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미르에서 쓰는 편지 / 김경성
세상의 별들은 모두 파미르 고원에서 돋아난다고
붉은 뺨을 가진 여인이 말해 주었습니다
염소젖과 마른 빵으로 아침을 열었습니다
돌산은 마을 가까이 있고
그 너머로 높은 설산이 보입니다
아이들의 눈빛이 빛나는 아침입니다
나귀 옆에 서 있는 사람의 그림자가 나무 우듬지에 걸쳐있고
풀을 뜯는 나귀의 등에는 짐이 없습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백양나무 이파리가 흔들릴 때
왜 그렇게 먼길을 떠나왔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멀리 있고
설산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고원에 부는 바람을 타고 나귀가 걷기 시작했습니다
나귀가 노인을 이끄는지
노인이 나귀를 따라 가는지
두 그림자가 하나인 듯 천천히 풍경 속으로 들어갑니다.
- 계간 <포엠포엠> 2018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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