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시와문화 작품상 수상작
극락極樂, 극토록 즐거운
조삼현
1.
어느 부족 인디언 추장은 극락조 깃털을 성기에 장신구로 매달기도 한다는데..., 구애하는 극락조 춤사위가 종이꽃수술 흔들어대는 무녀의 씻김굿 같다 높은 데 나뭇가지에서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해종일 왔다 갔다, 꽁지깃 펼쳐 달리고 노래하며 달리고 춤추며 달리고 머리를 끄덕이며 달리고 인기척을 못 느껴 달리고 화살의 공포를 망각하고 달리다 그만 발에 피멍이 다 들었다 작은 새 발톱에 나뭇가지가 닳아 반들거린다 극락조의 극락極樂은 사랑을 부를 때일까 사랑하다 죽을 때일까?
2.
새의 자유가 날개라면
나에겐 나를 얽매는 바퀴였다
노동을 세공하여 만든 바퀴
깃털을 찾으려고 동쪽으로 갔으나
나침반이 고장 나 방위를 놓쳤다
구절양장 손금 길 달려 도착한
서해 어느 항구 폐사지
갈대밭에서의 밤
나는 일 획 활강하는 별똥별에서
새를 읽었다
조롱 속에 갇힌 새
탱자나무 울타리 속 손바닥
손바닥 속 조롱
나무막대 위 작은 새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달리고 달리다
사랑을 하고 새끼를 치고
먼 데 하늘을 우러른다.
3.
목구멍보다 더 큰 경전이 세상에 있을까
한쪽 어깨엔 날개 또 한쪽 어깨엔 바퀴
어깨가 무거워 날개는 집에 두고 순례길 나섰다
바퀴는 독재자, 제 맘대로 나를 끌고 다녔다
빛과 어둠 사이 탄탄대로 지나 벼랑길로,
상갓집 돌아 예식장, 빗길 달려 무지개 언덕으로...
대나무가 나무가 아닌 '벼'과 속 풀이라니!
논두렁과 대나무밭 사이 어딘가에
깃털이 있을 거라 했지만 찾지 못하고
탁발만 했다 지구 한 바퀴
사만 킬로미터, 열일곱 바퀴를 도는 동안
세 번 전복했고, 짜릿한 순간도 있었다
나와 첫 키스를 했다는 부츠를 신은 벤츠
엉덩이는 아직도 섹시할까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달리고
달리다 빙판길 역주행하여 집으로 왔다
휘파람을 불었는데 왜 정강이가 부러지나
십팔 세 애인 프라이드가 죽고
콩코드와 소나타 수많은 바퀴가 죽기까지
삼십오 년이 걸렸다.
4.
깃털도 못 구했는데 자유라니
무량대수 분의 일로 축소하여
우주 조감도를 그리자
컨베이어 벨트가 되었다
벨트 위로 시간과 부속품이 쉼 없이
따라 올라왔다, 돌고 또 도는 벨트 앞
좌측 등 깜빡이를 조립하는 동안의 당신과
출근과 퇴근 사이에 낀 사무원,
비행 중인 승무원은 감옥일까 자유일까?
당신이 우측 등 깜빡이를 조립하는 동안
나는 시간을 분해해 감옥을 해체했다
살아온 날들의 쓰레기봉지 속에서
무지개가 피어올랐다
감옥 너머, 울 벽 담 너머 그곳에
불멸의 새 극락조가 산다는 전설을 들었다
내 탯줄을 묻은 터를 찾기까지
백 년이 걸린다* 거기
극락極樂 유토피아에 깃털이 있겠지
나도 성기에 깃털을 달고 싶다.
* 서정춘 죽편 변용
조삼현 시인
시와문화 여름호 '이 시인을 주목한다' 코너에서 졸시를 다뤄주었네요.
지구 한 바퀴가 4만 킬로미터라고 하는데, 35년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저는 지구 17바퀴 거리를 주행하였더군요. 저마다의 직장으로, 생업의 일터로 다람쥐 쳇바퀴 돌듯 달리고 달리는 현대인의 애환과 희망, 내 안의 자유와 감옥에 대하여 써보고 싶었습니다.
졸시에서 반복적으로 차용하고 있는 기표 '깃털'은 내가 추구하는 그 무엇의 구도(?) 또는 행복에의 길찾기를 상징하는 기재입니다.
ㅡ조삼현 시인의 페이스 북(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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