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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丹野의 깃털펜/김경성 - 근작시

오동 꽃 숨이 바다의 내면으로 들어간다 / 김경성

by 丹野 2020. 6. 3.

 

오동 꽃 숨이 바다의 내면으로 들어간다

 

김경성

 

 

보라 등을 켠 오동나무

쇄골에 집 한 채 얹고 있다

 

절벽을 오르내리는 오동 꽃 향기가

새들의 발목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아서였을까

새는,

아예 그의 몸속으로 파고들어 계절을 건너고 있다

 

사리 지나 조금인 때

새들은 썰물 따라서 바다로 내려가

물 빠지면 드러나는 서책의 접혀있는 책장을 넘기며

새로 쓰인 글을 읽어 나간다

 

누군가는 읽다가 목이 메었을 것 같은

꺾인 문장들이 돌기처럼 일어나

바닷물을 쓸어 당겼다가 내보내기도 하고

몇 문장은 끝나지 않는 말줄임표로 되어 있다

 

하루에 두 번씩 보여주는 본문은

수정했던 흔적이 가득하고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 바다는 깊은 파문을 안고 있다

 

수없이 많은 생각을 깊숙이 넣어두고

윤슬로 떠오른 말들을 써놓은 바다의 문장은

그렇게 깊고 푸르다

 

바다가 차오르는 시간

새들도 부리에 물었던 오동 꽃을 바다의 책갈피에 꽂아두고

꽃 몸 내어 준 오동나무로 돌아온다

 

새와 바다와 오동나무가 저녁노을에 붉어진다

 

오동 꽃 숨이 바다의 내면으로 들어간다

 

 

 

 

- 월간 《우리詩》 2020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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