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월 2
서안나
나는 밤을 이해한다
애월이라 부르면 밤에 갇힌다
검정은 물에 잘 녹는다
맨발로 돌 속의 꽃을 꺾었다
흰 소와 만근의 나무 물고기가 따라왔다
백사장에 얼굴을 그리면
물로 쓰는 전언은 천 개의 밤을 끌고 온다
귀에서 꽃이 쏟아진다
내 늑골에 사는 머리 검은 짐승을 버렸다
시집에 끼워둔 애월은 눈이 검다
수평선에서 밤까지 밑줄을 그어본다
검정은 물에 잘 녹는다
검정은 어디쯤에서 상심을 찢고 태어나나
나는 오늘부터 저녁이다
재의 풍경
서안나
뒤돌아서 사진을 태워야
망자가 미련을 갖지 않는다고 했다
얼굴이 흐려질 동안
두 눈에 담았던 풍경이
재가 될 동안
나는
모든 죄를
용서해달라고
등으로
봄 햇살을 할퀴며
표범처럼 울었다
입술에 감추었던 약속과 고백과
지상의 영광과 모욕과 수치가
한 뭉치의 지전이
애월 바다의 봄볕이 진언이 될 동안
—계간 《상징학 연구소》 2022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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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나 /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 1990년 《문학과 비평》에 시 등단. 시집 『푸른 수첩을 찢다』 『플롯 속의 그녀들』 『립스틱 발달사』. 평론집 『현대시와 속도의 사유』 『현대시의 상상력과 감각』.
출처 / 푸른 시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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