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를 생각하는 물고기
임희숙
여기는 너무 좁아요
분청철화 물고기무늬 병
아가미가 자라 스카프처럼 목을 조여요
두통 때문에 수초를 씹고 있을 뿐
머리가 무거워요
배는 홀쭉해 보여도 알이 가득 찼어요
날아올라야 하는데
무거워요 날개가 젖었어요
당신은 지느러미라고
지느러미는 젖는 법이라고 속삭이지만
그것도 당신이 말할 권리
끝끝내 고집을 부리신다면
백토 바른 항아리 맨살이 드러나도록
분청사기의 모가지를 분질러야죠
그리고 날아올라야죠
날개가 야자수처럼 커요
입술 속 이빨은 너무 많구요
뱃속에는 오백 년을 기다린 새끼들이 있어요
강물로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다시는 저를 흙 속에 가두지 마세요
이제 정말 날개만 생각하려구요
―격월간 《현대시학》 2022년 11-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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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숙 / 1958년 서울 출생. 명지대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한국미술사 전공. 1991년 《시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격포에 비 내리다』 『나무 안에 잠든 명자씨』 『수박씨의 시간』 등,
출처 / 푸른 시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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