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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丹野의 깃털펜/시집『내가붉었던것처럼당신도붉다』

깨진 거울도 거울이라 부른다 / 김경성

by 丹野 2019. 8. 12.

 

 

 

깨진 거울도 거울이라 부른다 / 김경성

  

 

교동도 대룡마을 빈집 담장 아래

돋움별 떨어졌던 자리가 깊다

마당 가에 피어난 맨드라미 핏빛 물 뚝뚝 떨어진다

깨진 거울이 이끼 낀 담벼락에 버려진 채

직립에 머물렀던 시간을 해체하는 중이다

 

거울이 깨지기 전에 들어가 있었던 한 사람이 문을 열어준다

날카로운 모서리로 풍경이 들어간다

상처 난 가슴에 들이는 것들은 모두 무엇이 될까

거울 속을 드나들던 것들은 말이 없다

깨진 풍경을 들고 사라져버린 거울의 파편은

오래전 이곳에 있었던 사람들의 낙관이다

 

벽시계 초침소리가 골목 안까지 흘렀던 때,

전파상에서는 주파수가 맞지 않는 라디오 소리가

찌륵 찌륵 새울음처럼 흘러나왔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시간이 아니라 사람들의 숨이다

닫혀있는 시계방의 벽시계가 모두 멈추어있다

이제 태엽을 감아야 한다

저녁을 여는 시계추 깊게 흔들린다

 

한 무리의 새떼가 저녁하늘에 해서체를 쓰며 날아간다

겹쳐진 저 문장은 그 저녁에 지나갔던 새떼가 써놓았던 고서古書이다

낙관에 묻어있었던 붉은 인주가 맨드라미의 몸 속으로 들어가서

깨진 거울의 모서리를 맞추는지

거울 속의 문고리가 따스하다

똬리를 틀었던 몸을 푼다

 

 

 

 

계간 『 불교문예』  2011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