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풍경 너머의 풍경

[나무를 찾아서] 봄 깊어지는 길목에서 찾아본 천년 은행나무

by 丹野 2011. 4. 18.

[나무를 찾아서] 봄 깊어지는 길목에서 찾아본 천년 은행나무

   지난 주초 부여 규암면 진변리 백강마을에서 만난 개나리 꽃.

   [2011. 4. 18]

   길가의 벚꽃이 잘 피었나 싶었는데, 어느 새 낙화를 시작했어요. 꿉꿉한 날씨의 이른 아침에 길을 나서는데, 작업실 앞 집의 낮은 울타리 안쪽에서 화창하게 봄노래를 부르던 벚꽃의 화사한 꽃잎이 하나 두울 떨어졌습니다. 떨어진 하얀 꽃잎들은 울타리 곁에 세워둔 자동차 위로 소복히 쌓입니다.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아직 제가 걷는 이 하늘에는 먹구름만 잔뜩 끼어들었을 뿐이지만, 추적추적 봄비가 내리는 곳도 많은 모양입니다. 오늘은 전국적으로 봄비가 내린다고 합니다. 그렇게 봄은 천천히 깊어지겠지요.

   봄바람에 하냥 흔들리는 부여 백강마을의 개나리 꽃 무리.

   언제나처럼 개나리는 벚꽃보다 오래 피어있습니다. 개나리는 벚꽃보다 먼저 노랗게 피어났지만 여전히 노란 꽃노래에 한창입니다. 줄지어 서서 피어난 개나리 곁에는 생뚱맞게 모감주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여기에는 아직 잎도 나지 않았고, 가지 끝에는 지난 해 가을에 맺은 꽈리 닮은 열매가 간당이고 있습니다.

   부여 내산면 주암리의 천년 넘은 은행나무.

   큰 나무들은 아직 뿌리에서부터 물을 미처 다 끌어올리지 못한 모양이에요. 모두가 화창한 봄날을 아우성치며 반기는데, 부여 내산면 주암리 은행나무는 천년의 세월을 그렇게 살아왔다는 듯, 의뭉스럽게 아직 한 장의 잎도 내지 않았습니다. 이만큼 봄 햇살 따사로우면 조금은 움직일 듯도 한데 말입니다.

   천년 세월의 굴곡이 여실히 느껴지는 주암리 은행나무의 줄기.

   23미터나 되는 큰 키에 줄기 둘레는 9미터 가까이 될 정도로 큰 주암리 은행나무는 1천 살이 넘는 오래 된 나무입니다. 백제의 도읍을 부여로 옮기던 때인 성왕 16년(538)에 이 마을에 살던 어른이 심은 나무입니다. 이 나무는 백제, 신라, 고려가 망할 때에 칡넝쿨이 나무를 타고 오르는 수난을 겪었다고 합니다. 특이한 이야기입니다.

   긴 세월 동안 마을 지킴이로 살아온 주암리 당산나무이자 수호목.

   옛날에 이 주변에 있던 절집의 한 스님은 이 나무의 가지를 베어내 쓰려다가 목숨을 잃었을 뿐 아니라, 그 절까지도 폐사 지경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도 전할 만큼 모두가 신령스럽게 여기는 나무입니다. 지금도 이 나무에서는 해마다 정월 초이튿날 당산제를 지냅니다.

   신문 칼럼에 소개한 김구 향나무의 다른 모습.

   지난 주말에 보내드린 나무 편지에서는 충남 마곡사의 김구 향나무 이야기를 담은 신문 칼럼을 하이퍼링크로 소개해 드렸습니다. 김구 선생이 광복 직후 찾아와 심은 나무이지요. 그 신문에 소개된 사진과 다른 사진 한 장 더 추가합니다. 작은 나무이지만, 김구 선생의 결기를 닮아 옹골차게 잘 자란 향나무입니다.

   봄 기운을 일찌감치 감지하고 노란 꽃봉오리를 처음 내밀던 때의 산수유 꽃봉오리.

   이른 봄, 개나리와 함께 노랗게 피어났던 산수유 꽃은 이제 다 떨어졌습니다. 한낮의 바람결에는 봄 기운이 한결 뚜렷합니다. 오늘 내리는 비에도 봄 기운이 담기겠지요. 많은 양이 아니어서, 다른 때라면 우산 없이 걷고 싶어지는 반가운 봄비이지만 아무래도 요즘 비는 피하는 게 낫지 싶습니다. 벚나무, 개나리, 목련, 산수유의 가녀린 꽃잎들이 비 머금게 되면 더 많이 낙화할 겁니다. 한창 피어있을 때는 잘 몰라도, 땅 위로 떨어져 널부러진 꽃잎들을 바라보게 되면 뒤늦은 그의 존재감 때문에 아쉬움은 한층 더 클 겁니다. 늦기 전에 창문 밖에 늘어서서 피어난 봄꽃들 한번 더 바라보세요. 그래야 한 주일를, 이 봄을 더 싱그럽게 꾸려갈 수 있지 않을까요?

   고맙습니다.

   고규홍(gohkh@solsup.com)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