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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 램프를 켜다

죽음의 문턱서 만난 詩… 그와 한몸이 되련다

by 丹野 2011. 12. 11.

 

 

죽음의 문턱서 만난 詩… 그와 한몸이 되련다



 정일근

 

 헬레나 노르베리가 쓴 책 ‘오래된 미래_라다크에서 배운다’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우리는 끝없는 경제 성장과 물질적인 번영이 정신적 사회적 빈곤, 심리적 불안정 그리고 문화적 생명력의 상실을 대가로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다.’ 그 책에서의 지적처럼 나도 그런 것을 잊어버리고 살았다. 진작 알고 있었다고 해도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 詩는 우리마을 은현리의 자연이 불러주는 '받아쓰기'
  난 이곳에 '詩앗'을 뿌린다 자연과 하나가 되기위하여

  시인이 되고도 나는 달려갔다. 달리는 현대성의 시간을 따라 오토바이처럼 달렸다. 그 때는 몰랐다. 달려가야 하는 것이 삶이고 시(詩)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생(生)의 가속도에는 결승점이나 도착지가 없다는 것을 1998년 내가 마흔이 되기 전까지는 몰랐다.
  내게 불혹(不惑)은 특별했다. 그때서야 달리는 것만이 삶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달려가면 갈수록 자신이 도착하려는 결승점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알았다. 깨달음은 급정거를 할 때 온다. 요란한 굉음과 함께 급정거를 했을 때 나는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라는 질문에 먼저 대답부터 해야겠다. 1998년 이후의 나는 내가 떠나온 몸인 ‘오래된 미래’로 돌아가기 위해서 시를 쓴다. 그 이전의 내 시와 지금의 내 시는 같은 이름이지만 몸은 다르다.
  1984년 10월 ‘실천문학’(5권)과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이 된 후 그 때까지의 시는 ‘발언’이라는 생각이었다. 시로써 나를 발언하고 내가 사는 시대에 대해 발언했다. 1998년 5월 이후 내게 시는 몸이다. 나는 시와 한 몸이 되고 있다. 시와 삶이 둘이 아닌 하나가 되고 싶은 것이다.
  나는 은현리(銀峴里)란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산골마을에 살고 있다. 농사를 짓고 사는 은현리 사람들에게 나는 국외자다. 한 평 묵정밭도 갖지 못한 나를 그들은 ‘은현리 사람’으로 쳐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함께 은현리에 살아도 그들은 ‘오래된 미래’에 살고 나는 그곳으로 돌아가길 희망하는 사람이다.
  나는 그들에게 편입되기 위해, 은현리에 살기 위해, 오래된 미래로 돌아가 살기 위해 시를 쓴다. 시가 내 농사이며 내 존재의 방식이다.

  은현리 들판으로 가을이 당도하고 있다. 가을이 오려는 것인지, 어젯밤에는 한 발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가 은현리를 덮었다. 지독한 안개였다. 마을 들판으로 저녁산책을 나갔다가는 안개 속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은현리도, 은현리로 가는 길도 모두 안개 속에 행방불명이 되고 말았다.
  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안개를 피워 놓고 여름과 가을의 신이 자리를 바꿔 앉는 것일까. 나는 안개 속에서 여름이 떠나는 내음과 가을이 찾아오는 내음을 동시에 맡았다.

  그 비밀스러운 의식 앞에 마을의 개 한 마리 짖지 않고 대숲에 사는 새들도 울지 않았다. 나는 밀교의 경전을 읽듯 은현리 밤 안개를 읽고 있었다. 그 짙은 안개 속에서도 나는 시를 읽고 있었다.
  그렇다. 은현리는 내가 새로 읽고 있는 ‘문학 교과서’이다.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어린아이가 되어 연필에 침을 발라가며 은현리의 자연이 불러주는 대로‘받아쓰기’를 하고 있다.
  그 받아쓰기가 내 시가 되고 있다. 최근 발표하는 내 시 속에 은현리란 말이 많이 들어가고 있다. 2년 전 나는 울산시 울주군 웅촌면 은현리로 주민등록을 옮겼다.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군민이 되고, 면민이 되고, 부락 주민이 되었다.
  이십대 후반과 삼십대 전부를 일간지 사회부 기자로 일했던 나는 불혹을 지나며 크게 망가지고 말았다. 대책 없이 쓰러지고 결국 머리를 여는 수술을 받았고, 죽음의 끝에서 돌아왔다. 그것은 잠시 잠깐의 일이었다. 그러나 그 잠시 잠깐 사이 세상은 변했다. 돌아왔을 때 세상은 내가 살던 그 세상이 아니었다. 나는 생명보험에도 가입할 수 없었고, 일본 비자도 나오지 않았고, 새로운 신용카드도 만들 수 없었다. 나는 이방인이었다.

  의사는 스트레스가 머리 속에 시커먼 탁구공 만한 혹을 만들었다고 했지만 그건 내가 만든 세상의 상처였다. 나는 언제나, 모든 것에 자신만만했으므로 세상 깊숙이 칼을 찔러 넣었다. 그러나 그 칼에 피 흘리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수술 이후 3년 간의 회복기를 거치면서 시집 한 권을 냈다. 고마웠다. 나에게 끝까지 등 돌리지 않은 것이 시였고 내 주머니 속에 남아있는 것도 시였기에 나는 시로 귀의하기로 했다. 사실 나는 시밖에 쓸 줄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삶이 시를 데리고 가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 때부터 시가 나를 구원했다.
  그렇다고 전업시인이 되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늘 깨어있는 시인이 되고 싶었다. 원고청탁을 받고서야 시를 쓰는, 마감일에 쫓기거나 독촉을 받으면서 시를 쓰는 그런 시인이 되지 않고 싶었다. 시가 나를 구원했으니 시에 충실하고 성실해지고 싶었다.
  은현리 이야기를 좀 더 해야겠다. 은현리는 시골마을이며 산골마을이다. 울산이라는 공업도시에 있는 마을이지만 아름다운 마을이다. 내게 은현리가 아름다운 이유는 전원의 풍경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논에다 벼를 심고 밭에다 푸성귀를 심고 소를 기르는 사람의 농사가 고스란히 살아있는 마을이기 때문이다.
  은현리에는 앞으로는 넓고 비옥한 들판이 펼쳐져 있고 뒤로는 솥발산(鼎足山ㆍ정족산)이 솟아 있다. 솥발산에는 산지 늪으로 널리 알려진, 환경보호지구인 ‘무제치늪’이 있다. 그 덕분에 은현리 사람들은 6,000년 전에 형성됐다는 무제치늪이 걸러서 내려주는 깨끗한 산물을 받아먹고 산다.
  나는 은현리에 와서 수돗물 시대를 청산했다. 흐르는 물을 받아먹고 살았던 옛날로 돌아왔다. 나는 자연이 ‘헬레나 노르베리’가 히말라야 라다크에서 찾았던 ‘오래된 미래’의 요체라는 사실에 절감했다. 그 자연이 히말라야처럼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 살아 있다는 것도 알았다.
  물이 바뀌면서 나도 변하기 시작했다. 사람 몸의 70%가 물이다. 사람을 구성하는 물이 바뀌면 사람도 변하는 모양이다. 나는 마당에 나무도 심었고 개도 기르면서 삶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시는 쓰는 것이 아니라 받아쓰는 것이라는 생각도 얻었다.

  자연을 받아쓰기 위해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은현리의 나무와 꽃과 새와 벌레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었다. 부끄러웠다. 20년 가까이 이 땅의 서정 시인인 것을 자부하면서 살았지만 나에게는 자신에게 불러줄 친구들, 자연의 이름이 없었다.
  자연의 이름에 대한 무지는 큰 부끄러움이 되었지만 그 이름들을 배워 불러주는 것은 더 큰 기쁨이 되었다. 우리 집 마당에 제일 먼저 피는 봄까치꽃과 은현리에서 가장 늦게 피는 용담꽃, 온 몸에 가시를 달고서도 향긋한 개두릅을 피우는 엄나무, 산길에서 마치 길을 안내해주는 것처럼 튀어 가는 비단길앞잡이, 겁이 많은 휘파람새… 나는 그 친구들을 은현리에서 처음 만났다. 내가 이름을 불러주면서 우리는 친구가 되었고 그들은 내 시 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은현리에서 두 번째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노란 꽃을 피운 호박은 속살이 노랗게 익어가고 하얀 꽃을 피운 박은 속살이 하얗게 익어 간다는 것을, 지난해 가을 은현리 들판에서 배웠다.
  자연의 가르침은 그냥 그대로 시가 된다. 자연의 가르침 속에는 시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부처의 깨달음도, 노자의 도도, 장자의 무위자연도 다 자연 속에 있었다. 자연 속에서 모두 하나였다.
  은현리에서는 꽃 색깔대로 속살이 익어 간다. 사람의 속살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땅을 푸르게 만든 사람은 속살도 푸른빛으로 빛나고, 가을 들판으로 황금빛으로 만든 사람은 속살도 금빛으로 빛나는 법이다.
  은현리에서 나는 ‘시(詩)앗’을 뿌리며 살고 있다. 지난여름에 뿌려놓은 내 시(詩)앗이 이번 가을에는 어떤 꽃을 피우고 어떤 속살로 익어갈 지는 모른다. 궁금하지도 않다. 그건 자연의 뜻이다. 농사도 그렇다. 농사일에는 사람의 일이 있고 하늘의 일이 있다.

  시인(詩人)이 무엇인가? 진정한 시인이란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시와 한 몸이 된 사람이다. 그래서 시인인 것이다. 시와 함께 죽을 수 있어야 시와 함께 살 수 있다. 시인이 되기 위해, 시와 한 몸이 되기 위해 나는 시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