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고단 가는 길 / 김경성
서어나무 흰 수피 빗금 그어서 달의 근처까지 길을 냈다
물봉선화 입술 벌려 날개 젖은 나비를 물고 있다
길을 따라 걸어가면 달의 문에 닿을 수 있을까, 휘청거리며 산길을 걸었다
몸의 모든 뼈가 달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숲 언저리를 두드렸다
새들은 구름 속으로 몸을 던지고
물봉선화 입에 앉은 나비도 보이지 않았다
내 등을 미는 보이지 않는 손, 뒤돌아서서 서어나무 흰 잔등에 얼굴을 묻었다
잔잎들이 술렁거리며 그림자 잘게 부쉈다
몸 위에 수북이 쌓이는 서어나무 속말들 어쩌지 못하고
몸 구부려서 꽃잔을 만들었다
꽃잔을 감싸 안는 따스한 그림자
아……
원추리꽃 너머로
아슴하게
보이는
- 월간 『 예술세계』 2011년 9월호
'丹野의 깃털펜 > 시집『내가붉었던것처럼당신도붉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막의 가슴은 깊다 (0) | 2019.08.13 |
---|---|
견고한 체위 (0) | 2019.08.12 |
비봉리 *환목주丸木舟 (0) | 2019.08.12 |
목제미륵보살반가사유상 (0) | 2019.08.12 |
갑사 철당간* / 김경성 (0) | 2019.08.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