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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丹野의 깃털펜/김경성 - 근작시

캥거루와 해바라기 / 김경성

by 丹野 2019. 12. 10.


 
캥거루와 해바라기
 
김경성

잘 익은 햇빛과 바람이 긴 목을 타고 넘어와서
당신의 입술을 적시던 시간
너무 멀리 가 있다

말할 수 없는 냄새로 가득 차 있는
오크통에서 발효되었던 시간,
코르크를 따는 순간 어떤 기류에 휩싸였었다

누군가 꺾어서 버린 해바라기 몇 송이
캥거루의 뱃속에서 마르고 있다
시간을 읽지 않는 해바라기
살아있는 동안 해 뜨는 곳을 바라봤다면
이제는 해 지는 쪽을 바라보리라
 
캥거루 그림이 그려진 와인 병, 더는 빈 병이 아니다
캥거루의 긴 다리에 눈이 걸린다

점점 더 고개를 숙이는 마른 해바라기를 꺼내놓고
병을 굴려본다

캥거루가  달린다
달리고 또 달린다
 

 

 

김경성
전북 고창 출생. 2011년 《미네르바》 등단.
시집 『와온』 『내가 붉었던 것처럼 당신도 붉다』가 있음.
 
웹진시인광장  201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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