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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풍경 너머의 풍경

[나무를 찾아서] 더불어 살아가는 큰 나무와 작은 풀 꽃들의 어울림

by 丹野 2011. 4. 17.

[나무를 찾아서] 더불어 살아가는 큰 나무와 작은 풀 꽃들의 어울림

   겨울에 피어나서 특별히 동매(冬梅)라고 부르지만, 이제야 피어난 부여동매의 꽃.

   [2011. 4. 15]

   조금 흐린 주말 앞의 오후입니다. 하늘 빛 탁해도 봄 빛 화사합니다. 이번 주말은 그렇게 봄의 화려한 빛을 맞이하기에 딱 알맞춤한 때이지 싶습니다. 주초에 충남 지역을 답사하면서도 이번 주말은 봄나들이 여행에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 답사에서는 충남의 공주와 부여 지역의 나무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우선 공주 마곡사에 살아있는 '김구 선생이 손수 심은 향나무'(김구 향나무 칼럼 보기)를 찾아보고는 이어서 몇 그루의 큰 나무를 더 찾아보았지요. 특히 이번 답사에서는 '부여동매'라는 이름을 가진 매화를 만나려 했습니다.

   부여동매 앞에 지천으로 피어난 꽃다지의 꽃.

   조금 늦었겠다 싶었던 예상과 달리 부여동매는 절정, 혹은 그에 조금 못 미친 상태였습니다. 한 그루의 매화나무가 제 눈 앞에 펼쳐놓은 광경이 황홀해서 안절부절못하면서 그의 모든 표정을 눈에 담으려고 나무 주위를 이리저리 오가는데, 발걸음을 붙드는 작은 꽃들이 있었습니다.

   엊그제 '나무 엽서'로 보여드렸던 냉이꽃은 물론이고, 어디에서라도 그와 잘 어울리는 꽃다지 꽃, 파르라니 솟아오른 파란 색의 개불알풀 꽃이 그들이었습니다. 어디에 발을 디뎌야 할지 망설여야 할 정도로 온 땅에 가득이었지요. 가만가만 빈 자리를 찾아 발을 내디디며 매화나무를 바라보려다 아예 꽃다지 꽃 앞에 쪼그려 앉고 말았습니다.

   작아서 더 예쁜 꽃다지 꽃 무리.

   워낙 작아서 유심히 바라보지 않으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꽃들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대개의 경우, 그런 꽃들에는 별로 눈길을 주지 않게 됩니다. 더구나 부여동매와 같이 화려한 꽃을 피운 큰 나무 앞에 있는 작은 꽃들이라면 제아무리 예뻐봐야 매화를 따를 수 없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니까요.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세상의 모든 생명 있는 것들 가운데 아름답지 않은 것은 없는 법입니다. 냉이 꽃, 꽃다지 꽃처럼 작은 꽃들에게는 매화나 목련처럼 탐스러운 꽃송이를 가지는 다른 꽃들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아주 별스러운 아름다움이 있지요.

   점잖지 못한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화려한 푸른 빛의 개불알풀 꽃.

   그들의 참 아름다움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들과 눈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들을 더 자세히 볼 수 있는 돋보기가 있다면 더 좋겠지요. 하지만 돋보기가 없어도 괜찮아요. 작은 꽃들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한참 바라보면 누구라도 그들의 아름다움에 반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개불알풀 꽃도 그렇습니다. 냉이나 꽃다지 꽃보다는 크기 때문에 눈에 잘 들어오는 꽃인데다, 꽃잎도 흔치 않은 파란 빛을 띠고 있어서 멀리서 보아도 예쁘다는 걸 알 수 있는 꽃이긴 합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서서 그의 가녀린 속살을 살펴보면 가늘게 비치는 실핏줄까지 다 들여다볼 수 있어서 그 동안 알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놀라게 됩니다.

   하얀 꽃을 피운 흰민들레.

   그 작은 꽃들 사이에 점점이 하얗게 우뚝 솟아오른 또 하나의 흔하디 흔한 꽃도 만났습니다. 흰민들레입니다. 유난히 이곳에는 노란 민들레는 한 송이도 없고, 흰민들레만 피어났습니다. 그렇게 흔하고 작아서 평소에 그리 바라볼 일 없던 작은 봄꽃들의 향기를 가슴 가득히 담을 수 있었습니다.

   작고 흔한 꽃들이 뿜어내는 이 봄의 향기를 가득 담은 뒤, 이 작은 꽃들을 거느리고 서있는 한 그루의 매화나무를 다시 쳐다보니, 그의 아름다움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일 수 있다는 생각도 그렇게 찾아왔습니다.

   봄 볕 한껏 즐기시는 주말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고규홍(gohkh@solsup.com)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