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추새
김경성
누군가 푸른 시간을 뜯어서 버렸어요 빈 병에 물을 채우고 가만히 밀어 넣어주세요 수평의 시간을 살고 싶어요
긴 몸을 더 길게 늘여요 뜯긴 자리가 쓰라리면 뿌리에 가까이 다가 선거예요 물에 잠긴 흰 이파리에서 부리가 돋아나요 건너갈 강이 넓어도 금세 건널 수 있어요
시간이 갈수록 흰 부리가 커지면서 뾰족한 혀를 키워요 노래를 부를 수 있어요 닿을 수 없는 흙의 기억은 이젠 잊기로 해요 물속에서도 부리는 강해지고 날개는 더 크게 자라니까요
비비추새는 어느 하늘에서 날아들어 온 새일까요 병 속에서 하루가 가고 열흘이 가고… 날개 안쪽에서 보라 꽃이 피어나는 비비추새 한 마리, 병 속에서 스르르르 눈을 뜨고 있어요 날갯짓을 시작했어요
비비추새 노랫소리가 들려요 귀 기울여봐요
물속에서 푸르르 푸르르 날갯짓하는 비비추새
한 마리 새가 품고 있는 저, 무한한 비상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계간 『미래시학』2019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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