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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풍경 너머의 풍경

화려한 여름 꽃과 우리나라 최고의 뽕나무 한 쌍

by 丹野 2011. 7. 11.

[나무를 찾아서] 화려한 여름 꽃과 우리나라 최고의 뽕나무 한 쌍

   독특한 모습으로 피어난 아칸서스 헝가리쿠스의 꽃.

   [2011. 7. 11]

   비 오는 날은 공 치는 날입니다. 요즘처럼 장맛비가 이어지는 때에는 연일 공 치는 날입니다. 앉아서 지내는 날이 많으니, 덜 피곤해야 마땅하겠지만, 마음이 안절부절못하는 탓에 피로도는 오히려 더 높지 싶습니다. 비 내린다고 연재 중인 칼럼을 거를 수 없는 까닭입니다. 지난 해 이맘 때에 취재했던 나무 이야기를 쓰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그건 내키지 않는 일입니다. 짬짬이 기상청 일기예보를 살펴보며 그나마 비가 덜 오는 곳을 찾아서 부리나케 떠날 준비로 몸이 달아오르곤 하지요.

   그런 와중에 주말에는 평창에 다녀왔습니다. 뉴스를 진행하는 어떤 이가 눈물을 머금고 이야기하는 걸 보며 섬뜩하기까지 했던 그 뉴스에 한 술 거들려 한 건 절대 아닙니다. 마침 강원 지역에 오후 한 나절 두어 시간 동안 비가 잠시 그친다는 예보를 전적으로 믿고 달려갔을 뿐입니다. 물론 평창 중심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사시는 분들의 이번 일에 대한 느낌이나 반응은 어떨 지 알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7월이면 서서히 꽃을 피우는 아칸서스 헝가리쿠스.

   평창읍에서 조금 떨어진 약수리라는 곳의 느릅나무를 찾아볼 요량이었습니다. 몇 해 전 여행 중에 우연히 만났던 나무이지만, 그 위용이 뛰어나 잊지 못하는 훌륭한 나무입니다. 생육 환경이 그리 좋은 건 아니지만, 나무는 언제 보아도 훌륭합니다. 좀더 살펴보아야 하겠지만, 아마도 이 나무는 우리나라의 느릅나무 가운데에 가장 키가 큰 나무이지 싶습니다. 줄기 둘레로 치면 강원도의 다른 곳의 느릅나무에 조금 못 미치는 듯한데, 키만으로는 아마 최고이지 싶은 겁니다.

   이 느릅나무 이야기는 나무 바로 앞에서 태어나 젊었을 때 잠시 도시에 나와 살다가 다시 나무 앞에 돌아와 사시는 마을 아저씨 이야기와 함께 다음 주 칼럼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이 느릅나무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담겨 있어요. 하늘의 옥황상제가 내려보낸 세 아들 가운데 하나라는 겁니다. 또 북유럽 신화에 따르면 신이 처음에 물푸레나무로 남자를 만들고, 그 다음에 여자를 만든 재료로 이용한 게 바로 느릅나무라고 합니다. 느릅나무 이야기들을 모아 이번 주 칼럼으로 정리해 보여드리겠습니다.

   아칸서스에 속하는 식물로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식물로는 쥐꼬리망초를 비롯한 3종류가 있습니다.

   오늘 편지에서 앞에 보여드리는 세 장의 사진은 천리포수목원에 지금 한창 피어있는 아칸서스라는 종류의 풀꽃입니다. 스쳐 지나며 본 적은 여러 번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기는 저도 처음인 꽃입니다. '아칸서스'라는 단어가 익숙하지 않으신가요? 아칸서스는 그리스의 코린트식 건축물의 장식 가운데 하나로 고대 문명과 관련한 글에서 여러 번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여기서 아칸서스는 바로 이 식물의 무늬를 장식으로 조각했기에 붙은 이름입니다.

   고전 건축 양식에서는 아칸서스의 꽃보다 잎을 더 많이 그렸다고 하지만, 꽃 모양이 특이해서 눈길을 떼기 어렵습니다. 사진은 Acanthus hungaricus 라는 이름의 여러해살이풀의 꽃입니다. Acanthus 에 속하는 식물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식물은 쥐꼬리망초를 비롯한 3종이 있고 세계적으로는 30여 종이 있다고 합니다. Acanthus hungaricus 의 꽃은 7월 전후에 개화하는 여름 꽃으로 우리 수목원에서는 암석원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꽃입니다.

   낮은 키로 키우는 뽕나무 밭의 여느 뽕나무와는 사뭇 다르게 듬직한 크기의 정선 봉양리 뽕나무.

   배롱나무 무궁화의 꽃이 그렇듯이 대개의 여름 꽃은 날씨만큼 정열적인 생김새를 가졌습니다. 빛깔이 화려하든가 모양이 남다르든가 눈에 확 띄는 꽃이 대부분이지요. 게다가 개화기간도 대개는 긴 편이어서, 숲 속의 여름은 길어도 지루한 줄 모르고 빠르게 흘러갑니다. 장마 지나면 이 여름 꽃들이 차츰차츰 피어나 여름 숲을 화려하게 수놓을 겁니다. 찾아보는 대로 나무편지를 통해 보여드리겠습니다.

   지난 주의 신문 칼럼에서는 뽕나무 이야기를 했습니다. 뽕나무를 모르는 분은 없을 겁니다. 실제로 단 한 번 본 적이 없다 해도 뽕나무라는 나무가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요. 이름이 조금 우스꽝스러워서 그렇기도 하려니와, 남녀상열지사의 상징처럼 자주 인용되는 바람에 그렇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알려진 뽕나무 이미지들의 홍수 속에 실제 뽕나무의 모습과 가치를 찾기 어려워졌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뽕나무 줄기에 세월의 깊이 만큼 깊숙이 새겨진 굴곡.

   그런 현상을 현대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시뮬라크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복제의 복제만 남고 실재가 사라진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뽕나무가 딱 그렇습니다. 하도 다른 이미지가 덧씌워지다 보니, 실재를 잃은 나무가 아닌가 싶은 겁니다. 뽕나무에 대해서는 그의 가치는 둘째 치고 일단 생김새만 해도 잘못 아시는 경우가 흔한 듯합니다. 뽕나무라는 나무 이름을 알긴 해도 실제 뽕나무를 단 한번 보지 못한 분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실제로 뽕나무를 키워보신 분들조차 그럴 수 있습니다.

   대개의 뽕나무가 낮은 키에 옆으로 넓게 퍼지는 나무로 알기 십상입니다. 실제로 뽕나무 밭의 나무들이 그런 모양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그건 뽕잎을 따기 위해 나무가 웃자라지 못 하도록 키운 때문입니다. 그런 뽕나무의 생김새에 대한 이미지를 단박에 바꾸어주는 뽕나무가 있습니다. 바로 정선 봉양리 뽕나무입니다. 정선군청 바로 앞에 있는 뽕나무인데, 그 크기가 우리 이미지 속의 뽕나무와는 전혀 다릅니다. 크고 우람할 뿐 아니라, 생김새도 아주 훌륭한 나무이지요.

   백성의 풍요로운 살림살이를 걱정한 옛 사람이 심어 키운 봉양리 뽕나무.

   나무 앞에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89호인 고학규가옥을 처음 지으신 제주고씨 중시조인 고순창님이 집을 지은 뒤에 심고 키운 나무입니다. 이게 정확한 기록이 없어서 조금 애매하기는 합니다. 누구는 그냥 이 자리에 있던 나무를 키운 것이라고도 하고, 누구는 중시조 고순창님이 손수 심고 키운 나무라고 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분명한 건 한 집안의 상징목이자 정원수처럼 키운 나무로 뽕나무는 유례 없는 일이라는 겁니다.

   이번 취재에서는 그래서 고순창 님의 후손이며, 현재에도 고학규 가옥에 사시는 분을 취재했어요. 고학규 어른이 생존하시지만, 연세가 많으셔서 취재가 어려웠고, 그 분의 장남인 고종헌 님을 찾아뵈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일일이 기록을 찾아보시면서, 궁금증을 풀어주셨어요. 끝내 식재 관련 기록은 찾지 못했지만, 오래 전부터 집안의 어른들께서 이 나무를 중시조께서 손수 심고 가꾼 나무라고 하셨다는 건 분명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살펴보자니, 그 시절에 뽕나무를 심고 키운 어른의 뜻이 참 고맙게 여겨졌습니다.

   한 쌍의 잘 생긴 뽕나무 사이로 강원도 유형문화재 '고학규 가옥'의 대문이 빼꼼히 비친다.

   뽕나무를 키워서 뽕잎으로 누에를 키우고 누에고치에서 명주실을 뽑아내 비단을 짜는 일은 농경문화권에서 금은보화를 사들이는 일 못지않게 귀한 일이었다는 겁니다. 그걸 잘 아셨던 제주고씨 중시조께서는 벼슬을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와서도 백성들이 살림살이를 풍요롭게 하고자 하는 뜻을 놓지 않고 나무를 심고 가꾸셨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습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링크하는 신문 칼럼으로 보여드립니다.

   [칼럼 다시 보기]

   며칠 더 장맛비 이어진답니다. 비 피해 없이 그리고 몸 건강히 잘 보내시기 바라면서 오늘 편지는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고규홍(gohkh@solsup.com)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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