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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丹野의 깃털펜/김경성 - 근작시

붉은 방에 번지는 무늬 / 김경성

by 丹野 2019. 4. 30.






붉은 방에 번지는 무늬

 

  

김경성



겹 창문 위로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잘라낸다

구부러지지 않고 직선으로 뻗어가는 선은 

지워내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앞으로 나아가고

 

문을 뜯어내고

창문에  얹으니

한 사람이 빛 속에 서 있다

 

처음부터  방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고양이 울음을 문틈으로 밀어 넣을 

눈먼 그림자만이 온갖 색을 지우며

점점 먹빛을 덧칠해가고

       

어떤 말에도 닿을 수 없어 본문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골목을 빠져나가는 바람보다 더 빠르게 잊히는 이방인이 되어

낡은 책 표지만 되새김질하는

    

누구라도 들어와서 내밀한 속을 들여다볼 수 있게 

온몸을 구부려서 둥근 방을 만들었지만

그 누구에게도 무엇이 될 수 없는 막막함이라니

 

한꺼번에 무너지는 토성土城이 되어

상처가 상처를 핥아주는 밤

 

붉은 방에 번지는 주술사의 말들

 

 

 

 - 계간 <<미네르바>> 2019년 봄호-신작소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