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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 램프를 켜다

극락極樂, 극토록 즐거운 / 조삼현

by 丹野 2022. 9. 23.




2022년 시와문화 작품상 수상작

 


극락極樂, 극토록 즐거운


조삼현


1.
어느 부족 인디언 추장은 극락조 깃털을 성기에 장신구로 매달기도 한다는데..., 구애하는 극락조 춤사위가 종이꽃수술 흔들어대는 무녀의 씻김굿 같다 높은 데 나뭇가지에서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해종일 왔다 갔다, 꽁지깃 펼쳐 달리고 노래하며 달리고 춤추며 달리고 머리를 끄덕이며 달리고 인기척을 못 느껴 달리고 화살의 공포를 망각하고 달리다 그만 발에 피멍이 다 들었다 작은 새 발톱에 나뭇가지가 닳아 반들거린다 극락조의 극락極樂은 사랑을 부를 때일까 사랑하다 죽을 때일까?


2.
새의 자유가 날개라면
나에겐 나를 얽매는 바퀴였다
노동을 세공하여 만든 바퀴
깃털을 찾으려고 동쪽으로 갔으나
나침반이 고장 나 방위를 놓쳤다
구절양장 손금 길 달려 도착한
서해 어느 항구 폐사지
갈대밭에서의 밤
나는 일 획 활강하는 별똥별에서
새를 읽었다
조롱 속에 갇힌 새
탱자나무 울타리 속 손바닥
손바닥 속 조롱
나무막대 위 작은 새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달리고 달리다
사랑을 하고 새끼를 치고
먼 데 하늘을 우러른다.


3.
목구멍보다 더 큰 경전이 세상에 있을까
한쪽 어깨엔 날개 또 한쪽 어깨엔 바퀴
어깨가 무거워 날개는 집에 두고 순례길 나섰다
바퀴는 독재자, 제 맘대로 나를 끌고 다녔다
빛과 어둠 사이 탄탄대로 지나 벼랑길로,
상갓집 돌아 예식장, 빗길 달려 무지개 언덕으로...
대나무가 나무가 아닌 '벼'과 속 풀이라니!
논두렁과 대나무밭 사이 어딘가에
깃털이 있을 거라 했지만 찾지 못하고
탁발만 했다 지구 한 바퀴
사만 킬로미터, 열일곱 바퀴를 도는 동안
세 번 전복했고, 짜릿한 순간도 있었다
나와 첫 키스를 했다는 부츠를 신은 벤츠
엉덩이는 아직도 섹시할까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달리고
달리다 빙판길 역주행하여 집으로 왔다
휘파람을 불었는데 왜 정강이가 부러지나
십팔 세 애인 프라이드가 죽고
콩코드와 소나타 수많은 바퀴가 죽기까지
삼십오 년이 걸렸다.


4.
깃털도 못 구했는데 자유라니
무량대수 분의 일로 축소하여
우주 조감도를 그리자
컨베이어 벨트가 되었다
벨트 위로 시간과 부속품이 쉼 없이
따라 올라왔다, 돌고 또 도는 벨트 앞
좌측 등 깜빡이를 조립하는 동안의 당신과
출근과 퇴근 사이에 낀 사무원,
비행 중인 승무원은 감옥일까 자유일까?
당신이 우측 등 깜빡이를 조립하는 동안
나는 시간을 분해해 감옥을 해체했다
살아온 날들의 쓰레기봉지 속에서
무지개가 피어올랐다
감옥 너머, 울 벽 담 너머 그곳에
불멸의 새 극락조가 산다는 전설을 들었다
내 탯줄을 묻은 터를 찾기까지
백 년이 걸린다* 거기
극락極樂 유토피아에 깃털이 있겠지
나도 성기에 깃털을 달고 싶다.


* 서정춘 죽편 변용

 

 

조삼현 시인


 

시와문화 여름호 '이 시인을 주목한다' 코너에서 졸시를 다뤄주었네요.
지구 한 바퀴가 4만 킬로미터라고 하는데, 35년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저는 지구 17바퀴 거리를 주행하였더군요. 저마다의 직장으로, 생업의 일터로 다람쥐 쳇바퀴 돌듯 달리고 달리는 현대인의 애환과 희망, 내 안의 자유와 감옥에 대하여 써보고 싶었습니다.

졸시에서 반복적으로 차용하고 있는 기표 '깃털'은 내가 추구하는 그 무엇의 구도(?) 또는 행복에의 길찾기를 상징하는 기재입니다.

ㅡ조삼현 시인의 페이스 북(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