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에는 섬이 있다 / 김경성
여강에는 당신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섬이 있다
그 섬에는 붉은 발을 가진 새들이 몸을 내려놓으며
젖은 깃털을 말리고
이따금 밀려오는 파문이 섬까지 닿는다
강 건너편으로 가는 새들은
제 발목이 휘는지도 모르고 길고 긴 물그물을 하염없이 끌고 가다가
강둑에 걸쳐 놓는다
강물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입을 다물고
바람이 흘러가는 시간을 밀고 오면
강 속으로 뛰어든 구름이 몸을 풀어 감싸 안는다
강가에 서 있는 석탑의 깨진 지붕돌이 가라앉은
물속으로 뛰어드는 새 한 마리,
가장 아픈 시간의 조각을 물고 떠오른다
삼층석탑의 그림자가
물 위에 길게 드리워지며 그대로 섬이 된다
여강은 말없이 흐르고
새가 들어 올린 지붕돌 조각이 탑에 닿았는지
풍탁 소리가 번진다
바람이 분다
나도
당신도 그렇게 하염없이 번진다
- 『두레문학』 2020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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