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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풍경 너머의 풍경

[나무를 찾아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만의 생존 전략을 갖춘 나무의 슬기

by 丹野 2013. 7. 8.

[나무를 찾아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만의 생존 전략을 갖춘 나무의 슬기

   [2013. 7. 8]

장맛비 오락가락합니다. 비 내려도 더위는 여전한 후텁지근한 날씨입니다. 하릴없이 나무 그늘이 간절해지는 계절입니다. 천리포수목원에는 독특한 나무 그늘이 있습니다. 아직 우리 말 이름을 갖지 않은 ‘닛사(Nyssa sylvatica)'라는 이름의 나무가 지어내는 그늘이지요.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에서 천리포수목원의 나무를 소개할 때에 자주 보여드렸던 나무이기도 합니다. 곧게 솟아오른 나무 줄기에서 뻗은 나뭇가지가 일제히 차분하게 땅으로 늘어진 때문에 나무 그늘 안쪽은 휑한 여느 나무 그늘과 달리 안온한 느낌을 주는 나무 그늘이지요.

마치 잘 지은 아메리카 원주민의 천막 느낌입니다. 닛사 그늘 안에 들어서면 잠깐이나마 나무 그늘 바깥이 차단됩니다. 촘촘히 뻗어나온 나뭇가지가 초록의 장막으로 바깥 풍경을 가리는 것이죠. 바깥에서만 바라보면 그늘 안쪽의 안온함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예 나무 그늘 안쪽을 몸소 체험해 보시라고 그늘 안쪽에 데크를 놓았습니다. 나뭇가지를 다치지 않게 살금살금 그늘 안에 들어가서 독특한 그늘의 느낌을 가져보는 건 참 괜찮은 경험입니다.

   이 닛사에서 꽃이 피었습니다. 하기야 세상의 모든 나무에서 꽃이 피는 건 당연한 이치이니, 닛사에서 꽃이 피어난 게 그리 대단한 일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꽃이 아니어도 늘 바라보게 되는 인상적인 나무인 까닭에 그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신비로운 꽃에는 시선이 오래 머무를 수밖에 없습니다. 십오 년 째 천리포수목원을 찾아다니는 저로서도 닛사의 꽃에 이처럼 긴 시간 눈길을 빼앗긴 건 그리 흔치 않은 일입니다.

나무의 몸집에 비해 꽃송이가 작은 때문에 더 오래 바라보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물론 큰 나무들이라고 해서 꽃송이가 커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 느티나무나 은행나무처럼 크게 자라는 나무들이 피어내는 꽃 역시 눈에 뜨이지 않을 만큼 작으니까요. 닛사의 꽃도 워낙 작아서,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친다면 놓칠 수 있을 만큼 작습니다. 그러나 봄에 새 잎 날 때부터 가을에 붉은 단풍이 들 때까지 사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닛사를 그냥 지나치는 일은 없으니, 꽃 역시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꽃이 피어나는 초여름의 천리포수목원은 봄 못지 않게 눈길을 끄는 나무들이 많습니다. 바닷바람 때문인지, 천리포수목원에서는 봄도 그렇지만 여름의 발걸음도 매우 늦은 편입니다. 우리와는 기후가 다른 곳에서 자라던 식물들이 많은 것도 식물의 개화기를 특정하지 못하는 이유가 될 겁니다. 지난 유월 말에 제게 가장 눈에 뜨인 나무는 그래서 봄에 꽃을 피우는 산딸나무 종류였습니다.

산딸나무에는 종류가 많이 있습니다. 대개는 오월 중순 쯤에 꽃을 활짝 피우지만 유월 말까지 산딸나무 꽃은 그대로 피어있었습니다. 그냥 피어있는 게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만개 상태의 산딸나무가 여러 그루였습니다. 물론 이미 낙화한 나무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한창인 나무가 적지 않았습니다. 산딸나무의 개화 기간이 길다는 것도 유월 말까지 이 꽃을 볼 수 있는 이유가 되겠지요.

   산딸나무는 층층나무에 속하는 나무입니다. 층층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로는 산딸나무 외에도 층층나무와 말채나무 산수유 등이 있습니다. 층층나무과의 나무들은 이름에서 보는 것처럼 대개 가지를 옆으로 넓게 펼치되 층층이 단을 이루며 펼치는 특징을 가지지요. 층층나무 종류 중에서도 이처럼 층층이 단을 이루며 가지를 펼치는 특징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나무가 아마도 산딸나무일 겁니다. 멀리서 바라봐도 산딸나무가 층층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라는 걸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수평으로 펼친 나뭇가지 위에 꽃이 피어날 때의 모습은 특히 더 아름답습니다. 수평으로 뻗어난 가지 위에 줄줄이 꽃송이가 피어나, 바람에 살랑대는 꽃들의 군무(群舞)에서 나름의 멋을 느낄 수 있지요. 꽃이 피어나기 전에도 산딸나무는 층층나무처럼 수평으로 펼치는 나뭇가지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수평의 가지 위에 비교적 길쭉하게 올라오논 꽃대 위에서 환한 꽃을 피울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다른 어느 때에도 볼 수 없는 참 예쁜 모습입니다.

   나뭇가지 전체에 환한 꽃을 매달고 피어나서 갑자기 나무 주위가 환해진다는 느낌을 주는 산딸나무는 어쩌면 가지 전체에 환한 알전구를 촘촘히 매단 듯한 느낌도 줍니다. 천리포수목원의 산딸나무는 종류가 어렷이어서, 순결한 흰 빛으로 피어나는 꽃은 물론이고, 연한 핑크 빛으로 피어나는 꽃까지 다양합니다. 빛깔이 어찌 됐든 최소한 이 즈음에는 탐스러운 꽃이 화려한 산딸나무 곁에서 어떤 나무도 지나는 사람의 눈길을 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산딸나무, 수국, 헬레보러스 등 천리포수목원의 꽃을 소개할 때 여러 차례에 걸쳐 소개한 바 있지만, 위에 적은 꽃들에는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우리가 꽃이라고 부르는 부분 중에서 특히 꽃잎처럼 보이는 부분이 실은 꽃잎이 아니라는 겁니다. 산딸나무 종류의 나무들이 모두 그렇습니다. 실제로 산딸나무의 꽃은 사진의 꽃송이 가운데에 올망졸망 뭉쳐 있는 구슬같은 부분입니다.

   꽃이 워낙 작다 보니, 벌이나 나비의 눈에 뜨이지 않을 것을 걱정한 산딸나무는 나름대로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는 전략을 찾아냈습니다. 벌과 나비와 같은 수분곤충의 눈에 뜨일 만큼 돋보이는 무언가로 스스로의 꽃을 포장해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만들어낸 것이 바로 꽃잎처럼 보이는 부분입니다. 이건 원래 꽃받침이었는데, 꽃을 수분곤충의 눈에 뜨이도록 더 아름답게 변형시켜 지어낸 기관입니다. 식물학적으로는 '포(苞)'라고 부르는 특별한 기관이지요.

산딸나무 종류들은 모두가 가운데의 자그마한 꽃을 둘러싸고 네 장의 포가 정확하게 열 십(十)자를 이루며 돋아납니다. 포를 만들어 수분곤충의 눈에 뜨이려는 이같은 생존전략은 앞에서 이야기했던 다른 식물들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요즘 한창인 수국이 그렇고, 겨울 바람 물러가기 전부터 피어나는 풀꽃 헬레보러스도 그렇습니다. 살아 남기 위해서 자신만의 전략을 구사하는 식물의 생존 전략이 놀랍습니다.

   천리포수목원의 나무를 이야기할 때에 많은 분들이 ‘언제가 가장 아름다운가?’라는 질문을 많이 하십니다. 자주 찾기 어려우셔서, 기왕에 마음 먹고 간다면, 가장 아름다울 때에 찾으시려는 마음이겠지요. 그러나 이 질문에 답변 드리는 건 무척 어렵습니다. 사시사철 나름대로의 특징이 있고, 그 특징 하나하나의 아름다움은 결코 절대 비교가 불가능할 만큼 독자적이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련이 아름다운 수목원이라는 이유로 대개는 목련 꽃 필 무렵에 방문하시면 좋으리라고 답변 드리곤 합니다.

하지만 그 답변도 그리 좋은 게 아닙니다. 목련 꽃 피는 사월에서 오월과 달리 유월과 칠월에는 크고 작은 다양한 꽃들이 줄지어 피어납니다. 미처 이름을 알 수 없는 풀꽃에서부터 앞에서 말씀드린 닛사처럼 뜻밖의 큰 나무들에서도 꽃을 볼 수 있거든요. 이 계절은 또 습지에서 자라는 수생식물들이 화려하게 제 색을 뽐낼 때입니다. 특히 이달 초하루부터 새로 시작한 ‘수련 축제’는 또 하나의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길 겁니다. 이번 수련축제는 우리 토종 수련 종류는 물론이고 열대 수련까지 포함해 무려 1백 여 종의 수련을 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입니다.

   이제 ‘나무 편지’를 띄우며 천리포로 떠나겠습니다. 여느 계절에 비할 수 없이 다양한 꽃들이 활짝 피어있는 그곳에서 싱그럽게 흐르는 여름의 시간을 가만히 바라보고 돌아오겠습니다.

끝으로 ‘나무 편지 추천 이벤트’에 대해 알려드립니다. 우선 지난 열흘 남짓 동안 많은 분께 나무편지를 추천해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부터 올립니다. 아직은 통계를 내지 않았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이달 말까지 통계를 내서 다섯 분께 제 책을 우편으로 전해드리겠습니다. 나무편지를 추천해주시려면, 홈페이지 솔숲닷컴의 왼쪽 메뉴 가운데 [나무편지 추천하기]에 들어가셔서 글을 남겨주셔도 되고, 홈페이지 접속이 불편하시다면 제게 이메일(gohkh@solsup.com)로 직접 알려주셔도 됩니다.

많은 분들의 ‘나무 편지 추천’과 관련한 관심과 성원을 기대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고규홍(gohkh@solsup.com)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