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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丹野의 깃털펜/시집『내가붉었던것처럼당신도붉다』

상처가 있는 것들은 화진포에 와서 죽는다* / 김경성

by 丹野 2019. 8. 12.

 


 



 



 



상처가 있는 것들은 화진포에 와서 죽는다*

김경성

 

 

먼 곳에서 밀려온 바닷물은

가시가 많이 돋아있는 몸을

백사장까지 밀고와서 제 몸을 던지거나

그도 아니면 제 속을 뒤척이며

오체투지를 한다 

 

끝내 부르지 못하고 

놓쳐버린 것들의 목록을 되새김질할 때

견고한 상처는 바위에 부딪히며 꽃으로 피어나지만

금세 지고 말아

 

꺾을 수 없는 꽃들에게 마음을 내밀어서

한 아름 가슴에 안아보지만

내 안에서 사그락거리는 말들과 섞여서

부서져 버린다

 

오,

가시를 모두 떼어내고 둥글어질 수 있을까

 

바다에서 피어난 상처의 꽃숭어리가

화진포 백사장에 겹겹이 걸쳐 있다

 

화관을 만들어 바다의 머리맡에 놓아두는

 

 

 

*로맹 가리의 소설 제목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는다'


 

 

계간 『시와산문』2012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