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기분
조용미
무언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비 그친 뒤의
숲으로
우산을 두고 갔는데
누가 부르는 것 같았는데
그게 저 수없이 겹겹 총상꽃차례로 피어있는
만첩빈도리일 줄은
더듬더듬 아는 덜꿩나무 근처로 갔는데 꺼끌꺼끌한 그 잎을 그냥 만져볼까 했는데
빗물에 번쩍이는 초록 잎들의 숨을
나도 쉬어볼까 했는데
흰 털 보송한 종 모양의 꽃받침
길게 나와 있는 암술머리의 연두색
여린 붉은색 줄기가
이제 마주 보는 얼굴이 되었다
모든 세부적인 것을 알아차리는 마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
나뭇가지에 아래 들어 흰 꽃들을
올려다 본 순간
속눈썹에 빗물이 떨어졌는데
—사이버문학광장 《문장 웹진》 2023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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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미 / 1962년 경북 고령 출생. 1990년 《한길문학》으로 등단. 시집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일만 마리 물고기가 산을 날아오르다』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 『기억의 행성』 『나의 다른 이름들』 『당신의 아름다움』.
출처 / 푸른 시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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