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수지맨드라미
김경성
어떤 바람이 물갈퀴를 들고 휘몰아쳐 왔어요
물에 몸을 맡기고 물의 숨 사이로 들어오는 빛으로 살아가요
닻별이 뜨는 밤이면 모난 달도 긴 목을 내밀어서
얼굴을 대어보기도 해요
바다는 수평선을 다 지우고 소리로 말하지요
덧대어 살아갈 수 없는 혼자만의 방에 갇혀 살았어요
바닷속에서 붉게 피어 세상을 바라보고 싶었어요
깊이 내려갈수록 점점 섬이 되어갔어요
물 바깥에 사는 여우꼬리맨드라미, 깃털맨드라미, 불꽃맨드라미
한 번도 물러보지 못한 이름들
먼 종족을 알고 싶어 자꾸만 몸을 불려 나가지요
바닷속을 들여다보아요 붉은 꽃치마가 일렁여요
빛물고기 떼가 숨어들고 있어요
깨금발을 디뎌봐도 찾는 것들은 너무 멀리 있어요
바위에 안착한 뿌리를 하나씩 떼어내고
수평선에 가닿으면
목까지 차오른 이름 하나
불러볼 수 있을까요
- 월간《모던포엠》2024년 4월호

밤수지맨드라미 - 검샥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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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침에 박힌 별
김경성
풀밭에 밀서를 쓰며 오래 서성이던 야크 떼가
지나가는 바람의 모서리를 되돌린다
천천히 오는 저녁이 옷고름을 풀어 별을 들이는 사이
언덕을 넘어갔던 말言들도 돌아오고
종이 등을 켜놓은 듯 환한 게르는
밤이 되면 흰빛을 지우고
중심에서 쏘아 올린 굴뚝으로 연기를 내보내며
별의 이마를 어루만진다
수많은 은침 끝이 심장에 닿아서 내는
아픈 소리의 빛으로
밤하늘은 빛난다
게르 문을 열어놓고 돌아온 말言들을 궁굴린다
은침에 박힌 별들의 심장이 뛰는지
밤하늘이 온통 짙푸르다
- 월간《모던포엠》2024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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