다

당신의 어깨가 느릅나무처럼 견고해서
해변은 종일 술렁인다

파랑, 파랑
무작정 치닫는 소란이
그리움 낭자한 집어등을 켠다


                  ―계간 《가히》 2024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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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원 / 경기 이천 출생. 2002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 2005년 《시작》 등단. 시집 『내 영혼 21그램』 『몽유의 북쪽』 『꽃의 복화술』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