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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향기로 말을거는 詩

애월 / 서안나

by 丹野 2022. 12. 21.

애월

   서안나



나는 밤을 이해한다
애월이라 부르면 밤에 갇힌다
검정은 물에 잘 녹는다

맨발로 돌 속의 꽃을 꺾었다
흰 소와 만근의 나무 물고기가 따라왔다

백사장에 얼굴을 그리면
물로 쓰는 전언은 천 개의 밤을 끌고 온다
귀에서 꽃이 쏟아진다
내 늑골에 사는 머리 검은 짐승을 버렸다

시집에 끼워둔 애월은 눈이 검다
수평선에서 밤까지 밑줄을 그어본다
검정은 물에 잘 녹는다
검정은 어디쯤에서 상심을 찢고 태어나나

나는 오늘부터 저녁이다


           ⸻계간 《불교문예》 2021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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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나 / 1965년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 1990년 《문학과 비평》에 시 등단. 시집 『푸른 수첩을 찢다』 『플롯 속의 그녀들』 『립스틱 발달사』. 평론집 『현대시와 속도의 사유』.


출처  / 푸른 시의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