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트리]
죽어도 못 버리는 사람을 위한 버리는 기술
전셋집 사는 사람들의 또 하나의 민족 대이동, 이사. 에디터는 얼마 전 '주인님과의 협상 결렬'로 2년간 살던 '작은 집'을 떠나 '더 작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잡동사니와의 전쟁은 바로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아무리 견적을 내봐도 더 이상 함께 살기는 무리라는 판단을 내린 소파와 덩치 큰 서랍장 같은 가구는 오히려 포기가 빨랐다.
그래서 '이건 어디 놓냐' '저건 어디 놓냐'를 물어오는 이삿짐센터 아저씨의 말에 '일단 여기 가운데 놓아주세요'를 반복했고, 마침내 모두가 떠나고 정신을 차렸을 땐 (농담 하나 안 보태고) 발 디딜 공간 없이 짐 더미에 갇혀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버림'으로 여백을 확보하지 않으면 정리와 수납 자체가 힘든 상황이었다. 에디터는 그 길로 50ℓ 쓰레기봉투 3장을 사왔다.(3장 이상은 버릴 수 없다는 각오였다.) 그리고 버릴 것과 남길 것을 구별하기 시작했다. 그건 병아리의 암수를 구별하는 일만큼 힘들었고, 「tv쇼 진품명품」의 감정위원단보다 신중을 기하는 일이었다.
1시간이 지났지만 봉투는 채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단지, 오른쪽에 있던 물건이 왼쪽으로 자리를 이동했을 뿐이었다. 보다 못한 친구가 한숨을 쉬며 물었다. '근데 도대체 네가 절대 버릴 수 없다는 이 밧줄은 앞으로 뭐에 쓸 것이며, 이 고장난 300만 화소 디지털카메라는 어디에 쓸 것이며, 빈 와인병은 대체 왜 버리지 않는 것이냐'고. 에디터는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밧줄은 앞으로 뭔가 묶을 때 요긴하게 사용될 것이며, 구닥다리 카메라는 비록 고장은 났지만 비싸게 주고 산 것이라 버릴 수가 없고, 와인병은 꽃병으로 쓰면 정말 좋은 라인을 가졌고, 목이 늘어난 옷들은 집에서 잘 때 입으면 된다"고. 하지만 궁색한 변명은 3일을 넘지 못했다. 그렇게 '아끼는 잡동사니' 속에서 며칠을 생활한 에디터는 '버려야 산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하고 깨달았다.
그것은 단순히 집이 더럽고 깨끗하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올해 초 호기심에 읽었던 『잡동사니의 역습』이라는 책 속의 '콜리어 형제 사건'이 떠올랐던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집 안 가득한 잡동사니 속에 끼어 질식사한 두 노인의 끔찍한 실화. 결국 잡동사니가 사람까지 죽게 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생각이 미친 에디터는 본격적으로 '버리기'에 나섰다.
가치판단의 기준은 오직 '지금 필요하느냐'였다. 지난 2년간 한 번도 입지 않은 옷가지, 여행지에서 기념으로 집어온 지도와 팸플릿들, 사은품으로 받은 텀블러와 머그잔, 심지어 유통기한 지난 건강식품과 식료품 등이 가차 없이 쓰레기봉투에 넣어졌다. 장판의 무늬를 볼 수 있게 된 건 10개의 대용량 쓰레기봉투가 불룩해진 채 밖으로 나간 뒤였다.
집의 인테리어를 생각할 수 있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그림을 어디에 걸지, 화분을 어느 자리에 배치할지에 대한 '의욕'이 생겨났다. 정리된 부엌에선 새로이 요리가 하고 싶어졌고, 깨끗해진 책상 위에선 책 한 권이라도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정돈된 공간이 곧 생활에 대한 마음가짐까지 달라지게 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었다.
즉, '미지의 어느 날 귀중하게 쓰일지도 모를' 쓸데없는 잡동사니를 껴안고 있는 일이 사실은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것을 몸소 깨닫게 된 것이다. 물론 극단에 치달아 행했던 '무분별하게 버리기'의 부작용은 있었다. 한동안 '아직 쓸 만한 물건이었는데' 혹은 '그게 얼마짜린데… '식의 후회와 미련이 남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것이 없어서 불편했거나 곤란을 겪었던 일은 단 한 번도 없다. 결국 버리지 못하는 것은 ?미련'의 산물이다. 버리기. 모든 정리의 기본은 바로 ?버리기'다. 버리지 않는다면 결국 매일 정리하기를 반복해야 할 것이다. 그것만큼 비효율적인 일이 또 어딨냔 말이다. 그러니 '잘 버리는 기술'을 숙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정리력 체크리스트
□ 필요한 물건을 제때 찾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
□ 사놓고 사용하지 않아 방치된 물건이 꽤 있다.
□ 이사 갈 때가 되면 옮겨야 할 짐이 너무 많아 걱정이다.
□ 집이나 사무실에서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이 잦다.
□ 집이 좁아서 물건을 넣을 공간이 부족하다.
□ 옷장에서 옷은 넘쳐나는데 이상하게 입을 옷은 없다.
□ 책상 위를 날마다 청소하지 않는다. 물건을 잘 버리지 않는다.
□ 언젠가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 주변 사람들로부터 종종 정리 좀 하라는 소리를 듣는다.
□ 청소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다.
8개 이상
정리 포기형
6~7개
정리 걸음마형
3~5개
정리 잠재형
2개 이하
정리 엘리트형
정리의 기술 실전편
1
버리기 작업을 할 때는 절대 수납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 물건은 어디에 둘 수 있을까, 그 선반에 전부 놓을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그 물건은 결코 버릴 수 없다. 물건을 버릴 때의 기준은 만졌을 때 설레는가, 그 물건이 있어 행복한가이다. 그렇지 않다면 과감히 쓰레기통에 넣어라.
2
한 번에, 짧은 기간에, 완벽히 정리해야 한다. 정리할 때 우물쭈물하면 아침부터 시작했는데 어영부영 저녁이 되고, 그런데도 방은 좀처럼 깨끗해지지 않는다. 시간은 시간대로 낭비하고 몸은 몸대로 지쳐 결국 정리가 하기 싫어진다.
3
졸업 후 한 번도 보지 않은 전공 서적, 날씬했을 때 입었던 옷, 내 취향이 아닌 선물, 1년 동안 한 번도 쓰지 않은 물건, 입으면 불편한 옷, 읽다가 포기한 책, 안 쓰는 볼펜, 무겁거나 불편해서 사용하지 않는 청소용품, 누군가에게 주거나 팔려고 꺼내두고 방치한 물건은 무조건 버려라.
4
물건을 정리할 때는 장소별로 해서는 안 된다. 침실의 물건을 정리한 후 거실을 정리한다거나 서랍 속 물건을 위칸부터 정리한다거나 하는 일은 아주 잘못된 방법이다. 대부분의 가정에는 같은 종류의 물건이라도 두 곳 이상의 장소에 분산되어 있기 때문이다.
같은 유형의 물건이 이곳저곳에서 출몰하는 상황이 자주 생기면 그때마다 물건을 버릴지 남길지를 판단하고, 그러면 몇 배로 힘이 들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집 안의 물건을 모두 한곳에 모아놓고 한꺼번에 정리를 해야 한다. 옷 정리도 마찬가지다. 집 안의 모든 옷을 남김 없이 한곳에 쌓아보면 분명 같은 디자인의 옷을 여러 벌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5
의류, 책, 서류, 소품순으로 정리하고 추억의 물건은 가장 나중에 한다. 워낙 양이 많은 데다 남길지 버릴지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 처음부터 난이도가 높은 걸 하다 보면 결국 포기해버릴 확률이 높다.
6
버릴 물건을 가족에게 보이지 말고, 내가 쓰지 않는 물건이라 해도 가족에게 주지 마라. 상대방에게 필요하다면 좋은 일이지만 대부분은 단순히 버리기 아까워서 가족에게 떠넘기는 이유가 강하다. 결국은 악습이 되풀이된다.
7
버리기 아까운 옷이라고 실내복으로 입지 마라. 아까워서 실내복으로 입으면 옷의 양은 줄지 않고, 실내복만 산더미처럼 쌓일 것이다.
8
옷은 가능하면 개어서 수납해라. 옷을 수납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옷걸이를 사용해 거는 것과 접어서 서랍에 보관하는 것. 수납력 측면에서 봤을 때 개어서 수납하는 것이 거는 것보다 훨씬 수납력이 크다. 일반적으로 10벌 걸 공간이 있을 경우, 옷을 바르게 개면 20~40벌도 수납할 수 있다. 수납 문제는 대부분 바르게 개는 것만으로도 거의 해결될 수 있다. 갠 옷은 책꽂이에 책을 꽂듯 세운 상태로 수납하는 것이 좋다.
9
책 정리할 때 역시 책장에서 전부 책을 꺼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일일이 만져보고 설렘이 있는 책만을 취한다. 선별 작업 중에 내용은 보지 마라. 책을 읽게 되면 설렘이 아니라 필요성으로 정리하기 때문이다. 또 언젠가 읽으려고 분류한 책은 과감히 버려라. 그 언젠가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10
나의 취향과 멀어 상자째 보관하거나 한 번 쓰고 그대로 방치된 선물받은 물건은 과감히 떠나보내라. 선물은 어차피 물건 자체보다 마음의 표현이다. 받은 순간 설렘을 준 것에 감사하고 그 후에는 떠나보내는 것이 선물한 사람을 위해서도 낫다.
11
추억의 물건은 버리기 힘들다. 추억이 담긴 물건을 버리면 그 추억도 사라질 것 같은 기분 때문이다. 하지만 물건을 버린다고 해서 소중한 추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 다. 추억의 물건 역시 만졌을 때 설렘을 준다면 남기고 아니면 버려라.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은, 친정을 추억의 물건의 피난처로 삼지 말라는 것이다. 친정에 보내는 것을 마지막으로 그 박스가 열리는 일은 두 번 다시 없기 때문이다.
12
모든 물건에 제 위치를 정해줘라. 하나라도 주소가 명확하지 않은 물건이 있으면 방 안이 어지럽혀질 가능성이 높다. 제 위치가 없는 물건은 결국 빈 선반에 아무렇게나 놓이고 순식간에 주변은 그런 잡동사니로 채워진다. 모든 물건, 하다 못해 영수증 하나에도 제 위치를 정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
기획_김현명 기자 사진_박충열
레몬트리 2012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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