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이긴굴뚝새
김경성
새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날아와서
어떤 징표를 확인하려는 듯 머물다 간다
담쟁이도 긴 몸 위에 잎을 겹쳐서
어딘가에 닿을 것만 같은 지도를 끊임없이 그려나간다
저 속에는 다 가보지 못한 길이 숨겨져 있다
지붕 위의 목이 긴 새 한 마리
저릿한 마음결 무늬와 뜨거움 다 어디로 보내버리고
긴 부리를 열어서 들리지 않는 노래만 부르고 있는 것일까
날고 싶어 지붕에 올라갔지만 평생토록 날지 못하는 저, 굴뚝을
목이긴굴뚝새라고 부르면 안 되나
먼 하늘까지 높이높이 날아다니는 그런 날이 온다면
목까지 차오른 기쁨이 넘쳐 눈물 나겠다
빈집 속에서 소멸해 가는 것들이 내는 저음의 소리를 물고
목이긴굴뚝새가 날아오른다
- <시산맥> 2021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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