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탑 전면 해체-복원은 1000년만의 대역사
기사입력 2012-09-28 03:00:00 기사수정 2012-09-28 03:00:
27일 오후 경북 경주 불국사 경내. 성타 불국사 주지 스님이 반야심경을 봉독하고 발원문을 낭독하는 고불(告佛) 의식을 올렸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20호 석장 기능 보유자 이의상 선생(70)이 직접 손으로 떼어낸 삼층석탑(석가탑) 상륜부 맨 꼭대기의 보주(寶珠·구슬 모양의 장식물)를 성타 스님과 최양식 경주시장, 최종덕 문화재청 문화재보존국장, 김영원 국립문화재연구소장 등이 탑 아래로 서서히 내렸다. 통일신라 시대를 대표하는 국보 21호 석가탑이 전면 해체, 수리 및 복원 작업에 들어가는 순간이다.
신라 경덕왕 1년(740년) 불국사 창건 시 조성된 석가탑이 해체, 복원되는 것은 고려 정종 4년(1038년) 중수 이후 약 1000년 만의 일이다. 근대에 들어서는 1966년 사리장엄구(舍利裝嚴具·사리를 봉안하는 장치)를 노린 도굴 미수 사건으로 탑의 일부가 훼손돼 부분 해체 수리한 바 있다.
○ 왜 해체하나
2010년 말 석가탑 기단석에서 길이 1.32m, 폭 최대 5mm의 균열이 확인됐다. 문화재위원회 건축분과위원회는 지난해 5월 회의를 열어 석가탑을 전면 해체해 복원하기로 결정했다. 균열과 이격(離隔·사이가 벌어지는 현상) 등이 나타난 부위가 탑 전체를 떠받치는 기단석이기 때문이다. 석가탑 기단 내부에 돌과 흙을 채워 넣은 적심(積心)이 비면서 탑 하중이 균형 있게 분산되지 못해 균열과 이격이 생겨났다. 이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훼손 상태를 세밀히 점검한 결과 기단부뿐만 아니라 탑신부, 상륜부 모두 심각하게 훼손된 것으로 드러났다.
기단부의 하층 기단에 이격과 균열이 발견됐고 상층 기단은 탑 일부가 떨어져 나갔다. 면석 위를 덮은 돌인 갑석 역시 하층 기단면석과 마찬가지로 이격과 균열이 나타났다. 3층으로 구성되는 탑신부에서는 1층 탑신의 한쪽 귀퉁이가 떨어져 나갔으며, 모퉁이 기둥돌인 3층 우주도 소실됐다. 상륜부에서는 꼭대기 전체를 받치는 접시 모양의 시설인 노반 모서리가 파손됐으며 꼭대기 보주는 금이 갔다.
○ 어떻게 복원하나
석가탑의 해체, 수리 및 복원 작업을 맡은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내년 초까지 석가탑을 전면 해체하고 부재(部材·탑의 재료)에 대한 보존처리를 한 후 다시 쌓아올려 2014년 12월 복원을 완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예산은 30억 원이다.
복원 작업에는 석탑의 원재료를 최대한 사용하고 불가피한 경우에만 새 부재로 교체한다. 이격과 균열 부위는 다시 붙여 사용하고 기단부 균열의 원인이 된 텅 빈 적심은 보강한다. 새 부재의 경우 기존 부재와 동일한 곳에서 나온 화강석을 쓸 예정이다.
해체 및 수리, 복원 등 전 과정은 현재 석가탑을 둘러싼 철골 덧집 안에서 이뤄진다. 무게가 무거운 기단부와 탑신부는 기중기로, 가벼운 상륜부는 직접 손으로 작업한다. 덧집이 투명 창으로 돼 있어 일반 관람객도 해체, 복원의 전 과정을 볼 수 있다.
석탑과 하부 지반(地盤) 조사도 하는데, 만약 유물이 발견되면 전체 일정이 다소 늦춰질 수 있다. 배병선 국립문화재연구소 건축문화재연구실장은 “신라 석탑의 경우 탑 밑의 땅에 귀걸이, 팔찌, 허리띠 장식 등 유물이 많이 묻혀 있다”며 “석가탑도 지반에 중요한 유물이 묻혀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석가탑 옆의 다보탑(국보 20호)은 2008년 상층부 일부를 해체, 복원한 바 있다.
경주=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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