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와 여자 / 김경성
나비 날개를 책 속에 묻어두고
어디에 닿고 싶을 때면 손등에 올려놓았다
소리가 밀려 나오는 입술을 닫고 구름 속으로 드나들며
쉽게 오지 않는 것들을 기다렸다
창문 앞에 멈춰 섰지만
당신은 책의 문장 속으로 들어가 기척이 없고
창틈으로 새어 나오는 오일 냄새 밴 불빛을 눈에 들여
오래 꺼지지 않기를 바랐다
가스등을 끄고 가는 사람이 오기도 전에
달의 어금니를 벌려서 빛을 들였다
손등에서 날아간 나비가 점점 번져서 떼로 날아다녔다
온 세상이 나비 흰 날개로 뒤덮였다
꽃이 다 지고 속으로 꽃눈 채우는 한겨울이었다
은촛대를 닦으며 그 저녁을 기다렸다
식탁에 마주 앉아 기도드리던 먼 시간을 불러보았다
- 《미네르바》 2024년 봄호
가스등을 켜는 사람
가스등을 켜는 사람 - 옮겨 옴
#나비와 여자 #김경성 #미네르바 2024년봄호 #가스등 #중세의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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