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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丹野의 깃털펜/김경성 - 근작시

달이 녹는다 / 김경성

by 丹野 2019. 4. 30.




달이 녹는다

  

김경성 

 

 

 

어둠을 만진 달이 녹는다

점점 묽어지다가 어느 순간 다 녹아서 사라진다

 

달의 즙이 온 세상에 젖어 들어 탱자나무 가시에도 고이고

숲 깊숙이 들어가서 나무를 휘감고 잎 잎마다 습자지 빛으로 본을 뜬다

 

달그림자가

미처 닦아내지 못한 나의 눈물을 어루만지며

한마디 말도 없이 방안에 고이는 것을 본 적 있다

오직 어둠 속에서만 일어나는 은밀한 위안

 

세상의 행간을 연결하는 전봇대의 서늘한 빛마저도 묽게 만들며

잘 벼린 어느 은장도 칼집 속으로 스며들려는지

한여름이면 부풀기도 전에 녹아드는 날이 많아졌다

밤이 지나고 흠뻑 젖어있는 새벽이 오면

지상에서 다시 돋아 오르는 달의 씨앗,

제 몸속에 단단하게 뭉쳐두었던 즙을 꺼내

이름도 모르는 어느 은자隱者의 눈 속으로 들어가

천천히 느리게 차오른다 

 


 



- 계간 <<미네르바>> 2019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