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가 있는 것들은 화진포에 와서 죽는다*
김경성
먼 곳에서 밀려온 바닷물은
가시가 많이 돋아있는 몸을
백사장까지 밀고와서 제 몸을 던지거나
그도 아니면 제 속을 뒤척이며
오체투지를 한다
끝내 부르지 못하고
놓쳐버린 것들의 목록을 되새김질할 때
견고한 상처는 바위에 부딪히며 꽃으로 피어나지만
금세 지고 말아
꺾을 수 없는 꽃들에게 마음을 내밀어서
한 아름 가슴에 안아보지만
내 안에서 사그락거리는 말들과 섞여서
부서져 버린다
오,
가시를 모두 떼어내고 둥글어질 수 있을까
바다에서 피어난 상처의 꽃숭어리가
화진포 백사장에 겹겹이 걸쳐 있다
화관을 만들어 바다의 머리맡에 놓아두는
*로맹 가리의 소설 제목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는다'
계간 『시와산문』2012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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