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오면 찾아가는,
가로등 불빛이 아름다운 골목길
다정한 연인
김경성
세상의 모든 골목은 닮아있다
옆구리에 끼고 가는 골목은 애인 같아서 이따금
무릎 같은 계단에 앉아 쉬었다 가기도 하고
제가 나무인 줄 알고
전단지를 이파리처럼 흔들어대는 전봇대까지도 다정해서
늘 그날인 것처럼
고백 못하는 내 안의 상처나 슬픔까지도 다 받아준다
깊은 저녁 혼자 가는 길을 따라오는 그림자 있어 뒤돌아보면
그도 뒤돌아보며 괜찮다, 괜찮다
토닥토닥
반쯤 접혀서 잘 보이지 않았던 길을 오고 갔던 사람들은
지금 어느 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을까
이따금 밥 냄새가 작은 창문을 빠져나와 골목 안쪽까지 배부르게 하고
나는 봄밤에 울컥울컥 피어나는 매화처럼 이파리 한 장 없이도
멀리 아주 멀리 향기 보내는 법을 배운다
골목에서 자라고 익어갔던 사람들이
먼 곳에서 불쑥 찾아와서
제 안의 숨은 그림을 찾아 퍼즐을 맞추며
어떤 조각은 생각하지 말자고 눈 속에 비치는 제 얼굴을 바라본다
휘어지고 구부러진 채로 그 자리에서 늙어가는 골목,
깊숙이 간직했던 시간이 여기에 다 있다고
나무 대문이 삐걱 소리를 내며
저절로 열린다
달아나고 싶어서 가장 멀리 가는 버스를 탔어도
끝내 되돌아오게 만드는
다정한 연인의 끌림
⸻계간 《미네르바》 2020년 여름호
김경성 / 전북 고창 출생. 2011년 《미네르바》 등단
시집 『와온』 『내가 붉었던 것처럼 당신도 붉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