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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丹野의 깃털펜/시집『내가붉었던것처럼당신도붉다』

금목서가 있는 풍경

by 丹野 2019. 8. 12.




금목서가 있는 풍경 / 김경성

 

   

물 위를 걷는 그의 등에는 푸른 지느러미가 있다

부력의 힘으로 걸어가는 그의 발등을 결이 선명한 나무로 덮었다

가득히 부풀어 오르는 나이테를 어루만지면 

물비늘이 눈이 멀 만큼 깊게 꽂힌다

 

앞으로 나갈수록 점점 더 흔들리는 

그의 몸속에 들어 있는 깊은 방은 

문이 열릴 때마다 해류를 타고 떠다니는 

눈먼 물고기의 꺾인 지느러미가 적어놓은 고서古書다

 

처음부터 바다가 아니었고 

어디선가 밀려오는 물길이 차올라서 바다가 되었던 것을 

바닥에 가라앉은 청자와 달항아리 속으로 들어간  

플랑크톤의 집이었던 그의 내부는  

풀 수 없는 암호로 가득하고

   

섬으로 드나드는 물의 길목을 벗어나면 

키 큰 금목서 근처 댕댕이덩굴 매어놓은 자리 깊어서 

뭍에 아가미를 걸치고  

제 속에 품었던 깊은숨 내쉴 때 

바람을 타고 흘러오는 금목서 향기 폐부 깊숙이 파고들어서  

한잠 든 듯 깨어나고 싶지 않으리라

 

스치듯 바람에 묻어나는 

금목서 짙은 향내 울컥 목에 걸린 채  

비늘 켜켜이 꽃내음 쟁여두고 긴 잠에 드는 시간,  

몸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은밀한 방 안까지

차오른 꽃내 가득하여라

 

 

 

- 계간 『 시인정신』 2011년 여름호

 

 















 

Il Ferroviere - 철도원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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