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사 석탑
시 : 김경성
그림 : 김성로
빛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빛보다 더 깊은 그림자를 제 안에 담고 있다
햇빛 싸안고 그 빛 부셔대며
몸의 무늬를 펴 가는 오래된 탑
조금씩 벌어진 틈으로 바람 새어들어 갔다
그때 어떤 말들이 함께 쓸려 들어갔는지
바람이 거세게 불 때마다 심하게 흔들리는 것이었다
용마루 타고 미끄러져 내린 시간 처마 끝에 닿아
빛깔 무너진 단청에 울컥 걸렸을 때
천육백 년 된 사원보다 더 오래된,
나무의 결 그대로 드러난 저 주심포의 말을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엉기고 기대어 제 몸에 스며든 그림자까지 모두
굽이쳐 흐르는
물결무늬 나뭇결 하나하나가
바람으로 익어간다는 것을 아는지
탑 그림자는 사원으로 들어가 있고 나무 그림자는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탑을 가만히 감싸 안고 있었다
아무것도 저 홀로인 것은 없다
기대고 기대어
스미고 스미어 익어가는 것이다
내 몸이 탑 그림자 속으로 들어갈 때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고 바람은 더 거세게 불었다
지는 해에 물든 황금빛 이파리
물고기 떼처럼 기왓장 틈으로 스며들었는데
내 그림자까지
탑 그림자에 섞여 출렁거리며
모든 것이 한 물결이 되어 흘러가고 있었다
- 시집『와온』문학의 전당,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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