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림정 이경윤은 조선 중기(1545-1611)의 화가입니다. 동생 이영윤(李永胤) 또한 이름 난 화인이었고, 특히 서자인 이징(李澄, 호 : 虛舟)은 도화서 화원으로 당대에 이름을 떨친 화가였습니다. 그는 왕실의 종친으로 이성군(利城君) 이관(李慣)의 증손이며, 청성군(靑城君) 이걸(李傑)의 아들입니다.
그가 누구에게 그림을 배웠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일찍부터 절파풍(浙派風)의 대가 김시(金)와 교유하면서 그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특히 산수인물화(山水人物畵)를 잘 그렸으며, 영모화(翎毛畵)와 동물화(動物畵) 등도 즐겨 그렸는데 이들은 모두 조선 중기 절파풍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탁족에 대해 설명이 좀 필요 할 것 같습니다..
탁족이란 말은 글자그대로 발을 씻는다는 뜻인데 조선의 선비들은 관념 속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강과 계곡에서 ‘탁족지유’의 풍류를 즐겼습니다.
조선 시대의 세시 풍속을 기록한 《동국세시기》유월조(六月條)에, “삼청동 남북 계곡에서 발 씻기 놀이를 한다.” (三淸洞……. 南北溪澗 爲濯足之遊) 는 기록이 있습니다. 《동국세시기》가 당시의 풍속을 기록하고 있는 문헌이라는 점에 비추어 보아 탁족놀이가 일부 특수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 널리 유행했던 여름 풍속 가운데 하나였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일반 서민들에게 있어서 탁족놀이는 단순한 피서의 한 방법에 지나지 않았지만, 선비들에게 있어서는 피서의 차원을 넘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실제로 즐겼던 피서 방법에는 ‘탁족’ 외에도 ‘물맞이’나 ‘목물하기’등 여러 가지가 있었겠으나, 그런 것들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 오직 ‘탁족지유(濯足之遊)’만을 소재로 그림으로 그리고 또 감상하기를 즐겼다는 사실은 이를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비들이 특별히 ‘탁족지유’에 부여하고 있는 의미는 중국 고전인 《초사 楚辭》의 내용과 관련이 깊습니다. 《초사》 어부편(漁父篇)을 보면 어부와 굴원(屈原) 사이의 문답을 서술한 마지막 부분에,
“어부가 빙그레 웃으며, 노를 두드리며 노래하기를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을 것이요,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을 것이라고 하면서 사라지니 다시 더불어 말을 하지 못했다.” (漁父莞爾而笑 鼓而去 歌曰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遂去 不復與言)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후세 사람들은 이 부분을 특별히 〈어부가 漁父歌〉, 또는 〈창랑가 滄浪歌〉라 이름 지어 불렀는데, 이 노래에 나오는 ‘탁족’과 ‘탁영(濯纓)’이라는 말을 특별한 의미로 새겼습니다.
<창랑가〉가 담고 있는 의미에 대해서 맹자는, “맑으면 갓끈을 씻고, 흐리면 발을 씻는다고 하니, 이것은 물 스스로가 그런 사태를 가져오게 한 것이다.” (淸斯濯纓 濁斯濯足矣 自取之也) 라고 해석을 하였다.
그는 이것을 다시 인간의 삶의 태도에 비유하여 말하되, “사람은 반드시 자신을 욕되게 한 뒤에라야 남이 그를 모욕하고, 가문은 반드시 그 자신들이 파괴한 뒤에야 남이 그 가문을 파괴하고, 나라는 그 자신들이 망친 뒤에야 남이 그 나라를 토벌한다. 그러므로 태갑(太甲: 書經의 편명)에 ‘하늘이 지은 재(災)는 그래도 피할 수가 있으나, 자기가 지은 재는 모면할 수가 없다’고 하였으니 바로 이런 점을 두고 한 말이다.”
《孟子》, 離婁
맹자는 〈창랑가〉의 의미를 행복이나 불행은 남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처신 방법과 인격 수양 여부에 달려 있다는 뜻으로 풀이하였던 것입니다.
맹자다운 해석입니다. 하지만 우리 선비들을 조금 다른 해석을 하였습니다.
이경윤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은 아주 험악한 시대를 살아왔던 인물입니다.
전쟁으로 무수한 생명을 죽어 가는걸 보았고 실제로 먹을 게 없어 부부간에 부모와 자식간에 죽은 시체를 서로 뜯어 먹는 광경이 심심치 않게 이야기되는 사회는 분명 당시 성리학적 가치를 추구했던 선비에게는, 더욱이 자연과 벗 삼기를 좋아했던 이 경윤에게는 충격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확실히 깨달았던 이 경윤은 세상사는 데는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 즉 이 풍진 세상에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탁영탁족의 의미를 즉, 창랑의 물이 맑다는 것은 도의(道義)와 정의가 지배하는 세상을 말함이고, 창랑의 물이 흐리다는 것은 도의가 무너진 어지러운 세상을 비유한 말이라고 했습니다. ‘맑은 물에 갓끈을 씻는다’는 것은 ‘세상이 올바를 때면 나아가 벼슬을 한다’는 뜻이요, ‘발을 씻는다’는 것은 ‘풍진에 찌든 세상을 백안시하고 은둔하며 고답을 추구한다’는 의미라 이해하는 것입니다.
“천지소이능장차구자(天地所以能長且久者). 이기부자생(以期不自生) ”
하늘과 땅이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기 때문에 영원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하늘과 땅이 모든 만물을 낳고 길렀지만 사사롭게 만물에 개입하지 않듯, 인간도 자연의 질서를 본받아 무엇인가를 이루어 내겠다는, 무엇인가 깨달아야 되겠다는 욕망마저도 부질없음을 깨달은 것 입니다.
그래서 탁족은 언제든지 강호(江湖)로 돌아가서 살수 있는 선비의 이상향이자 선비 자신의 내면인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옛 어른들은 더위를 이겨내면서도 우주와 세상의 진리, 자신의 내면에 대한 통찰, 지식인의 참다운 책무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내년이면 지방 자치단체 단체장 및 지방의원 선거가 있습니다.
지금 현재 창랑의 물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지금 나아가야 할 때 입니까? 아니면 자신의 이상향을 갈고 닦아야 할 때 입니까?
웃옷을 풀어 헤치고 다리를 꼬아 물에 담그는 모습은 옛부터 중국에서 탁족도에 그려왔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하지만 중국, 전형적인 모습을 본따왔다고 저 그림을 비판하는건 옳지 못합니다. 당시 화풍이 전형적인 모습은 그대로 차용해서 그리는게 일반적인 경향이였습니다. 노인의 모습이 중요한게 아니라 탁족을 하면서 동자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모습..자연으로 돌아가고픈 마음과 측은지심이 묘하게 겹쳐 그리고 있는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비가 흐르는 물가에 앉아 있습니다. 얼마나 더운지 웃옷을 풀어 가슴이 휜 하게 드러내놓고 있고 무릎 위까지 바지를 올린 다리는 꼬아 물에 담그고 있습니다. 약간씩 움직이는 다리 때문에 물은 물결이 치고 머리위로는 나뭇가지가 뻗어서 그늘을 드리우고 있습니다. 전란을 힘겹게 이겨낸 어린 동자는 술병을 들고 있고 선비는 그 어린동자를 대견하다는 듯, 한편으로 안됐다는 듯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습니다.
<고사탁족도> 풍진세상에 대한 절망, 자신의 그리운 고향에 대한 동경..자신의 이상향을 향한 선비의 고귀한 정신
[탁족]은 제게 오늘날 아무리 더워도 마음은 서늘하게 만드는 그 무엇을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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