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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 램프를 켜다

십이령 길목에 사는 일 중 / 김명기

by 丹野 2020. 11. 9.

십이령 길목에 사는 일 중

 

김명기 시인

큰길은 마을에서 끝난다. 마을로 오는 큰길은 읍에서 오는 길과 면에서 오는 길이 있다. 지금은 깨끗하게 포장된 넓은 길이지만 이십 년 전만 해도 좁고 먼지 날리는 비포장 길이었다. 비나 눈이 내리면 하루 세 번 오는 버스마저 결행되기 일쑤였다. 조부모와 그 윗대분들은 평생 좁고 험한 오십 리 길을 걸어 다니셨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반평생을 걸어 다니셨고 나는 기억 없는 짧은 시간을 빼면 버스나 승용차를 타고 다녔다. 그보다 훨씬 전 보부상들이 다니던 시절에는 산 밑 오솔길과 논밭둑 지나 내와 천을 건너다녔을 것이다.

말래(末來)라는 지명은 ‘제일 마지막’에 오는 곳이라는 뜻이다. 봄이면 터널 같은 벚꽃 길이 펼쳐지고, 여름과 가을 사이에는 배롱나무꽃이 한창인 길로 나는 출퇴근을 한다. 불과 이십여 분을 달리면 읍이나 면에 도착한다. 왕복 한 시간도 안 걸리는 길을 하루 종일 걸어 다녔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보따리는 늘 옹색했다. 산나물이나 약초, 가을걷이가 끝나면 조나 수수, 콩과 팥 같은 것을 들고 갔고 그마저도 없는 겨울에는 자신 몸의 몇 배나 되는 땔감을 지게에 지고 팔러 갔다. 생존을 위한 마땅한 일이었다. 그나마 생존을 위한 길이었다면 어떤 수고인들 마다할 이유가 없었겠지만 길은 꼭 그렇지 않았다.

미혼이던 내 큰아버지는 그 길 따라 의용군으로 끌려가 행불자가 되었다. 큰 고모는 보퉁이 하나 들고 쫓겨나듯 시집가 연락이 끊어진 채 생사조차 알 수 없다. 아버지와 숙부는 그 길로 남의 나라 전장으로 떠났다가 겨우 살아 돌아왔다. 그렇게 길은 생멸을 거듭하며 조금씩 넓어지고 반듯해졌다. 그런 길에 어느 날부터 외지인들이 몰려들었다. 보부상이 넘나들던 십이령 길에 금강송 숲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마을 뒷산이 어느새 힐링 숲길이 되었다. 바지게 가득 양곡을 지고와 건어물과 미역, 소금을 팔아 넘어가던 고갯길이 형형색색의 관광객들로 붐볐다. 마을에는 그들을 위한 민박집이 생기더니 보부상 주막촌이라는 간판을 걸고 고래등 같은 기와집도 지어졌다. 생멸을 거듭하며 넓고 반듯해진 길로 좁고 험한 길을 걷겠다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었다.

큰길이 끝나는 곳에 만들어진 넓은 주차장에는 사람들이 타고 온 승용차와 관광버스로 채워졌다. 소멸해가던 마을도 그들 때문에 생기가 도는 듯했다. 사람들은 마을 이곳저곳을 다니며 사진을 찍고 마을 사람들과 인사도 주고받았다. 사람들도 마을도 나쁠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반짝하는 영양제처럼 생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경향 각지에 비슷한 길이 수없이 생겼다. 사람들은 새로 난 길을 찾기 시작했고, 마을 큰길로 작은 길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점점 뜸해졌다. 길이란 알맞은 용도의 구조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두천에서 출발해 춘양 가까운 소광리까지 이어진 십이령 길을 나도 두어 번 걸어본 적이 있다. 사이사이 나무를 실어내는 목도를 빼면 두세 사람이 나란히 걷기도 힘든 좁은 길이다. 쉴 곳조차 마땅하지 않은 길을 넘나들던 바지게꾼들이 앉지 않고 지게를 진 채 서서 쉰 이유를 그때 알았다.

바지게는 싸리나 대오리로 지게 위에 발채를 얹어 짐 싣는 공간을 최대한 넓힌 지게다. 지게 가득 무거운 짐을 얹고 비탈길에서 지게를 내렸다 다시 지는 일은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길은 굳이 넓을 필요 없이 빠른 지름길이 필요했을 뿐이다. 둘러가지 않고 질러가기 위해서는 좁고 비탈진 곳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길은 주변을 훼손시키지 않았고 아름드리 소나무가 가득했다.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길이었으나 백 년이 지난 후에는 생존에 지친 사람들을 치유하는 길이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길을 찾아오는 사람은 점점 줄었고 잠시 생기를 찾았던 사람들의 기대감도 줄어들었다. 아직은 드문드문 조용한 숲길이 좋아 찾아오는 사람도 있지만 사람과 별개로 길은 길로써 그곳에 있을 뿐이다. 마을이나 사람처럼 길도 언젠가 길의 역할이 끝나면 처음으로 돌아가 짙푸른 원시림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은 어우러져 있지만 그것은 다 개별적이기도 하다. 우리는 각기의 개별성 안에서 여전히 진행형일 뿐이다.

《보보담 2020가을호》십이령 길목에 사는 일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