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어두운 부분 / 조용미

초록의 어두운 부분


   조용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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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나뭇잎에 닿을 때 나뭇잎의 뒷면은 밝아지는 걸까 앞면이 밝아지는 만큼 더 어두워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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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어둠으로 가기까지의 그 수많은 초록의 계단들에 나는 늘 매혹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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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이 뭉쳐지고 풀어지고 서늘해지고 미지근해지고 타오르고 사그라들고 번지고 야위는, 길이 휘어지는 숲가에 긴 나무 의자가 놓여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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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거기 앉았다
고도를 기다리는
두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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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의자 앞으로 초록의 거대한 상영관이 펼쳐졌다 초록의 음영과 농도는 첼로의 음계처럼 높아지고 다시 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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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의 감정에는 왜 늘 검정이 섞여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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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연둣빛 어둑함과 으스름한 초록 사이 여름이 계속되는 동안 알 수 없는 마음들이 신경성 위염을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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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에서 검정까지
초록의 굴진을 돕는 열기와 습도로
숲은 팽창하고
긴 장마로 초록의 색상표는 완벽한 서사를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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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초록과 연두가 섞여 있는 숲의 감정은 우레와 폭우에 숲의 나무들이 한 덩어리로 보이는 것처럼 흐릿하고 모호하다



             —계간 《창작과 비평》 2022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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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미 / 경북 고령 출생. 1990년 《한길문학》으로 등단. 시집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일만 마리 물고기가 山을 날아오르다』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 『기억의 행성』 『나의 다른 이름들』 『당신의 아름다움』.


출처 / 푸른 시의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