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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丹野의 깃털펜/김경성 - 근작시

보라의 원적 / 김경성

by 丹野 2020. 8. 9.

 

 

보라의 원적 / 김경성

 

 

덧입혀진 색이 기울어져 있다

빛이 닿을 때마다 몸을 바꾸는 것들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다는 아니라고

달빛 머금은 그림자에 물이 고인다

 

그 무엇과 부딪쳐서 생긴 흔적이

문득문득 몸 언저리에 피어나서

몸 바깥으로 나있는 그림자의 길이 검붉었다

 

몸을 바꿔서 모서리가 되기로 했다

 

둥근 것들이 내는 소리가 부드러운 것만이 아니고

모서리가 내는 각지고 찔리는 소리도

모두 날카로운 것도 아니었다

 

가장 깊게 부딪친 곳에 중심을 두고 옅어지는 보라는

천천히 빠져나가고

어떤 상처는 눈물 번지듯 뼛속까지 들어가서

움직일 때마다 찌르레기 소리가 났다

 

더 깊게 들어가 보기 전에는 알 수 없어

손차양을 하고 아득하게 바라보며 가늠할 뿐

여러 날이 지나야 사라지는 보라의 지문은

몸 안쪽에 고여 있던 슬픔이 흘러나온 것

 

목까지 차오른 보라의 원적은 슬픔의 색이라고

누구에게 이야기해야 하나

 

그 누가 숨 깊은 두 귀를 내게 내어줄 수 있을까

 

내 몸안에서 자라고 있는

우울의 보라는

건기의 세렝게티를 닮았다

 

 

 

- 월간 《우리詩》 2020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