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망경
김경성
단단한 몸을 풀어내는 부들의 가계가 구름의 족속 같다
어쩌면 비단실 같기도 한
저 흰 실 꾸러미
부풀어질 대로 부풀어져서 옅은 숨의 색을 섞어가며
고요를 짜서 제 무늬를 짓는
지난여름 피워 올린 연꽃의 습한 말들이
제 속에 우물을 파놓았는지 흑단 빛이고
물 밖으로 솟아있는 연밥 속 수많은 눈은
물 위에 떠 있는 새들을 바라본다
조금 멀리 있을 때 더 잘 보이는 것이라고
내가 알던 당신이 낯선 사람이 되어 나를 비켜 갈 때처럼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연밥 동굴 속에 적막을 묻어둔다
호수 밑바닥에 눈동자를 넣어두고
몸 뒤집는 연밥 잠망경에
부들의 깃털 씨앗이 구름새가 되어 앉아있다
잘 짜진 말들이 잠망경에서 발아하여
끝 간 데 없이 번진다
- 계간 <<미네르바>> 2019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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