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말
김경성
갈기가 흔들릴 때마다 약속처럼
나도 흔들린다
물 밖은 위험해
솟구쳐 오르는 욕망을 물방울 하나로 누르며
멀리 나가고 싶은 마음마저 내려놓고
멈춤이 아니라 더 멀리 갈 수 있다고
갈기를 키우는 말은 암막 커튼을 걷어내고
발굽 아래로 흘러가는 길의 지류를 이마에 붙이는 일이라고
생이가래, 붕어마름, 올챙이솔, 쇠뜨기말, 솔잎가래, 물수세미 ……
그 사이에서 떼로 자라는 검정말은 달리는 말馬이 되었다가
물속 말이 되었다가
토슈즈를 신은 왕버드나무도
치마를 한껏 펼치고는 호수 속으로 뛰어 들어가
검은 말을 타기도 하고 검은 물풀이 되기도 하는
가을 한낮
당신은 안녕하신가
안부를 묻는 듯
물고기 떼를 품고 있는 검정말의 갈기가 흔들린다
- 계간 <<미네르바>> 2019년 봄호 -신작소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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