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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시를 읽는 길
나호열
◆ ‘시란 무엇인가?’에서 ‘시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로의 전이
내 작품이 문학사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를 검토해 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물론 '나는 커다란 야심이 없이 쓰는 것이 즐거워 그냥 쓰여지는 대로 쓸 뿐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한다고 이 질문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작품을 쓰고, 발표하는 행위는 <공적이며 사회적인 행위>이다. 그러므로, 작품을 책상 서랍 속에 넣어두고 혼자 읽거나 같은 수준의 사람들끼리 동인회를 조직해서 돌려 읽을 게 아니라면 통시적(通時的)으로 그리고 공시적(共時的)으로 자기 작품이 어떤 변별성을 지녔는가를 따져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 시인들 전체는 세계 문학 가운데 우리 시가 어떤 독자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 위치가 어디쯤인가를 따져봐야 할 것이다.
-尹錫山 윤석산(시인․ 한양대 교수)
◆ 한국현대시의 양상
1. 현대문명을 비판하는 시
2. 인간(개인)의 내면을 바라보는 시
3. 생명의 고귀함과 영원성을 노래하는 시
4. 무의미의 시( 언어의 해체)
전통 서정시 VS 포스트모더니즘의 시(해체시), 페미니즘의 시(여성주의),
생태주의 시(vs 자연주의) 시, SNS 시, 디카시.
◆
짧아서, SNS 공유 쉬워서…시집 다시 뜬다
[중앙일보]입력 2016.10.25 01:08수정 2016.10.25
시집이 인기다. 각종 판매 수치, 트위터·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동향, 문학과지성사 등 주요 문학 출판사들의 시선집 편집자 등으로부터 그런 흐름이 감지된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올해 1∼8월 사이 시집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38%나 늘었다. <그래픽 참조>
지난해 말부터 생겨난 『님의 침묵』 『진달래꽃』 등 초판본 시집의 인기, 하상욱 등 SNS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시인의 등장, 시집 전문 서점들의 출현 등은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는 현상이다. 이에 따라 시의 르네상스가 온 것 아니냐는 진단까지 나온다. 수십만 부 베스트셀러 시집이 나오던 1980년대의 열기를 떠올리게 한다는 얘기다.
황인찬 등 아이돌급 시인 등장『님의 침묵』 등 초판본도 인기“여성적 대화체, 젊은층에 적중”“대형 출판사 시집만 잘 팔려” 반론도
이런 현상은 실제 사례로 확인된다. 경기도 부천에서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의 디자인 관련 잡지사로 지하철 출근하는 이주연(27)씨는 “한 달 평균 시집을 다섯 권 정도 산다. 1시간 남짓한 지하철 출퇴근 시간에 주로 읽는다”고 했다. 이화여대 국문과 대학원에서 현대소설 석사를 한 이씨는 예전에는 소설을 많이 읽었다. 하지만 “직장 취직 후 빨리 읽을 수 있고, 휴대가 간편해 시집을 많이 읽게 됐다”고 했다. 특히 “서울 신촌의 시집 전문서점 위트 앤 시니컬 등에서 열리는 시 낭독회를 부지런히 따라다니다 보니 시집을 더 사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트위터 팔로워가 7000명이 넘는 경남 창원의 우정민(40·학원 원장)씨도 “예전에는 인터넷 블로그에 한두 편씩 올라와 있는 시를 주로 읽었는데 3, 4년 전부터 시집을 사본다. 시집을 읽으면 결국 남는 건 입가를 맴도는 문장이다. 좋은 시구절은 반드시 트위터에 올려 사람들과 공유한다”고 했다.이들은 자신들이 시 전문가가 아니어서 요즘 시를 100% 이해하지는 못한다고 했다. 애써 시인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대신 개인 체험과 연관지어 나름대로 즐긴다 . 독자의 독법도 변하는 모양새다.
시집이 인기다. 교보문고 서울 광화문점의 시집 매대. 창비 시선 『우리는 다시 만나고 있다』, 이해인 수녀의 『서로 사랑하면 언제라도 봄』 등이 보인다. [사진 전민규 기자]
물론 ‘시의 열기’에 대한 반론도 있다. 시 전문 계간지 ‘시인동네’는 10월부터 월간으로 전환하며 가격을 4900원으로 확 낮췄다. 잡지 발행인인 고영(50) 시인은 “커피 한 잔 값으로 가격을 내린 후 잡지 판매는 크게 늘었지만 시가 르네상스라는 진단에는 동의하지 못하겠다. 시집 인기는 문지 같은 큰 출판사 얘기고 우리 같은 중소 출판사에서 내는 시집은 초판 1000부 소화하기도 벅찬 실정”이라고 전했다.문학과지성사 이근혜 편집장도 “시는 시류를 타지 않는 장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고 했다. 최근 시집 판매가 늘어났지만 과열이나 르네상스 수준은 아니라는 얘기다. 다만 “스타 시인이 아닌 젊은 시인들의 첫 시집도 증쇄를 찍은 경우가 많고, 증쇄 시점도 빨라진 것은 변화”라고 소개했다.민음사 서효인씨는 “황인찬을 비롯해 유희경·송승언·안희연·서윤후 등 요즘 젊은 독자들의 지지를 받는 젊은 시인들은 더 이상 과거처럼 골방에 틀어박혀 시만 쓰지 않는다”고 전했다. SNS나 시 낭독회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시 독자와 만난다는 얘기다.황인찬(28) 시인이 대표적이다. 그의 2012년 첫 시집 『구관조 씻기기』는 지금까지 1만 부, 지난해 가을 나온 두 번째 시집 『희지의 세계』는1만1000부가 팔렸다. 황씨는 아이돌 같은 인기를 누린다고 얘기된다. 판매도 판매지만 매끄러운 언변에 웬만한 연예인만큼 스타일이 좋아서다. 남성 패션지 ‘GQ KOREA’가 지난해 황씨를 인터뷰해 화보와 함께 게재하기도 했다. 사진·동영상 공유 SNS인 인스타그램에서 ‘황인찬’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2000개가 넘는 게시물이 뜬다. 황씨의 시구절, 시집 표지 사진을 올린 게 대부분이다. 가장 인기 있는 구절은 ‘밤에는 눈을 감았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무화과 숲’이라는 시의 일부다. 사랑에서까지 오답을 걱정하는 젊은 세대의 불안이 반영돼 있다.
인스타그램에 시구절 사진을 자주 올린다는 서성미(25)씨는 “시는 감각적이고 짧아서 필사해 올리기 딱 좋다”고 말했다.시에 대한 관심 증가, 젊은 시인들의 인기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문학평론가 이광호씨는 “요즘 인기 시집은 과거처럼 10만 부, 100만 부 독자가 아니라 수만 명 가량의 강력한 팬덤이 지탱한다. 작품뿐 아니라 시인 캐릭터 자체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좋아하는 시를 SNS 등으로 공유하는 게 하나의 차별적인 문화소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시인이자 평론가인 권혁웅씨는 “젊은 시인들 시에 여성적인 화법이 두드러진 것도 한 특징”이라고 진단했다. 권위적이고 예언자적인 ‘∼하리라’ ‘했던가∼’ 같은 표현보다 ‘∼했니’ ‘∼했구나’ 같은 대화체가 시에 많이 나온다는 얘기다. 그런 표현들이 시의 주 독자층인 젊은 여성들의 마음을 파고든다는 진단이다.
글=신준봉·김나한 기자 inform@joongang.co.kr사진=전민규 기자
'우리가/신호등을 기다릴 수 있는 이유는/곧 바뀔 거란 걸 알기 때문이다/그러니 힘들어도 조금만 참자/곧 바뀔거야/좋게'라고 A4 용지에 손글씨로 써서 신호등 기둥에 붙여놓고,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형태의 글을 지속적으로 쓰는 작가도 등장했다. '글배우'란 필명으로 이 글을 쓴 김동혁씨는 한 번 '시 사진'을 촬영해 올리면 '좋아요'가 10만이 넘고, 댓글이 5000~6000개씩 달린다. 그림이나 사진을 곁들이는 것은 기존 시인들도 가끔 활용해온 방식. 김씨는 이를 엮어 '신호등처럼'이란 책을 냈다. 어엿한 시인으로 대접받게 된 것이다.
◆예문 시 1
성 주일 아침, 아이히만 씨들 / 정 한용( 1958 ~
우리 동네 아이히만1 씨는
주일 아침,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린다,
설교 시간에 꾸벅꾸벅 졸면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 제발 복권 하나만, 제발,
같은 시간, 우리 동네 아이히만2 씨는
빵을 사러 간다, 잡곡빵 주세요, 에그머니 잡곡빵은 다 떨어졌어요,
모닝빵 한 봉지와 소보루빵 두 개를 사서
하나는 딸 애 주고, 하나는 집 나간 아내, 나쁜 년, 그년을 위해 남겨두고,
같은 시간, 우리 동네 아이히만3 씨는
늦은 아침을 먹고 ‘전국노래자랑’을 기다리며 ‘진품명품’을 본다,
우리 집에도 옛날에 옛날 책들이 꽤 있었는데
어무이, 그거 다 어디 갔능교? 육 년 전에 이사하면서 늬가 다 버렸다 아이가,
같은 시간, 우리 동네 아이히만4 씨는
페이스북에 머리를 박고 있다, 눈팅만 했더니 페친에서 자꾸 짤리는 거 같어,
시발, 즤들은 뭐가 잘났다고, 말로만 이빨 까는 새끼들이,
먹방 사진이나 올리면서, 시바 새끼덜, 욕을 해대는 사이,
우리 동네 아이히만5 씨는 명품 등산복을 입고
배낭에 에비앙 물병을 꼽고 동네 뒷산을 오른다, 두 시간이면 내려가니,
고향 친구에게 점심으로 칼국수나 먹자고 문자를 날린다,
갸도 어릴 적 고향 떠나 솔찮이 고생 좀 혔지,
정오가 가까워져 오는 같은 시간, 우리 동네 아이히만6 씨는
택배를 기다리고 있다, 아 좆만 한 새끼들,
11시에 온다면서 벌써 30분이나 지났잖아, 아 좆만이들이 약속을 안 지켜,
돈을 받아 처먹고 일을 하면, 돈 받은 만큼 좆나게 뛰어야지, 아 좆만 한,
같은 시간, 우리 동네 아이히만7 씨는
종편 뉴스를 보며, 혀를 끌끌, 아령을 들고 운동을 하면서도
눈을 티브이에 고정시킨 채, 세상 말세야, 저 빨갱이들 다 북으로 보내삐리든지,
아 경찰이 물러터져서 탈이야, 싸그리 잡아 족쳐야,
혀를 끌끌 차는, 같은 시간, 우리 동네 아이히만8 씨는
절에 가는 대신 집에서 불공을 드리고 있다,
칠성당에 계신 쥐닭이시여,
남들에게서 빼앗은 것을 내 주머니에만 넣어주시옵고,
남들의 목을 졸라 일용할 양식을 내 밥그릇에 가득 넘치게 하여주시옵고,
배를 터지게 하여 주시옵고, 같은 시간,
우리 동네 아이히만9 씨는 어제 태극기 집회에 나가
모르는 척 받은 일당을 지갑에 꼬깃꼬깃 감추며, 드러운 새끼들,
두 장은 더 줘야지, 같은 시간,
우리 동네 아이히만 10씨는 아이히만11 씨에게 아이히만12 씨 뒷담화를 까고,
같은 시간, 우리 동네 아이히만13 씨는……
◆해설 / 나호열(시인)
읽기에 따라서 매우 불편함을 줄 수 있는 시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국 時局을 편파적(?)으로 풍자하고 있다는 점에서 호불호 呼不好가 극명하게 갈릴 수 있겠다. 또한 시에 드러나고 있는 비속어가 눈살을 찌푸리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시가 함의하고 있는 키워드 Key word를 짚어볼 수 있다면 이 시의 확장성은 좀 더 넓은 세계, 더 나아가서 인간성에 대한 허무주의적 불신을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의 키워드는 아이히만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의 유대인 집단학살 정책 가담자로 이스라엘에서 교수형되었다.
1942년 나치 고위관리로서 아이히만은 유대인 학살에 대한 책임을 맡음으로써 사실상 '마지막 해결책'의 집행자가 되었다. 그는 유대인을 식별하고 집결시켜 그들을 집단수용소로 보내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전쟁 뒤 아이히만은 미군에 붙잡혔으나 1946년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했다. 이후 몇 년 동안 중동지역을 전전하다가 1958년 아르헨티나에 정착했다. 나치 전범 추적자 지몬 비젠탈과 이스라엘 '자원봉사' 단체에 의해 정체가 드러나 1960년 5월 11일 부에노스아이레스 근처에서 체포되어 9일 뒤 비밀리에 이스라엘로 이송되었다. 이러한 조치가 아르헨티나 법을 위반했다는 여론이 진정된 뒤, 이스라엘 정부는 예루살렘의 특별 3심 법정에서 재판을 열었다. 1961년 4월 11일에서 12월 15일까지 계속된 이 재판에서 아이히만은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 다음 백과에서 인용
한 편의 시를 읽을 때 그 시의 요지 要旨는 제목에 숨어 있음을 기억하자. 성 요일 聖 曜日은 종교적 의미를 지닌 날이며 동시에 휴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시에서의 성 요일은 전혀 성스럽지 않다. 권태와 짜증, 불안, 까닭 없는 분노는 채울 수 없는 욕망을 소비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아이히만은 히틀러의 수하로 유대인 학살을 주도한 인물이다. 이 시는 아이히만과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 모두가 이성의 내부에 폭력성을 지니고 있는 존재임을 인식하고 있다.
아이히만 (Karl) Adolf Eichmann 1906 - 1962
◆예문 시 2
개 좀 빌려 줘 봐 / 석민재(1975 ~ ).
좋은 시절은 빨리 먹어버리자
태어나자마자 늙어버리자
해피, 해피, 해피만 부르는 아침에
맞을수록 웃는 개가 죽었지
어디까지가 입구고 어디부터가 출구야
사탄 같은 사탕을 물고개 좀 빌려 줘 봐
낭비되는 개처럼, 노래 좀 불러 줘 봐
문 앞에서 노래 부르는 세상 모든 개를 압축하자
Rock Rock
개보다 가볍게 희희Rock Rock
춤이나 출까심심한데 교회나 갈까
다시,개 한 마리 사겠다고 저 구멍을 통과해야 하나
개는 고기가 아니라서나는 개도 아니면서
배는 고픈데
매일 걸작이 구워지는구나
족족 히트를 치는구나.
- 석민재 시집 『엄마는 나를 또 낳았다』 (파란, 2019)
◆해설 / 정병근(시인)
어떤 시(시집)를 읽다보면 나의 독법과 이해를 앞질러 달아나는 문장(말)들이 있다. 느린 나를 나무라듯 전광석화처럼 내지르고 사라져버리는 이런 시들은 나를 외롭게 만든다. 다소간 머물고 되새겨야 드러나는 ‘기승전결’과 ‘인과응보’ 같은 관습적 인식의 프레임에 들기를 거부하는 빠르고 현란한 몸짓의 연쇄 같은 것인데, 뻔히 보면서도 딱 꼬집을 수 없는 아쉬움과 불편한 심사가 일어난다. 어 어 어 하는 사이, 시는 이미 다른 곳에 가있는 것이다. 원자핵의 외피를 형성하면서 입자와 파동의 양상을 거듭하는 전자의 속성처럼 이런 시들은 관찰자(독자)의 위치와 시점(時點/視點)에 따라 매우 불확정적인 중첩을 보인다. 마치 시공이 무화된 양자의 세계를 접하는 듯.-시라는 반짝임(파동)만 뇌리에 남고 의미는 이미 소실된 상태라고 할까. 나는 낭패에 빠진다. 내가 시를 읽기는 했나, 시가 있기는 있었나... 시를 반복적으로 리플레이해서 추적해보아도 좀처럼 결정적인 단서를 잡지 못하고 여기저기 끊어진 조각들만 확인할 뿐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초당 24~32프레임만을 인지하는 내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 볼 수 없는 것. 1만 분의 1초의 틈을 뚫고 시의 귀신이 다녀간 것이다. 초점을 놓친 카메라 사진에서 간혹 그런 귀신이 보인다. 순간과 순간 사이를 이동하다가 들킨 허깨비 같은 잔상들, 뭔가 뚝뚝 끊긴 흔적들... 이때의 시의 언어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상놀이’나 볼 때마다 다른 얼굴의 ‘변검술’처럼 변화무상하다. 이해는 늦다. 그냥 감지하는 수밖에 없다. 사라지기 전에 그 리듬에 올라타야 한다. 원숭이 궁둥이는 빨갛다 사과는 맛있다 바나나는 길다 기차는 빠르다... 그 다음엔 비행기가 나올 줄 알았지? 문제는 속도야, 이 맹추야!시집이라는 대야에 소금을 지른 미꾸라지들처럼 불연속적이고 산만한 언어(말)들이 도처에서 튄다. 언어가 튄다는 것은 생각이 빠르다는 것이고 그 빠른 속도 때문에 하나의 심상을 지긋이 잡아 둘 수 없다. 그의 시는 친절한 이미저리로 드러나지 않고 신경질적으로 내질러지며 사라진다. 다중 명멸. 그의 시를 읽으면 ‘불구의 섬광’이 번쩍이는 세계에 온 듯하다. 그 세계에 깃든 언어는 주술에 가깝고, 아기신령의 중얼거림처럼 천진하고 불연속적인 행방불명의 언어명멸이 진동(振動)한다. 발화(發話) 이전의 속말을 대하는 느낌이랄까... 주술적인 환유로 발설되는 그의 언어는 행간의 거리가 멀고 낯설어 익숙한 독법으로는 그 시적 진의(이해)에 닿기가 쉽지 않다. 나는 이것을 ‘신 내림의 언어’, 즉 방언이나 주술로 이해하려한다. 그럴 때 석민재의 시는 귀신의 언어로서 새롭고 낯설게 우리 앞에 당도한다. 적대적 동문서답, 웃음과 예지언, 중얼거림, 자동기술, 안구불안, 자폐적 분열과 치욕, 조롱... 등등의 모습으로.-감각적이고 전위적인 촉수를 장착한 시인의 언어는 매우 예민하여 여차하면 자신이 구축한 시공을 허물어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가서 반짝인다. 기존의 이해논리가 작동되지 않는 곳, 그러니까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되는 그 다층적이고 동시다발적인 양자의 세계 말이다. 말은 속말과 겉말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속말의 욕구내압이 임계점을 넘으면 성대와 입을 통해 폭발하듯이 뱉어진다. “사랑해!” 라캉 선생의 말을 빌자면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빛이 인지하는 겉말의 세상으로 데뷔하는 것이다, (이 세상은 빛이 있고, ‘말씀’이 있는 곳이다.) 겉말의 세계는 관계가 작동하는 사회적 타자의 세계이다. ‘나’ 자신도 상대적 타자로서 존재하며 살아간다.-그렇다면 석민재 시인은 왜 이런 언어를 택했을까, 택할 수밖에 없을까...? 내 생각에는 시인의 아방가르드적인 언어전략이라기보다는 무의식을 휘도는 언어욕동이 분출하며 일으킨 양자적 사태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의 시는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관습(남성/가족/교회)과 고정관념이라는 불구대천의 적을 겨누고 있다. 성찰과 관조의 창문을 깨고 느닷없이 쏟아지는 구슬처럼 돌발적이면서 비인과적인 그의 언어는 구슬 자체의 빛과 소리로서 연쇄하며 생동한다. 시인은 의도했든 안 했든 구슬과 구슬의 순간들을 하나로 꿰어 잇는 실(이해)의 용도를 폐기하고 싶어 한다. “그냥 보이는 대로 봐줘! 제발~ 나를 이해와 인연의 끈 따위로 묶지 마!” 그래서 석민재 시인의 이번 시집은 환란과 낭패를 가로지르는 한판 ‘굿거리사설’로 읽힌다.
◆예문 시 3디카시 : 사진과 시의 결합 ( 5,6 行)의 짧은 시
설화 舌禍 / 강만수 ( 1958 ~ )
◆예문 시 4 ; 전통 서정시
북 / 나호열 ( 1953 ~ )
북은 소리친다
속을 가득 비우고서
가슴을 친다
한 마디 말 밖에 배우지 않았다
한 마디 말로도 가슴이
벅차다
그 한 마디 말을 배우려고
북채를 드는 사람이 있다
북은 오직 그 사람에게
말을 건다
한 마디 말로
평생을 노래한다
◆ 해설 / 김완하 (시인 ․ 한남대 교수)
예로부터 전해져오기를 한 악공은 자신이 연주하는 악기의 소리를 알아듣는 딱 한 사람이 있어 그를 지음(知音)이라 했다. 그때부터 지음이야말로 자신을 잘 아는 친구라 하여 가장 친한 그리고 소중한 친구라 일러온 것이다. 어느 날 그 친구가 이 세상을 떠나자 악공은 다시는 악기를 연주하지 않았다 한다. 친구가 죽자 악기도 소리를 잃고 악공의 존재 또한 자취를 감춘 것이다. 친구란 그만큼 위대한 존재인 것, 악공에게는 하나의 세계였던 것이다.
북은 자고로 자신의 속을 가득 비우고서야 제 가슴을 치는 것이다. 북은 한 마디 말 밖에 배우지 않고도 그 한 마디 말로는 이 세상의 가슴이 벅찬 것이다. 우둔 한 바 고수는 그제서야 그 한 마디 말을 배우려 북채를 드는 것이다. 아뿔싸 우리는 너무나 많은 말로 귀를 메우고 너무나도 많은 소리로 이 세상을 어지럽혀온 게 아닌가.
이 여름 장마가 긴 것도, 지구가 밤마다 천둥소리로 우주를 울리는 것도 다 북소리를 내기 위한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을 알아주는 단 하나의 지음을 찾고자 하는 것이렷다. 그대에게 묻노니, 그대는 지음을 알고 있는가. 또한 그대는 지음을 가지고 있는가.
◆ 결어 : 좋은 시의 조건
1. 형식의 완결성 : 행 行과 연 聯의 짜임새
2. 내용의 충실성 : 주제의식의 명료성과 독창성
3. 비유의 적절성 : 일물일어 一物一語의 정신세계 구축
4. 리듬의 유연성 : 음유 吟遊의 가능성
■ 나호열 羅皓烈
충남 서천 출생( 1953). 경희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졸업.
울림시 동인(1980).【월간문학】 신인상(1980),【시와 시학】 중견시인상(1991).
첫 시집『담쟁이덩굴은 무엇을 향하는가』(1989) 이후 18권의 시집 간행.
『안녕 베이비 박스』 (2019), 전자시집 『예뻐서 슬픈』(2019),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를 알고 있다』(2017: 세종우수도서),
『촉도』(2015: 세종우수도서), 『눈물이 시킨 일』 (2011: 한국문협서울시 문학상) 등.
현재 한국문인협회 표절문제연구위원회 위원장, 도봉학 연구소장, 한국탁본자료관 관장.
http://blog.daum.net/prhy0801(세상과 세상 사이)
'이탈한 자가 문득 > 램프를 켜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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