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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풍경 너머의 풍경

[스크랩] 탄은 이정(李霆)의 풍죽도(風竹圖)

by 丹野 2011. 4. 30.

 

바람이 분다

 

세월의 모진 바람이, 세파의 험한 바람이 분다.

 

하지만 여기서 꺾일수는 없다.

 

그냥 힘없이 꺾어지기에는 스스로 쌓아온 자존심이 용남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조선 선비로써 이정도 바람에 굴복한다면

 

그 여리디 여린, 무능한 나라때문에 고통받은 힘없는 백성은 어찌하란 말인가?

 

그래서 나는 꺾일수 없다. 비록 전란으로 초토화된, 더이상 붙잡을 힘도 없는

 

힘없는 왕조이고, 무너진 나라라 할지라도 누가 백성을 책임져 나갈것인가?

 

바람이 분다. 내 마음에도 분노의 바람이 분다...

 

 

 

 

올 해 가을 간송미술관 기획전시의 주제는 [난죽蘭竹] 이였습니다.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난초와 대나무 그림중 좋은 작품들을 한꺼번에 비교 감상 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습니다.

 

그 많은 작품중 백미는 탄은 이정과 추사 김정희의 작품들이였습니다. 그중에서도 물론 감상자마다 견해가 다를수 있겠으나 아마 최고의 작품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이정의 <풍죽도>를 꼽는데  크게 이견이 없을것 같습니다. 

당대는 물론이고 조선 최고의 묵죽화가로 손꼽히는 탄은 이정의 대표작 <풍죽도>. 그 멋진 묵죽의 세계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이정(李霆)은 1541(중종 36)∼1622(광해군 14).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종친 사대부 묵죽화가입니다. 자는 중섭(仲燮), 호는 탄은(灘隱). 세종의 현손으로 석양정(石陽正:正이란 이조 때 비교적 가까운 왕손에게 준 작호로 정3품 堂下에 해당함.)에 봉해졌으며, 뒤에 석양군(石陽君)으로 승격되기도 했습니다.


묵죽화에 있어서 그는 유덕장(柳德章)·신위(申緯)와 함께 조선시대 3대화가로 꼽힙니다. 또한, 그는 묵죽화뿐 아니라 묵란·묵매에도 조예가 깊었고, 시와 글씨에도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는 임진왜란 때 적의 칼에 오른팔을 크게 다쳤으나 이를 극복하고, 회복 후에는 더욱 힘찬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지금 남아 있는 조선 초기의 묵죽화들이 대개 수문(秀文)의 묵죽화와 같이 줄기가 가늘고 잎이 큰 특징을 보임에 반하여, 그의 묵죽은 줄기와 잎의 비례가 좀더 보기 좋게 어울리며, 대나무의 특징인 강인성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는 특히 굵은 통죽(筒竹)을 잘 그렸는데  통죽의 마디를 묘사함에 있어서 양쪽 끝이 두툼하게 강조된 호형선(弧形線)으로 마디의 하단부를 두르고, 거기에서 약간의 간격을 떼고 아랫마디를 짙은 먹으로 시작해서 점차로 흐려지게 그리는 독창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기법은 조선 후기의 여러 묵죽화가들에 의하여 널리 쓰이게 되었습니다. 

  

 

     

왼쪽부터 설죽, 통죽, 묵죽도 

 

 

 

이정의 성취가 후대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었는가는 한 두세대 후에 태어난 1600년을 전후에 태어난 허주 이징, 미수 허목, 위빈 김세록 등의 난죽에서 이정의 난죽 형식을 기반한것을 보면 잘 알수 있습니다.

 

특히 이들중 이징과 김세록이 조선 중기 말엽 난죽화를 이끌었는데 두사람 각각 이정의 별서(別墅)가 있던 공주와 강릉 출신이란 점은 우연으로 보기에 석연치 않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풍죽도>를 살펴봅시다.

 

 

      

 

 

이정 <풍죽도> 지본수묵 71.5 x 127.5 cm  간송미술관 

 

 

기년이 명시되어 있지 않아 연대가 불확실하나 탄은의 유장한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된 것을 봐서는 만년작으로 보입니다.

 

바람에 맞선 대나무 네그루를 그렸는데 후위의 세 그루는 담묵으로 희미하게, 전위의 대는 농묵으로 뚜렷하게 그려 전체 화면의 깊이감을 더해줌과 동시에 대의 잔영과도 같은 이중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바람의 효과를 위해 죽의 잎을 옆으로 뉘워놓은듯 한 모양인데 댓잎을 표현하는 여러가지 방식을 골고루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구성에서도 왼쪽 끝에서 첫 난엽까지의 거리와 오른쪽 끝 난엽 중심부에서 오른쪽 끝까지의 거리를 비슷하게 그려 안정성을 잃지 않았고 하단의 줄기를 의도적으로 바람이 부는쪽으로 그려 더욱 바람에 맞서는 기세를 잘 표현했습니다. 

줄기도 늘씬하게 뽑아줌으로써 강풍의 위세를 표현하는데도 소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묵죽화 또는 묵란화에서 토파(土坡)를 묘사함에 있어서는 당시의 산수화의 주류인 중국식 절파화풍(浙派畵風)의 영향을 받아 강한 농담(濃淡)의 대조를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중국 묵죽들과의 확연한 차별성을 갖는것은 중국의 풍죽들은 대체로 바람이 보이는 듯하고 바람소리가 들릴듯, 즉 바람의 기세를 그려냈다면 탄은은 바람이 부는 정경이 아니라 이를 견디어 내는 대나무의 응축된 기세를 표출하는데 중점을 두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전위의 죽엽들을 넓게 펼치지 않고 무리로 모아 놓은것이나 토파나 바위의 묘사를 최대한 간결하게 하여 결국 작품의 집중도를 높이면서 기세를 절제하고 응축낸 것으로도 확연히 알 수있습니다.

 

이처럼 적절한 화면구성과 대나무끼리의 농담대비, 여러모양의 다양한 죽엽의 모양, 죽엽들의 모임과 흩어짐의 대비와 조화를 통해 산만해 보이기 쉬운 풍죽이란 소재를 압축적이고 강렬하게 표현했습니다. 이런 여러가지 이유로 마치 시간이 정지해버린듯한 느낌으로 강력하면서도 순간적인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풍죽도>는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궁궐이 불에 타고, 자신도 팔에 칼로 상처를 입는 경험을 통해 종친 시대부로써 느꼈던 혹독한 세상의 바람과 그 속에서도 겪이지 않는 조선 선비의 기개를 절정의 기량과 최상의 품격으로 그려낸 최고의 수작이라 말 할 수 있는것입니다.

 

10월 마지막밤. 오늘날도 바람은 변함없이 불어오고 있으나 이런 바람에 맞서 자신의 기개를 벼리고 있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풍죽도>속의 대나무처럼 곧으나 절대 부러지지 않는 승리의 자신감이 차곡차곡 쌓아나가길 바랍니다.

 

  

 

2005. 10. 31

  

 

 

금강안金剛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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