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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丹野의 깃털펜/김경성 - 근작시

잠망경 / 김경성

by 丹野 2019. 4. 30.





잠망경

 

김경성 

 

 

단단한 몸을 풀어내는 부들의 가계가 구름의 족속 같다

 

어쩌면 비단실 같기도 한

저 흰 실 꾸러미

부풀어질 대로 부풀어져서 옅은 숨의 색을 섞어가며

고요를 짜서 제 무늬를 짓는

 

지난여름 피워 올린 연꽃의 습한 말들이

제 속에 우물을 파놓았는지 흑단 빛이고

물 밖으로 솟아있는 연밥 속 수많은 눈은

물 위에 떠 있는 새들을 바라본다

 

조금 멀리 있을 때 더 잘 보이는 것이라고

내가 알던 당신이 낯선 사람이 되어 나를 비켜 갈 때처럼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연밥 동굴 속에 적막을 묻어둔다

 

호수 밑바닥에 눈동자를 넣어두고

몸 뒤집는 연밥 잠망경에

부들의 깃털 씨앗이 구름새가 되어 앉아있다

 

잘 짜진 말들이 잠망경에서 발아하여

끝 간 데 없이 번진다

 

 




- 계간 <<미네르바>> 2019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