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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 램프를 켜다

내 시 속에 들어온 소설

by 丹野 2010. 11. 4.

 

Fritz Fabert

<기획특집> 내 시 속에 들어온 소설
 
계간 시인세계

<기획특집> 내 시 속에 들어온 소설
이번 기획 특집은 <내 시 속에 들어온 소설>로, 시와 소설의 내밀한 교감을 시인 스스로의 고백을 통해 들어보고자 하였다. 시인이 심혈을 기울여 쓴 한 편의 시 속에는 잘 달여진 탕약처럼 농축된 서사가 담겨 있다. 실제 시인의 시창작 과정 속에 녹아 있는 서사는 시의 결을 높여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짧은 감동을 선사하기도 한다. 작가가 쓴 소설의 향기로운 주제는 시인들의 시 속에서 시 이상의 향기를 지니며 꽃을 피운다. 시인들이 들려준 <내 시 속에 들어온 소설>은 서정과 서사의 은밀한 교통을 드러내 보이기도 하고, 일상의 미로 속에 갇힌 시의 새로운 길 찾기 과정이 되기도 하였다. 소설을 통해 닫혀진 시의 다음 페이지를 넘기는 행운을 얻기도 한 시인들에게 소설은 시의 또 다른 목소리와 몸이 되고 있다. ― 편집자


이청준의 소설 『축제』와 나의 시 「눈물」-  정    진    규

나의 이 글은 처음부터 편집자가 준 제목 <내 시 속에 들어온 소설>의 화살표를 돌려놓은 상태에서 시작되고 있다. <소설 속에 들어간 나의 시>쯤이 될 것이다. 편집자의 의도는 서사성과 서정성의 혈연적 상보성과 그 은밀한 교통을 시인들의 작품을 통해 구체적으로 짚어 보자는 데 있었을 터이지만, 내게는 이미 소설가 이청준이 치매의 지경에 든 자신의 노모에 대한 이야기를 눈물겹게 들려 준 바 있어 그를 내용으로 쓴 시가 한 편이 있고, 이청준에게는 그 시를 가지고 전개해 간 『축제』라는 그의 소설 한 편이 있어 이 같은 편집자의 제목이 애초부터 내 내면에서 저러한 전환으로 자리잡을 수밖에 없었던 거였다. 거기에 지난 해 이청준이 세상을 떠났다. 내가 쓴 그 「눈물」이라는 시는 이청준과 나, 그의 소설과 나의 시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으로 더욱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나의 시 「눈물」을 이청준이 소설 『축제』 속에 인용 전개하고 있는 대목을 그대로 또한 인용하는 것으로 이 글을 채우고자 한다. 이번 가을엔 바로 그 「눈물」의 현장인 그의 고향 장흥 생가를 다녀오기도 했지만 좋은 소설가 하나를 떠나보냈다는 아쉬움과 추모의 정이 날로 더하고 있기 때문이다.

눈   물
소설가 이준섭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인데, 나긋나긋하고 맛있게 들려준 이야기인데, 듣기에 따라서는 아주 슬픈 이야기인데, 그이 입술에는 끝까지 미소가 떠나지 않았는데, 그래서 더 깊이 내 가슴을 적셨던 아흔 살 어머니 그의 어머니의 기억력에 대한 것이었는데, 요즘 말로 하자면 알츠하이머에 대한 것이었는데, 지난 설날 고향으로 찾아뵈었더니 아들인 자신의 이름도 까맣게 잊은 채 손님 오셨구마 우리 집엔 빈 방도 많으니께 편히 쉬었다 가시오 잉 하시더라는 것이었는데, 눈물이 나더라는 것이었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책을 나무라 하고 이불을 멍석이라 하는가 하면, 강아지를 송아지라고, 큰며느님더러는 아주머니 아주머니 라고 부르시더라는 것이었는데, 아, 주로 사물들의 이름에서 그만 한없이 자유로워져 있으셨다는 것이었는데, 그래도 사물들의 이름과 이름 사이에서는 아직 빈틈 같은 것이 행간이 남아 있는 느낌이 들더라는 것이었는데, 다시 살펴보니 이를테면 배가 고프다든지 춥다든지 졸립다든지 목이 마르다든지 가렵다든지 뜨겁다든지 쓰다든지 그런 몸의 말들은 아주 정확하게 쓰시더라는 것이었는데, 아 몸이 필요로 하는 말들에 이르러서는 아직도 정확하게 갇혀 있으시더라는 것이었는데, 몸에는 몸으로 갇혀 있으시더라는 것이었는데, 그건 우리의 몸이 빚어내는 눈물처럼 완벽한 것이어서 눈물이 나더라는 것이었는데, 그리곤 꼬박꼬박 조으시다가  아랫목에 조그맣게 웅크려 잠드신 모습을 보니 영락없는 자궁子宮 속 태아의 모습이셨다는 것이었는데 정진규 씨라고 노인이 돌아가시기 전 어느 자리에선가 제가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일이 있는 선배 되시는 시인의 시입니다.
 
그것을 어느 잡지에 시로 써 발표한 것을 은지네가 어디선가 구해 보내 왔길래 감독님께 제가 다시 소개해 드린 것입니다.(중략) 사실은 이 시를 감독님께 보여 드린 다른 이유가 한 가지 있습니다.  이 시가 제게 왠지 자꾸 감독님께서 생각하고 계신 영화의 제목 <축제>의 의미를 생각하게 했거든요. 물론 확연한 의미가 떠오르진 않았습니다. “몸이 필요로 하는 말들에는 아직도 정확하게 갇혀 있으시더라, 몸에는 몸으로 갇혀 있으시더라, 거기에는 완벽한 감옥이 있더라―” 같은 대목에서 죽음이란 걸 그 말과 육신의 힘든 자기 속박으로부터의 해방 같은 것으로 생각해 본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보다 깊은 무엇, 삶의 궁극이나 그 완성 같은 것…… (하략)
― 소설 『축제』(p.233~235, 열림원, 2003. 2)

이 대목이 들어 있는 이청준의 소설 『축제』와 인용된 시 「눈물」이 들어 있는 나의 시집 『알시詩』를 나는 어깨동무로 나의 서가에 오늘도 나란히 꽂아두고 있다.

정진규   1939년 경기도 안성 출생. 19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마른 수수깡의 平和』 『몸詩』 『알詩』 『도둑이 다녀가셨다』 『本色』 『껍질』 등 다수. 한국시협상, 월탄문학상, 현대시학작품상 등 수상. 문화훈장(보관) 수훈.
 

내 시 속으로 들어온 소설 「숨은 꽃」-
천    양    희

빛을 보고도 눈을 감아 버리는 것은 자신을 어둠 속에 가두는 것과 같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던 시절, 내 시의 다음 페이지를 넘겨준 것은 양귀자의 「숨은 꽃」이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 겁외사劫外寺가 있다면 그곳으로 숨어버리고 싶던 무렵이었다. 소설 속 그녀가 귀신사歸神寺에서 십오 년 만에 그를 만나고 있을 때, 나도 나를 바꾼 지 십오 년 만에, 절은 절대로 길에서는 보이지 않는다는 「숨은 꽃」을 만났던 것이다. 수많은 소설들을 읽고 감동했지만, 내 속에 우물 하나 품는 것 그것이 시의 마음으로 무장하는 것이라고 일러준 소설은 처음이었다. 그래선지 “문학은 그것이 무게를 강조하면 할수록 떨어지기 쉬운 것이다. 강조할 대목은 삶이지 문학이 아니다”라는 대목은 나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 무렵에 삶은 내 수난이었고, 나는 수난에 바쳐진 제물처럼 느껴져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삶이 아니라 문학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떤 삶의 격랑 속에서도 시로써 나만의 일자진一字陣을 치고 싶었다. 내 손으로 내 잔을 채울 때마다 삶의 뒷모습에 책임질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숨은 꽃의 꽃말을 찾듯, 그의 말로 그의 소설로 끊임없이 듣고 읽으면서, 나에게 숨어 있는 무엇을 끊임없이 찾으려 애썼다. 세상 일이란 그렇듯 알면서도 모른 척해야 하는 것들이 많지만, 자신이 알아야 할 것은 스스로를 이겨야 한다는 것과 어둠을 통해서 세상을 보라는 것이었다. 그처럼 「숨은 꽃」은 고통을 이겨내는 유일한 방법은 고통에 담긴 의미를 믿는 것이라는 것을 깨우쳐 주었던 것이다. 또 「숨은 꽃」은 어차피 고통은 이 세상을 사는 인간들이 지불하는 월세 같은 것이라며 성마른 심정을 누그러뜨려 주기도 했다.

“내 마음의 저항은 이 열림과 닫힘의 반동에서 야기된다. 닫혀 있었기에 글쓰기의 품성을 배웠고 열어야만 했기에 끝없이 회의했었다”는 「숨은 꽃」의 그녀를 통해서 세상에 대해 끝없이 회의하던 나도 내 자리로 돌아와 「산행山行」을 쓰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한 시인으로 나의 시 한가운데로 뚜벅뚜벅 걸어들어갔다.

산행山行
덕성여대 앞 카페 늪을 지나
8번 종점 느티나무 아래서 잠시 쉬다
불이사不二寺 쪽으로 길을 꺾는다
지나온 길이 비뚤비뚤
발가락 어디가 아픈 것도 같다
미로는 처음부터 미로였다
길찾기를 멈추기 전에는
모든 것이 숲처럼 무성하리라 믿었다
배낭을 짊어진 채
나무 뒤에 나무처럼 붙어 서니
잡목숲 엉클어진 내력을 알 것도 같다
대낮에도 캄캄한 산숲에 덮여
능선이 찢어져라 널 부르면
어둠도 아름다운 품속이었다
나뭇가지 위로 나그네새 빠르게 스쳐가고
종소리가 흩어지고……
루비스의 소설 『자카르타의 황혼』을 읽고 있을 때
저 눈물꽃! 수유리가 황혼에 젖는다
언덕길이 너무 가파르다. 내 인생도 가파르게 넘었지만,
본가本家까지 본질까지 다 버리고 월세월세 하면서 도시에서
세월 보낸 친구.
그도 헐떡이며 저 길을 올랐으리라
몸 따로 마음은 자꾸 내려가고
물소리도 따라 내려간다
절은 절대로 길에선 보이지 않는구나
언제나 길의 끝에 가서야 있구나
불이문不二門 밀고 들어서니
대웅전은 목하 보수중이다
헐은 내 마음은 수고로워 몇 년째
보수할 길이 없다
불쌍한 몸이 배가 고픈지, 만년과萬年果를 그리는지, 우울증에 빠진 듯
흐르고 싶은 마음이 우물에 빠진 듯
빠져나오지 않는다
오, 우울과 우물의 깊음이여
절하지 못한 우울이
우물만큼 깊었던가 아니던가
저마다의 슬픔으로 절문이 젖고
경전經典이 젖고 끝내 할 말조차 젖어
용맹정진勇猛精進 들어간 국민학교 내 친구
일우스님 선방을 기웃거릴 때
불두화 하얗게 웃으며 반기면
이상 더 숨을 곳 없어서
나는, 마른 나무 밑에 쌓인다
썩은 잎들이 거름 되는 것을 눈여겨보며
일생을 보기 전엔
거뭇거뭇 남은 누구의 흉터인지…… 죄다 버리고
살 터를 찾아 산속
저 적요 속으로, 반야 속으로 딸려가
아마 나는 피안거리를 걸었을 것이다
산 끝에 가서야
나는 몇 번이나 아제아제 불러본다

천양희   1942년 부산 출생. 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소월시문학상, 현대문학상 등 수상. 시집 『마음의 수수밭』 『오래된 골목』 『너무 많은 입』 등과 다수의 산문집이 있음. 
 

카프카 - 미궁, 미망, 미로 속에서 길 찾기  - 이    건    청

카프카는 언제나 미궁이었다. 그가 간 길을 찾아가다 보면 늘 길을 놓쳐버리기 일쑤였다. ‘성’을 찾는 K처럼 어디를 가도 문은 닫혀 있었다. 카프카를 찾아가는 길은 늘 변방으로 나 있고, 불가해한 논리로 가득 차 있었다. 고통과 번민의 길이었다. 그러나, ‘카프카의 길’은 시를 찾아가는 내가 미망 속을 헤맬 때, 살며시 다가와 출구를 귀띔해주곤 하는 고마운 안내자도 카프카였다. 

카프카만큼 나에게 절망을 안겨준 작가가 있었을까. 부조리와 소외 속으로 묵묵히 걸어들어가면서 그것들의 본질을 밝혀가는 강한 정신이라니! 그리고, 임종의 자리에선 평생의 기록들을 불살라버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 염결성! 도저히 그는 내가 도달할 수 없는 극한의 길만을 묵묵히 밟고 간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카프카를 만났다. 그러니까 1958년이나 59년쯤이었을 것이다. 1958년 동아출판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 7권째에 「성」, 「아메리카」와 짧은 단편들이 실려 있었다. 충격이었다. 초청받아 온 주인공 K는 ‘성’에 이르는 길 앞에서 쉼 없이 좌절하고, ‘성’은 늘 먼 곳에 있었다. 이 불가해한 의지와 좌절을 바라보면서 ‘소외’와 ‘좌절’ ‘부조리’와 같은 용어들이 내 안으로 밀려들어와 나를 잡고 놓아주질 않았었다.

195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 지성계엔 실존주의 철학 사조가 풍미하고 있었다. 사르트르의 『구토』 같은 작품들과 카뮈의 『이방인』, 『시지프스의 신화』와 같은 문학작품들이 유행처럼 밀려들고 있었고, 문학 지망생이라면 그런 작품 몇 개쯤은 입에 올릴 수 있어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한창, 감수성 예민한 문학 소년이었던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는데, 서울 시내 고등학교 학생들로 제법 이름이 알려진 문학소년 몇몇과 만나 설익은 실존주의 문학 논쟁을 벌이곤 했었다.

<양문문고>나 <신양문고>와 같은 문고판으로 나온 『실존주의란 무엇인가』 등등의 제목으로 된 개론서들을 ‘개 머루 먹듯’ 읽고, 그걸 자산으로 ‘실존’운운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낯 뜨거운 일이다. 그 무렵 내 눈을 확연하게 띄워준 것이 카프카였다.

그때부터 나는 카프카 숭배자가 되었다. 국내에서 간행되어 나온 번역서들을 구할 수 있는 대로 구해서 읽었다. 학문사에서 나온 『카프카문학사전』은 카프카를 일별할 수 있는 자료집이다. 아마도, 내가 40여 년 동안 쓴 600여 편의 시 중에서 카프카 모티프의 시만도 20여 편쯤 될 것이다.

「정직한 시인」은 카프카의 소설 「굶는 광대」의 핵심 줄거리를 모티프로 한 알레고리 시다. 소설 「굶는 광대」 역시 알레고리다. ‘굶는 연기’에 매진하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딛고 선 광대의 운명 속에서 나는 각질화된 시대를 살아가는 ‘시인’을 찾아 제시하고자 하였고, 나아가 시인이 서야 할 바른 자리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드러내 보고자 했었다. 나의 시 「정직한 시인」은 카프카를 통해서 내가 도달하고자 했던 세계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시인 셈이다.

정직한 시인 
그는 직업적인 단식가였다*. 굶는 것이 특기였다. 서커스장에서도,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외진 구석이 그의 무대였다. 광대가 굶기 시작하면 서커스 단원이 그의 앞에 단식일 수를 바꿔 달았다. 단식일 수가 늘고 살이 빠져나가면서 태연히 웃어 보이는 것이 그의 연기였다. 열광하는 관객을 꿈꾸며 그는 굶고 또 굶었다. 광대가 굶고 단식일 수가 늘어가면서 광대가 그의 연기에 생명을 걸어도, 그의 굶는 연기를 보러 오는 사람은 없었다. 무관심 속에 버려진 광대는 잊혀진 자리에서도 정직하게 일했다. 그는 굶고 또 굶었다. 삶과 죽음의 하이얀 경계에 서서도 지나쳐가는 사람들을 향해 희미하게 웃었다.
    *프란츠 카프카 「굶는 광대」에서

이건청   1942년 경기 이천 출생, 196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소금창고에서 날아가는 노고지리』 『푸른 말들에 관한 기억』 『석탄형성에 관한 관찰 기록』 등과 시선집 『해지는 날의 짐승에게』 『움직이는 산』 『이건청문학선집』. 현대문학상, 한국시협상, 한국예술발전상, 녹원문학상 수상. 한양대 명예교수.
 

그의 말을 이제는 알 것 같다 -  김    광    규

토지 측량사 K가 행정청의 부름을 받고, 겨울밤 늦게 어느 성 아래 마을에 도착한다. K는 성의 관리인으로부터 임시 체재 허가를 받고, 마을에 머물러 성의 업무 지시를 기다린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의 말처럼, 성으로 가는 길은 멀지 않지만, 성에 들어가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된다. 온갖 시도를 다 해보았으나, K는 성으로부터 일방적인 서신을 한두 차례 받았을 뿐, 측량 업무에 관해서는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한다. K는 우연히 들른 여관에서 성의 행정청 비서 뷔르겔이 이곳에 투숙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그를 만나려 한다. 행정청에 K가 청원할 경우, 그것이 수리될 수도 있다고 그 비서는 시사한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K는 죽음 같은 피로가 엄습함을 느끼며 깊은 잠에 빠진다. 성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오랫동안 기다려온 절호의 기회를 허망하게 놓치고 마는 것이다.

프란츠 카프카(1883-1924)의 읽기 힘든 장편소설 『성』은 이렇게 끝난다.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모더니즘 소설의 효시가 된 작품이다. 지루한 서양의 장편소설들이 영화로 제작되어, 원작보다 깊은 감명을 주는 경우도 흔히 있으므로, 막시밀리안 셸 주연의 동명 영화도 구해 보았지만, 재미없고 난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카프카는 34세 때 폐결핵에 걸려, 41세에 죽었다. 그는 1922년(39세)에 이 소설을 집필했다. 상당히 병세가 악화되었을 무렵으로 추정된다. 1920년대는 요즘의 각종 암 질환처럼 폐병이 죽음에 이르는 병으로 만연하던 때였다. 정답이 없는 이 미완성 소설의 결말 부분에 대하여 나는 카프카보다 10년 가까이 더 살고 난 다음에야 어렴풋이 공감하게 되었다.

나의 네 번째 시집 『좀팽이처럼』(1988)에 수록된 70편의 시는 내 나이 45~47세 때 쓴 것이다. 여기 인용된 시 「가을날」은 그러니까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어 인생이 좀 후줄근해졌을 때, 젊음이 수그러지며, 틈틈이 삶의 피로가 느껴지기 시작하는 중년에 쓴 작품이다. “참을 수 없는 졸음 때문에 / 마지막 기회를 잃어버렸다는 / 그의 말을 이제는 알 것 같다.” 주인공 ‘K’는 이 세상의 수많은 ‘그’와 ‘그녀’들의 또 다른 대명사 아닐까. 카프카의 재미없고 난해한 세계는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아닐까. 이러한 느낌은 인생의 전반기를 지나서 가을로 접어든 중년의 독자라면 모두가 공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살기 바쁜 중년층 가운데 카프카를 읽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이 세상의 많은 작곡가들이 저마다 「자장가」를 남겼듯이, 릴케를 비롯하여 많은 시인들이 「가을 시」를 썼다. 가을은 가장 시적인 정서를 환기하는 계절임에 틀림없고, 이를테면 인생의 후반기에 상응한다. 꼭 독서체험과 생활체험이 결합되지 않았더라도, “견딜 수 없는 피로”와 “참을 수 없는 졸음”은 나에게 이미 오래 된 일상이 되어버렸다.

가을날
누가 부는지 뒷산에서
서투른 나팔 소리 들려온다
견딜 수 없는 피로 때문에
끝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그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여름내 햇볕 즐기며
윤나는 잎사귀 반짝이던 감나무에
지금은 까치밥 몇 개
높다랗게 매달려 있고
땅에는 떨어진 열매들
아무도 줍지 않았다
나는 어디쯤 떨어질 것인가
낯익은 골목길 모퉁이
어느 공원 벤치에도 이제는
기다릴 사람 없다
차라리 늦가을 벌레 소리에 묻혀
지난날의 꿈을 꾸고
꿈속에서 깨어나
손짓하는 코스모스에게 묻고 싶다
봄에는 너를 보지 못했다
여름에는 어디 있었니
때늦게 길가에 피어난 꽃들
함초롬히 입 가리고 웃을 것이다
아직도 누군가 만나
나누고 싶은 이야기
굳게 입 다물고
두꺼운 안경으로 눈 가리고
앓고 싶지 않은 병
온몸에 간직한 채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천천히 그곳으로 다가가고 있다
아득한 젊은 날을 되풀이하는
서투른 나팔 소리
참을 수 없는 졸음 때문에
마지막 기회를 잃어버렸다는
그의 말을 이제는 알 것 같다

김광규   1941년 서울 출생. 1975년 《문학과 지성》으로 등단. 시집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 『아니다 그렇지 않다』 『크낙산의 마음』 『시간의 부드러운 손』 등 9권의 시집, 시선집, 산문집 등 다수. 오늘의 작가상, 김수영문학상, 편운문학상, 대산문학상, 이산문학상 등 수상. 한양대 명예교수. 
 

여기가 거긴가 - 김    혜    순

 한없이 낮은 숨결
 ―― 이인성 소설의 제목을 빌어서
동이 트면, 내 몸에서 먼동이 터 오면
마당을 깨끗하게 잘 닦은 다음
거기다 메아리가 편지를 쓰게 하고 싶었다
소름을 스칠 듯 말 듯한 가는 입술로
산들바람에도 흩어지고 말 목소리로
이 몸속에서 나와 저 몸속을 헤매는 동안
더 작아져 버린 내 숨결보다 더 여린 붓으로
메아리가 하루 종일 편지를 쓰게 하고 싶었다
산으로 동그랗게 둘러싸인 수몰 마을에 도착했다
마루에 가방을 얹어놓고 나자 마지막 햇발이 마당 위에 날렸다
아직도 메아리를 다 뱉지 못한 산이 먼저 어두워지고
맨나중에 길이 어두워졌다
밤이 큰 새처럼 내 두 귀를 덮자
세상의 모든 살 가진 것들이 내 속에서 섞여 버렸다
저 높은 가지 끝에선 어린 새가 밤새도록
내 머리 속을 두근거리고
피투성이 깃털펜들이 우우우
마당을 가로질러 달려가기도 했다
나는 내 몸 밖에 앉아서 편지를 썼다

매일 매일 잠적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이 세상에 늘어놓은 건 왜 그리 많고, 얽히고설킨 인연은 왜 그리 나를 붙들고 있는지. 나는 집을 떠났다. 수몰 예정 마을로 갔다. 잠적 중에 물속 잠적이 제일 낫지 싶었었다. 어느 집 대청마루에 앉아 이 시를 적었다. 잠적하겠다고 떠나가서 편지를 쓰는 이 역설적 상황. 곧 물에 잠길 마을이, 홍시 빛 등을 하나하나 켜면서 애타게 지상에서의 마지막 편지를 쓰는 것 같은 저녁. 밤새도록 오래 전에 읽었던 소설 한 편을 떠올리려고 애써봤다.

이인성의 「한없이 낮은 숨결」은 단편 소설이지만, 내게는 한 편의 시론詩論처럼 읽혔었다. 나는 경전이나 영화, 소설, 무용을 막론하고 나에게 시론이 남는 텍스트들을 좋아하는데 다량의 쉼표와 말없음표로 헐떡거리다 잦아드는 이 소설은 나에게 한 편의 시론으로 다가왔다. 이를테면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다음과 같은 메모를 남길 수 있었다.
(지면 관계상 단문으로 쓸 수밖에 없었다. 이 소설에 구축된 세상, 그곳은 이 소설이 씌어지고 발표되었던 80년대를 잠식하던 말의 나라, 혹은 실재했던 그 어느 나라일 테지만 나는 그 나라의 이름을 말하고 싶지 않다. 무서우니까.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으니까. 안 그래도 지금 시 같은 소설에 산문적 문장을 덧붙이고 있는 나에게 알 수 없는 자괴가 밀려오고 있으니까.) 
 
… 쉼표로 작곡된 음악처럼, 쉼표로 구축된 그 나라.
… 당신도 아니고, 나도 아니고, 그도 아닌 사람들이 살아지고, 죽어지는 그 나라.
… 아니다, 없다의 부정사不定詞로 지정된 그 나라.
… 누구, 아무, 어디, (   )의 미지칭들이 사는 그 나라.
… 숨은 놔두고 낮은 숨결, 땅은 놔두고 낮은 땅결, 물은 놔두고 낮은 물결, 바람은 놔두고 낮은 바람결로 살아지는 그 나라.
… 의문부호도 없이 의문사疑問詞 속에 살아지고 죽어지는 그 나라. 의심 주고 의심 받고, 의심하는 의심으로 가득한 그 나라.
… 말없음표로 가득한 그 나라. 말밖에 있고 없는 그 나라.
… 모르겠다로 살아지는 그 나라.
… 지정사指定詞 ‘있다’로 지어졌다지만, ‘있음’의 결만 있고 ‘있음’은 없는 그 나라.
… 이유는 있는데 결과는 없는 그 나라.
… 비명은 있는데 사건은 없는 그 나라.
… 소설을 증발시킨 다음 소설이 떠난 자리가 소설인 그 나라.
… 무덤도 없는데 죽어짐이 이어지는 그 나라.
… ‘저렇게까지 조용한 세상은 참 없을 것이요’(‘이상李箱’처럼) 유동하는 거울 속 세상인 그 나라.
… 거기는 있는데, 여기는 없는, 훗날은 있는데 오늘은 없는 그 나라.
… 너의 살은 없는데, 너의 살결은 멀어서 곁에 있는 그 나라.
… 여기는 없는데 ‘높은 혹은 깊은’은 있는 그 나라.
… 옛날인가 하면 훗날이고, 그 때인가 하면 이 때인 그 나라.
… 목적어들이 증발한 그 나라.
… 그러나 ‘깨알’과 ‘나들’, 무한 몸들이 있는 그 나라.
… 너와 나는 있는데 아무도 없는 그 나라.
… 부사, 부사어, 관계사가 명사, 형용사, 동사보다 더 많이 사는 그 나라.
… 첫 새벽인가 하면 황혼 무렵인 그 나라.
… 보금자리의 지붕이 날아간, 정처가 사라진, 실핏줄이 분노로 타오르는, 망막에 불을 붙인 그 나라.
… 주소도, 지도도 없는 그 나라.
… 거대한 흰 박쥐가 나는 그 나라.
… 장례의 행렬이 만장 휘날리고 가는 그 나라.

김혜순   1979년 《문학과지성》으로 등단. 시집 『또 다른 별에서』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달력 공장 공장장님 보세요』 『한 잔의 붉은 거울』 등이 있음. 김수영문학상, 소월문학상,  미당문학상 등 수상.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  
 

불우를 지복으로 삼는 존재들 - 이    재    무

십 년 저쪽이다. 우연히 인연을 맺게 된 소설 한 편 때문에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는 마음의 습자지가 축축하게 젖은 채로 한동안 울먹거리며 살아야 했다. 이청준 소설 「새와 나무」가 바로 문제의 작품이다. “그 사내는 자기 집 마당 앞 나무들 사이에 서 있었다. 그는…… 늦가을 나무들에게 겨울 짚옷을 싸 입히다 쉬고 있는 중이었다. 오래 오래 하늘을 쳐다보고 서 있는 모습이 그 자신 한 그루 나무처럼 보였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손[客]은 사내를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을 이렇게 적고 있다. 나무가 된 사내. 거기에는 필시 곡절 많은 사연이 들어 있을 게 뻔하다. 사내는 손을 집 안으로 불러들이고 아내를 시켜 술상을 내오게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노형은 혹 빗새라고, 비가 오는 날에만 운다는 새를 본 적이 있으시오?” 하면서 그 주인 사내는 빗새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다. 빗새는 사내의 형에 관한 이야기였다.

사내가 어렸을 적 봄부터 가을까지 비가 오는 날에만 구슬프게 울어대는 새가 있었다. 빗새였다. 그 빗새는 제 둥지 하나 지니지 못하고 밤빗소리 속으로 멀어졌다 가까워지곤 하였다. 사내의 어미는, 상급학교 진학이 좌절된 형이 도회지로 가출한 후 소식이 없자 언제부턴가 집 앞의 텃밭에 어린 동백나무 한 그루를 심어놓고 정성을 다해 가꿨다. 그것은 집 없는 빗새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한 어미의 간절한 소망이 시킨 일이었다. 사내는 훗날 그 빗새가 형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홀연히 중늙은이가 다 되어 귀향한 형은 그간 못다 한 불효를 탕감이라도 하듯 텃밭과 야산에 과수와 무실수를 가리지 않고 심어 수림을 일궈 나갔다. 그러나 도진 유랑벽을 끝내 재우지 못하고 어머니의 임종을 본 뒤 홀연히 집을 떠나버렸다.

“그(주인 사내)는 때때로 그의 집 수림가에서 그 빗새를 본다는 것이었다. 손도 이제는 그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손짓을 하여 자기를 불러들인 숨은 사연도 비로소 조금씩 짐작이 가고 있었다…… 그가 그래서 나무가 되었구나. 그래서 그가 나무로 보였구나. 한 마디로 말해 그(손)는 한 마리 빗속의 새였고 주인 사내는 숲속의 나무였다. 그리하여 새는 나무를 보았고 나무는 새를 본 것이었다.”

이로써 주인 사내가 주인공 손[客]을 불러들인 사연이 밝혀지게 된다. 하지만 사내가 손을 불러들인 것은 이것이 처음이 아니었다. 4년 전 우연히 해후한, 해남 고을 태생으로 도회지에 나가 ‘소유와 지배의 끈으로 엮어진 관계’에서 패배한 뒤 수림에 자신의 마지막 집터(무덤)를 소망했던(그러나 끝내 이루지 못한) 허름한 차림새며 이상하게 지쳐 보이는 시쟁이(시인)의 모습에서 주인 사내는 ‘빗새’ 즉 집을 나간 형의 모습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대략 이런 서사로 얼개가 짜인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나도 모르게 몇 번이고, 잘못 먹은 음식이 얹힌 듯 답답하고 먹먹한 배와 가슴을 주먹으로 내려쳐야 했다. 부지불식간 빗새 즉 손의 모습에 나를 투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적수공권의 상경파로서 서울 생활에 어지간히 지쳐 있을 때였으니 그런 심사가 드는 게 어쩌면 당연했을 것이다. ‘소유나 지배의 탐욕스런 관계’에 지친 나머지 사고무친의 객창감과 천석고황의 고질병이 도져 그런 심사를 자아냈던 것이다. 시인이란 어쩌면 빗새와 같은 천형의 운명을 타고난, 불우를 지복으로 삼는 존재라고 여겨 내 궁핍한 처지를 스스로 위안했던 생각도 난다. 사내와 나무 혹은 새와 나무처럼 ‘일부러 지은 관계’가 아닌 ‘자리가 저절로 만들어 낸 관계’를 지향하는 사람이 시인일진대 나는 그런 생명의 ‘의좋은 관계’로부터 너무 멀리 걸어온 것은 아닐까. 어느새 집에 안주하여 노래를 잃어버린 무능한 시인, 물리적 거처로서의 집을 얻고 마음의 집을 잃었으니 나는 더욱 가련한 천애고아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자책이 무시로 들고 있는 중이다.


 새와 나무
 ―― 이청준 소설 「새와 나무」를 읽고
빗새가 비비비비 울면
비 오고 바람 드셌다
집 없어 서러운 빗새
어미는, 역마살 도져
집 버린 아들 눈에 밟혀서
가슴에 뗏장이 입혀지고
그해 여름은 비가 많아서
빗새가 비비비비 하지를 울고
어미는 집 둘레 가득
동백을 심었다
빗새 불러들여 잠자리 주었고
모이를 뿌려주었다
객지 떠돌다 아들은 병을 얻었다
중늙은이로 돌아와 늦도록 불효를 울며
앞산 뒷산에 나무로 서서 세월을 살았다
빗새가 비비비비 사계를 울면
아들은 가슴에 새 못이 박혔고
그러나 삼년상이 지나자
다시 도진 역마살이
그를 집에서 내몰았다
그날로부터 사내가 일군 동백나무 숲속엔
노래가 살고 있었다
마음이 멍울진 사람에게만
가득 차 출렁거리는
              
이재무   1958년 충남 부여 출생. 1983년 《삶의문학》과 그 후 《실천문학》, 《문학과사회》 등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섣달 그믐』 『벌초』 『몸에 피는 꽃』 『시간의 그물』 『저녁 6시』 등이 있음. 난고문학상, 편운문학상 수상. 계간 시 전문지 《시작》 편집주간. 
 
한 사이코패스의 후각을 따라간 시  -  문    인    수

<18세기 프랑스에 한 남자가 살고 있었다. 이 시대에는 혐오스러운 천재들이 적지 않았는데, 그는 그 중에서도 가장 천재적이면서 가장 혐오스러운 인물 가운데 하나였다.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라는 그의 이름은… 냄새라는 덧없는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시대에는 우리 현대인들로서는 거의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악취가 도시를 짓누르고 있었다. 길에서는 똥 냄새가, 뒷마당에서는 지린내가, 계단에서는 나무 썩는 냄새와 쥐똥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바로 그곳, 프랑스 왕국에서도 가장 악취가 심한 그곳에서 1738년 7월 17일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가 태어났다. 그러나 그르누이의 어머니는 생선 냄새도 시체의 냄새도 맡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코는 냄새에 대해 완전히 마비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이 아인 악마에 씌었어요.” “이 아인 도대체 냄새라는 게 없어요.”
…그때 아기가 깨어났다. 그는 코부터 먼저 깨어났는데, 작은 코가 움찔움찔하더니 위를 향해 벌름거리기 시작했다. …코는 확실하게 목표물을 겨냥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테리에 신부는 그 목표가 바로 자신의 몸인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그르누이는 동사나 형용사, 혹은 조사 같은 것은 잘 몰랐다. …사실상 그가 하는 말은 단지 구체적인 물건, 식물, 동물, 그리고 사람들의 이름들로서, 그것도 뜻밖에 냄새로 그것을 인식하게 된 경우에 그랬다. …그에게 가장 어려웠던 일은 냄새가 없는 대상을 지시하는 추상적 개념어들, 특히 윤리적이거나 도덕적인 뜻을 지닌 단어들을 익히는 일이었다.
…심지어 그는 상상 속에서 냄새들을 서로 섞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현실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냄새들을 만들어낼 수도 있었다.
…그의 예민한 코는 냄새와 악취로 뒤섞인 엉클어진 실타래 속에서도 더 이상 나누어질 수 없는 가장 기본적인 냄새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강 건너편 부자들이 살고 있는 소르본과 생 제르맹까지 가보았다. 높은 담이 둘러진 정원에서는 금작화와 장미, 방금 꺾은 쥐똥나무의 향기가 퍼져 나왔다. 그르누이가 향수라는 말에 어울리는 냄새를 처음으로 맡은 곳이 바로 여기였다.>
    ――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 중에서

향수 제조공이 된 이 소설의 주인공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는 오직 찾아내지 못한 ‘향기’를 좇아 앞뒤,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그 집착은 끝내 자두 파는 ‘어여쁜 소녀’를 잡게(살해) 된다. 그 최초의 ‘도살’은 곧 연쇄살인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그 어떤 물욕도, 성욕도, 저주도, 복수도 아니어서 물론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행해진다. 그가 저지른 살인행위도, 그가 잡은 희생자들도 향수를 향한 한갓 제조과정이요, 재료였을 뿐이다. 그렇듯 ‘움직이는 주검’인 주인공의 면상에 우뚝하게 달린 코로는 결국 찾아낼 수 없었던 향수, 그것은 곧 그에겐 단 한 번도 다가온 적 없는 사랑이었다. 없는 사랑, 그 찾아내지 못한 향기를 써보고 싶었다. 악취든 향기든 냄새를 따라 들어가게 한 마력, 거기에 함께 끌려들어갔던 것이다.   


 
 ――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장편소설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너를 간직하려 한다.
눈을 감으면 여러 가지 냄새가 몰린다. 버려져
바닥에 뒹구는 것들, 이 여러 가지 냄새를 음미하며 눈을 감으면
몸을 떠난 이름들이 비로소
가슴 깊숙이 들어와 가만히 가라앉는다.
악취는 가련하다.
썩은 생선 대가리며 삶은 고양이, 녹슨 쇠사슬…… 무두질의 어둠이 어둑, 어둑, 더러운 거리를 절일 때 한 떨기!
자두 파는 어여쁜 소녀가 지나간다.
향기가 “죽인다.”
저 장미 백만 송이를 따 끓여낸 영롱한 눈물 한 방울의 고요,
이것이 향수다. 마지막으로 번지는 영혼의 반경이여,
사랑은 참 힘이 세다.

문인수   1945년 경북 성주 출생. 1985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 『뿔』 『홰치는 산』 『동강의 높은 새』 『쉬!』 『배꼽』 등 7권이 있음. 미당문학상 등 수상.
 

국밥과 잡목 - 나    희    덕
 
영화를 보고 시를 쓴 적은 몇 번 있지만, 소설을 읽고 그것을 모티브 삼아 시를 쓴 경우는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소설가를 추모하는 시를 쓴 적은 있다. 이문구와 김소진. 고인과 아주 절친했던 것도 아니고 누구의 청탁을 받은 것도 아닌데, 왜 두 소설가의 삶은 내 시 속으로 걸어들어왔을까. 이제 보니 공통점이 없지 않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는 것. 현란한 모더니티 저편에 잊혀져 가는 낡고 후미진 세계를 토속어로 복원해내는 끈질긴 산문정신을 지녔다는 것. 그리고 성실한 생활인의 태도를 끝까지 잃지 않았던 작가라는 것. 그 평범한 비범함이 내 속의 시인을 움직였을 것이다.   

「국밥 한 그릇」은 이문구 선생님이 위독하시다는 전화를 받고 광주역으로 달려가던 날의 기억을 적은 것이다. 선생님은 문단의 느티나무 같은 분이셨다. 문학적 경향이나 집단을 초월해 변함없는 의리와 정을 베풀어 주셨고, 오랜 세월 잊혀진 작가들의 장례식에서 호상을 맡아 그 마지막 길을 지켜주시곤 했다. 그런데 정작 그분이 돌아가시게 되었다니…… 마음의 허기와 슬픔을 달래려고 나는 기차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역 앞 식당에서 국밥 한 그릇을 시켰다. 어느 하관식에서 산비탈에 앉아 손수 국밥을 건네주시던 기억이 떠올라서였을까.“어떤 찬도 필요치 않은 이 가난한 음식”속에서 삶과 죽음은 뜨겁게 뒤섞여 있었다.           

선생님의 마지막 소설집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는 국밥처럼 소박한 사람들의 삶을 나무 연작의 형식으로 그리고 있다. 장평리 찔레나무, 장석리 화살나무, 장천리 소태나무, 장이리 개암나무, 장동리 싸리나무, 장척리 으름나무, 장곡리 고욤나무…… 나무라고 하기에는 제대로 된 모양이나 쓰임새를 갖지 못한 이 나무들을 통해 선생님은 “돈 없고 힘 없는 일년살이들도 숲을 이루는 데는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으리라. 이 소설집뿐 아니라 선생님의 『관촌수필』 『우리동네』 『유자소전』 등에서 내가 한결같이 배운 것은 국밥 한 그릇의 온기, 일년살이 잡목의 아름다움이었다. 

 국밥 한 그릇
 ―― 고故 이문구 선생님을 생각하며
아무래도 오늘을 넘기기 어려울 것 같다는
전화를 받고 역으로 달려갔다.
배가 고팠다.
죽음의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느낀 것이 시장기라니,
불경스럽다는 생각에도 불구하고 배가 고팠다.
기차시간을 기다리며 허겁지겁 먹어치운
국밥 한 그릇.
벌건 국물에 잠긴 흰 밥알을 털어넣으며
언젠가 하관下棺을 지켜보던 산비탈에서
그가 건네주신 국밥 한 그릇을 떠올렸다.
그를 만난 것은 주로 장례식에서였다.
초상 때마다 호상護喪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온* 그가
이제는 고단한 몸을 눕히고 숨을 내려놓으려 한다.
잘 비워낸 한 생애가 천천히 식어가는 동안
그가 마지막으로 건네는 국밥 한 그릇을
눈물도 없이 먹어치웠다.
국밥에는 국과 밥과 또 무엇이 섞여 있는지,
국밥 그릇을 들고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서둘러 삼키려는 게 무엇인지,
어떤 찬도 필요치 않은 이 가난한 음식을
왜 마지막으로 베풀고 떠나는 것인지,
나는 식어가는 국밥그릇을 쉽게 내려놓지 못했다.
                         *이문구 소설집 제목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나희덕   1966년 출생.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뿌리에게』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 『사라진 손바닥』 『야생사과』 등이 있음.
 
 
「종생기」에 담은 모든 그리운 것들의 거처 - 조    용    미

종생終生이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한평생을 마치다’라는 뜻이고 또 하나는 ‘목숨을 다하기까지의 동안’이라는 뜻이다. 종생기는 이 두 가지 뜻을 동시에 담고 있다.
스물여덟에 죽은 이상李霜의 소설 「종생기」의 제목을 차용해 쓴 시「종생기終生記」는 몹시 위독한 삶을 살아내고 있던 어느 해 아마도 결연한 마음가짐으로 썼던 것 같다. (썼다! 고 단언하지 못하는 이 복잡함.) 종생기라니…… 지금 보니 좀 우울하다. 그때는 이 제목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시를 발표했을 당시 어느 선생님께서 염려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전화를 주신 것을 기억한다. 내 입에서는 무슨 우울한 말들이 살금살금, 겨우겨우 흘러나왔던가.

그의 다른 단편 「환시기幻視記」나 「봉별기逢別記」는 또 어떤가. 불행이나 죽음, 또는 우울한 사건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는 아무래도 언言이나 서書, 필筆이나 록錄보다는 기記임이 마땅하지 않은가 싶다. “나는 지금 가을바람이 자못 소슬한 내 구중중한 방에 홀로 누워 종생終生하고 있다.” “나는 날마다 운명하였다.” “나는 노래老來에 빈한貧寒한 식사를 한다. 12시간 이내에 종생을 맞이하고 그리고 할 수 없이 이리 궁리 저리 궁리 유언다운 어디 유실되어 있지 않나 하고 찾고, 찾아서는 그 중 의젓스러운 놈으로 몇 추린다. 그러나 고독한 만년 가운데 한 구의 에피그람을 얻지 못하고 그대로 처참히 나는 물고物故하고 만다.” 이상의 단편 「종생기」의 몇 부분이다.

종생기는 유언도 아니고 당부도 충고도 아닌 그저 종언終焉의 기록일 따름이다. 타인에게 전하고자 하는 의미가 희박한, 그러나 아주 없지는 않은 혼잣말이라고 해야겠다. 그러고 보니 프랑수아 비용이 쓴 유언시도 있다.

“천칭 우에서 삼십 년 동안이나 살아온 사람 (어떤 과학자) 삼십만  개나 넘는 별을 다 헤어놓고 만 사람 (역시) 인간 칠십 아니 이십사 년 동안이나 뻔뻔히 살아온 사람 (나) / 나는 그날 나의 자서전에 자필의 부고를 삽입하였다 이후 나의 육신은 그런 고향에는 있지 않았다.” 이상의 시 「1933. 6. 1」의 부분이다. ‘그런 고향’에는 있지 않겠다고, 자신의 존재 의미를 다른 곳에 두겠다는 선언을 한 지 4년도 못 되어 그는 죽음을 맞았다. 「종생기」는 이상이 죽은 다음 달인 1937년 5월에 발표되었다. 그는 언제부터 종생기를 쓰기 시작했을까. 종생기를 쓰고 시의 화자도 새로운 삶을 구태여 다시 시작하였나 보다.

종생기終生記 
장명등長明燈 불빛을 오래 밝혀다오
자줏빛 남빛 깃을 단 소렴금 대렴금으로
나를 꽁꽁 묶어다오
고복皐復일랑 하지 말아다오
       
살아도 살아도 고통은 새록새록 새로웠다
나뭇잎 말라비틀어져도
치욕은 파릇파릇 잎을 틔웠다
이제
이른 봄에 돋아나는 새싹 같은 그것들을
데리고 간다
        
누구도 알아차릴 수 없도록
마음이 타올랐다 꺼지고 또 타오르고
그렇게 쌓인 재들이 수북하게
가슴을 가득 메웠던
내 사랑은
 
살아서 단 한 번도 나의 것이지 않았던 죽음은,
기억하지 말아다오
살아서 단 한 번도 나의 것일 수 없었던
모든 그리운 것들의 거처를

조용미   1962년 경북 고령 출생. 1990년 《한길문학》으로 등단. 시집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일만 마리 물고기가 산을 날아오르다』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 등이 있음.
 

 

 

 



부정적 초월의 아름다움을 알려준 카프카의 『성城』- 박    형    준

시인이 시만을 쓰면서 살 수 있다면, 그건 시인의 삶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세계가 시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그건 보이는 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적어도 시인이 시를 쓰면서 살려면 그는 인생이라는 험난한 망망대해에서 온몸으로 시달리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파울 첼란(Paul Celan)은 러시아어, 불어 등 외국어에 탁월한 능력을 보였으나 일평생 독일어로만 시를 쓴 시인이었다. 그는 자신의 부모와 동족을 죽인 적의 언어인 독일어가 모국어였으므로 그 아이러니한 운명을 받아들였다. 시인은 모국어로만 세계를 받아들이고 사유할 수 있다. 시인은 자신에게 혹독한 고통을 안겼다고 해도 모국어를 통해서만 세계와 연결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누군가를 향해 몸부림쳐 쓴 시가 그 누군가와 대화에 성공하지 못하는 수가 많다. 첼란은 그러한 자신의 시를 가리켜 ‘유리병 편지’라고 했다. 글을 쓰는 자신조차 알지 못하지만 지금 쓰는 이 글이 파도와 암초를 헤쳐 심해에 가라앉지 않고 무사히 해변의 기슭에 가 닿을 수 있기를, 그리하여 당신이 그 유리병 편지를 집어들 수 있기를 바랐다.

그렇지만 시는 당신을 향한 과정 속에만 있을 뿐이지 결과에 있는 것은 아니다. 첼란은 시가 씌어지는 과정을 인생이라는 험난한 파도 속에서 시달리는 유리병 편지를 통해 말했다. 무언가를 향한 간절함을 담은 유리병 편지가 설령 암초에 부닥친다 해도, 그래서 피안이나 저쪽의 기슭에 닿지 못한다 하더라도 시는 무언가를 향한 희망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다.

내게는 카프카의 소설 『성城』의 K가 시인이 바다에 흘려보낸 유리병 편지처럼 생각된다. 카프카의 후기작품인 『성』은 어떤 성城의 지배를 받는 조그마한 촌락이 무대이다. 겨울 풍경 속에서 시간은 흡사 정지해버린 것 같고 거의 모든 장면은 어둠 속에서 벌어진다. K는 자신을 성 당국이 임명한 측량기사라고 주장하며 마을에 도착하지만 마을 관리들은 아무도 그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K는 술집 여급 프리다와의 섹스를 이용하여 성과 연결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려 하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프리다로부터 버림받고, 온갖 노력 끝에 탈진하게 된다. 그러나 K가 이 소설에서 그나마 해결의 실마리를 조금이나마 통찰하게 된 것은 프리다를 통해서이며, 그가 애정을 갖고 그녀를 대하는 순간에만 고독감을 뚫고 나갈 수 있었다.

카프카의 『성城』은 내 세 번째 시집 『물속까지 잎사귀가 피어 있다』에 수록된 「성城에서」 연작의 모티프가 되었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처럼 우리 존재란 누군가에게 초대받고 어딘가를 향해 떠나는 것이며, 끝내 그 부름에 응대를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 삶의 한계로부터 초월하지 못한 그것 자체로서의 ‘부정적 초월’이 소중한 것이다. 시는 인생이라는 막막한 공간 속에서 유리병 편지처럼 부유하면서 누군가를 향해 있다. 그 과정 속에서 시는 프리다처럼 소외받고 하찮은 존재들에 의해서 잠깐씩 존재를 증명받을 수 있을 뿐인 것이다.

성城에서 2
삼류 포르노 영화관에 앉아 있는 노인,
젊은이들의 키득거림을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어깨로
영화를 보고 있네
아무도 앉지 않는 앞자리에 앉아
스크린에서 쏟아지는 빛줄기에
머리칼이 하얗게 세어 버렸네
난방이 시원치 않아
듬성듬성 털이 빠진
신발에 박혀 있는 가냘픈 발,
영화가 끝나고 불이 들어오자
딱딱하게 굳어 버렸네
지팡이에 의지해 조롱의
늪에서 발을 빼내듯
영화관을 나오는 노인
털신에서 흘러내린 탁한 물자국이
그 뒤 얼룩졌네
푸르스름한 잔영이 남아 있는
의자 밑으로 어깨만 남은
그림자가 사라지네

박형준   1966년 전북 정읍 출생. 199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 『빵냄새를 풍기는 거울』 『물속까지 잎사귀가 피어 있다』 『춤』, 산문집으로 『저녁의 무늬』가 있음. 현대시학작품상, 소월시문학상 등 수상.
 

지루함 아니면 고단함 속에서 - 김          언

몇 년 전에 읽었던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소설 『사요나라, 갱들이여』는 다시 읽어도 충분히 재미있고 속도감이 느껴진다. 내가 단번에 읽을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장편소설 중 하나, 『사요나라, 갱들이여』는 소설이면서 한편으로 시에 대해 적잖은 질문을 던지게 하는 작품이다. 시란 무엇일까, 나아가 문학이란 무엇일까를 곰곰이 따져보게 만드는 작품이지만, 여기서는 그런 따위 골치 아픈 질문은 생략하자.

다만 소설에 등장하는 ‘시의 학교’에 대해서는 몇 마디 덧붙일 수 있겠다. 말이 좋아 학교지 달랑 교실만 하나뿐인, 그것도 지하 2층에 처박혀 있는 시의 학교. 이 학교에서 유일한 시인이자 선생님에게 이상한 사람들이 찾아온다. 시를 배우려고, 시를 상담하려고, 혹은 자신을 상담하려고(그러고 보면 시는 자기 자신이기도 하다).

지금은 죽고 없는 두 남편에게 자신이 키우는 <도마뱀 몬스터>의 생김새를 설명해줄 수 없었던 할머니, 레코드 속에 갇힌 채 길을 잃은 남자에게서 끊임없이 전화를 받는 여자아이,  냉장고로 변신한 그리스의 시인 베르길리우스, 그 자신도 누군지를 모르는 정체불명의 <영문을 모르는 것>, 평균적인 지구인의 모습을 한 <목성인>, 진실에 대해 목마른 갈망을 지닌 간수 등등. 이 모든 인물들이 찾아와서 벌어지는 대화와 사건들 자체가 한 편의 시이면서 소설의 일부를 이루어간다.

수업시간에 시와 다름없는 인물들이 찾아와서 시와 다름없는 대화를 나누고 시와 다름없는 인상을 남기고 사라지는 이 대목에서 희미하게 자극을 받아 완성한 시가 바로 「아름다운 문장」이다. 작년 가을에 발표한 이 시는 괴상하고 흥미로운 소설의 등장인물 대신 (한글로 표기된) 영어 알파벳 기호를 하나씩 출현시킨다.

그들은 아름다운 문장을 써오는 숙제를 받고 찾아온다. 아름다운 문장, 그것이 곧 시이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문장을 써오는 학생들 하나하나가 이미 시적인 사건을 일으키는 인물들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시적으로 존재하면서 시적인 사건에 연루되고 시적인 문장에 종속된다. 시적인 문장을 만들기 위해.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시적인 이들의 시적인 사건은 계속될 것이며 이들을 대신해서 연설하는 선생의 작업도 계속될 것이다. 딱 한 명씩 모자라는 이를 언급하면서, 동시에 망각하면서, 지루하게 지루하게 지퍼를 열고 있는 하루하루. 아름다운 문장은 존재하지만, 그것의 일과는 왜 이렇게 지루해질까? 지루함 아니면 고단함 속에서 누락되는 또 한 명의 이름이 궁금하다. 그게 누굴까?

아름다운 문장
오늘은 한 사람씩 아름다운 문장을 써오는 시간
에이는 수학 공식을 써왔다
이보다 더 간결하게 만들어야
아름다운 시라는 공식을 돌려보냈다
비는 투명하고 맑은 유리를 만들어왔다
기스가 없다는 게 유일하게 흠이라고 지적하였다
얼마 전엔 거울이 될 거라고 뛰쳐나간
씨도 있다 씨는 나무 판때기의 자식이었는데
투명하고 맑은 유리는 디를 증오한다
디는 유리 조각을 삼켰다가 뱉는 것을 좋아한다
모래가 될 때까지 싸우고 또 싸우는
커다란 바윗덩이를 그려왔다 제목은
얼룩무늬 푸른 별의 고독한 연대기
잠이 쏟아졌다 에프가 말을 한다
쥐가 쥐를 갉아먹으며 이빨을 딱딱거렸다
먼지를 씹다가 뱉은 느낌을 에이치가 알까
아이가 알까 제이는 몰라도 되는 것까지
다 알려주는 자폐를 대변하는 시인이었다
케이는 몇십만 부가 팔렸는지 궁금한
전화번호부를 들고 왔다 훌륭하고 아름다운
엘 엠 엔 모두 오의 반쪽을 그리워한다
그리고 피를 부른다 알은 잠자코
걸어갈 계획이다 새가 되기 전에
에스는 나무에서 떨어졌다 나뭇가지에 걸린
티가 구조해주고 유하고 유한 인상을 지어 보이며
돈을 요구하는 문장을 써왔다 더블유에
가로로 작대기가 두 개 그어진 표시를
반으로 딱 잘라 이것도 승리 저것도 승리니까
입 다물고 사라지라는 에스는 점점 엑스를
닮아간다 왜 그런지 알 수 없는 와이가
어깨를 으쓱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목발을 짚고
다음 날 출석부에 찍힌 학생은 모두 스물다섯 명
딱 한 명이 모자라는 문장을 내가 대신 연설하고 있다
지루하게 지퍼를 열고 있다

김언   1973년 부산 출생. 1998년 《시와사상》으로 등단. 시집 『숨쉬는 무덤』 『거인』 『소설을 쓰자』. 미당문학상 수상.
 

내가 만든 욕조 - 김    경    주

장 필립 뚜생의 『욕조』라는 소설이 있다. 1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얇은 소설이다. 나는 얇은 소설이 제공하는 친밀한 느낌을 좋아한다. 대개의 경우 얇은 소설들은 저자보다 화자가 살아 있다. ‘되도록이면 시는 두껍게 희곡은 희미하게 소설은 얇게 쓰자’ 대학시절은 이렇게 생각하며 보냈다. 아주 오래 전 헌책방에서 이 책을 처음 구입했다. 빽빽한 책 틈 사이에서 제목을 보고 녀석을 쑥 꺼낼 때 느낌을 아직 기억한다. 표지 속에선 주인공 ‘에드몽송’이 정장 차림으로 욕조에 들어가서 책을 읽고 있었다. 지친 밤 욕조로 돌아와서 나는 달팽이처럼 구부리고 있는 느낌을 좋아했다. 이 책은 서사가 흐리다. 구름 아래에서 읽게 되면 문장 속에 흐르는 서사가 너무 흐려 눈이 침침해질 수도 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나는 그것을 읽었다는 느낌보다 나는 거기를 읽었다,는 표현이 적확하다는 생각이 든다. 문장을 읽는 것이 아니라, 문장이 거기 있어, 욕조가 있는 문장을 드나들었다고 해야 옳을 것 같다. 욕조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 이 책에서 욕조라는 단어는 약 59번이 나온다. 아닐 수도 있다. 내가 욕조라고 발음하고 싶은 부분을 골라 마음 내키는 식으로 불러 버렸는지도. 욕조는 내가 좋아하는 단어이다. 나는 요즘 말로 ‘욕조 마니아’라고 해도 좋을 만큼 욕조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월세 10만 원짜리 산동네 방에 살면서도 나는 옥션에서 구입한 이동용 욕조를 화장실 구석에 설치했다. 산 근처인지 정말로 그 욕조에선 달팽이를 많이 발견했다. 한번은 몇 달 동안 방을 비웠는데 욕실 창문으로 기어 내려온 달팽이가 욕조 물 속에 떠 있었다. 나는 물 속에서 나른하게 죽은 달팽이를 건져 올렸다.
 
손가락 두 개만 사용해서 건져 올린 주검, 화분 속에 무언가를 묻어 준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많은 욕조를 거쳤다. 아니 많은 욕조가 나를 거쳐 간 듯하다. 방을 구할 때마다 우선적으로 내가 찾는 것은 욕조의 유무에 해당한다. 여행을 다니면서 게스트 하우스를 고를 때에도 욕실을 먼저 확인한다. 운이 좋다면 맨 꼭대기층에 욕조가 있는 방을 찾을 수 있다. 그 밤엔 발가락이 팅팅 불 때까지 욕조에 잠겨 있는다. 내가 머물고 있는 이 별이 물에 잠기고 있는 상상을 해본다. 욕조에 들어가면 하게 되는 상상이다. 건물의 내부 중 가장 은밀한 곳을 차지하고 있는 이 구조물의 설계자가 되고 싶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먼 훗날 욕조만 파는 숍을 차리고 싶다고 떠들고 다닌다. 사람들은 내 가게에 들어와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한번 들어가 봐도 돼요?” “물론이죠. 하지만 따뜻한 물을 틀어드릴 수는 없습니다.” 나는 타자기로 한 편의 시를 쓸 때마다 종이에 욕조를 하나 설계하는 느낌이 든다. 들들들, 내가 만든 욕조는 밤새도록 달그락거린다. 욕조 하나가 바다로 둥둥 떠가는 느낌, 그건 언제나 시집을 묶고 났을 때의 기분과 비슷하다. 나는 머지않아 물 속으로 가라앉을 준비를 하고 있을, 그 나른한 욕조 <시집>를 위해 입에 마개를 꼭 물고 산다. 요즘은 죽을 때 ‘관’ 대신 ‘욕조’에 눕혀 묻어달라고 했다는 한 배우의 유언을 곰곰이 생각 중이다.  

당신의 눈 속엔 내 멀미가 산다
벽 틈으로 들어간 달팽이가 사흘이 지나도
밖으로 나오지 않을 때
벽에서 일어나는 붉은 비린내를
빛을 외로워한 그 달팽이가
안에서 혀를 깨물고 있을 것 같다고 여길 때
물기의 층을 거쳐 태어난 목젖이 자기 음악을 알아보고
집 안에 뜨거운 물을 받아 놓을 때
옥상의 노란 정화조 탱크 속에
지친 새 한 마리 눈을 감고 떠 있을 때,
구슬처럼 행불이 된 연인을 찾아
투명한 뼈를 가진 벌레들을 가방에 모으며 여행할 때
남몰래 아주 긴 피로 별자리를 물들이고
너무나 많은 달걀 안의 수도를 알고 있지만
방에 귀만 넣어두고 자야 할 때
오래 된 미라의 귓속에 가만히 내 귀를 대어 보았을 때
내 귓속의 죽을 당신에게 다 흘려준다고 생각했을 때
오래 비운 집에 돌아와보니 집이 헐리고 있을 때
구멍 속에서 고운 가루가 된 달팽이를 발견하고
목으로 인어들이 우루루 밀려올 때
유리에 금이 오른다
번지는 일로만 여러 번
당신의 손가락을 물고 잠들고 싶었는데
그대를 더 연하게 만드는 여행들
    ―― 시집 『기담』에서

김경주   1976년 전남 광주 출생. 200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기담』이 있음.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수상.
 

그림자놀이 - 이    근    화

내 시 속에 나쓰메 소세키와 로제 그르니에가, 셰익스피어와 김동인이, 모리스 앙리가 잠깐 들어와 앉은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지만 대개 그들의 작품과 내 시는 상관이 없다. 내가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고 그것을 오래 잊지 못하는 것이겠지만 소설과 시라는 장르가 내 안에서 엉킨 적은 없다.

쓰다 만 소설이 내 컴퓨터 하드 속에 저장되어 있다. 키친, 마켓, 1028의 이름들이라는 파일명을 가지고 있다. 이건 소설이야, 생각하고 몇 페이지를 쓰다가 그만두었다. 그건 물론 시가 아니다. 소설은 소설의 세계가, 시는 시의 세계가 있다. 시와 소설이 소통하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을 것이지만 시와 소설은 만나기 어려운 장르고, 그래서 그 둘의 만남은 더 매력적인 것도 같다.

나는 소설가들을 더 좋아한다. 이야기를 재밌게 잘하고 자신을 내던질 줄 안다. 시인들은 숨기를 잘하고 숨는 데 재주가 더 많다. 그런데 시인은 시를 쓰며 자신을 잘 드러내고 소설가는 소설을 쓰며 자신을 잘 감춘다. 그들의 머리카락이나 발끝을 찾아볼 때가 있다. 시의 방식으로 소설의 방식으로. 꽁꽁 숨어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왜곡된 나의 그림자에 깊은 연민을 느낀 적이 있다.

시인이나 소설가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무엇인가 질문을 던질 때, 더듬거리며 찾을 뿐 정답이 없다는 것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독자들도 시원스런 해답을 얻기 위해 시나 소설을 읽는 것 같지는 않다. 가끔씩 무력하고 막막하다. 소설가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시 속에 소설이, 소설 속에 시가 들어와도 그런 마음은 어쩔 수 없다.

고양이 불필요*
세상에서 가장 큰 여자는
더 큰 여자가 태어날 때까지
외롭게 외롭게
끝까지 자라겠지
코끝에 있는 점을 보기 위해
천천히 두 눈을 모으면
당신은 지붕 위를 걷는 기분이 들겠지만
내가 모를까
쓸모없이 자라는 점은 바람의 먹이
오층 칠층 구층 높이로 건물들이 자라고
더 이상 오를 필요가 없을 때까지
봄과 여름은
가을과 겨울은 이와 같을까
발목과 무릎과 허벅지는
치마의 길이 바지의 끝단
노란 머리 빨간 머리를 만들었지만
바람의 탓 이마의 탓
코끝의 방향은
걸음의 속도는 유행일 뿐
당신이 느리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당신의 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쿵쿵쿵 바람의 발소리
황금빛 먼지의 냄새
  *‘네코이라즈(描いらず)’는 기생 화선이가 먹고 죽은 쥐약.
       (김동인, 「눈을 겨우 뜰 때」)

이근화   1976년 서울 출생. 200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칸트의 동물원』 『우리들의 진화』. 윤동주문학상 젊은 작가상 부문 수상.
 

돈 키호테를 만난 적이 있다 - 최    금    진

문학 병을 앓고 있었다. 어서 서둘러 늙기를 바라는 것 말고는 어떤 것도 내 맘대로 되지 않았다. 재능은 없었고, 그 바닥은 빤히 들여다보일 정도였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꼴이었다. 삶은 유한했고, 그 짧은 시간 속에서 무언가를 꿈꾸는 것은 초라하였다. 그러나 글을 쓰는 것 말고는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갈 것이 뻔했다. 차라리 늙거나 병들거나 죽음을 목전에 두면 욕망은 소멸될 것 같았다. 가진 것 없이 나는 바라는 것이 너무 많았다.
 
세상의 악을 심판하고 정의를 구하기 위한 돈 키호테의 여행은 터무니없이 어리석어 보이지만 그 순수하고도 맹목적인 무지는 나의 희망과 닿아 있었다. 사람이 나이 들어 늙어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돈 키호테가 보여주고 있었다. 이야기 속에 나오는 돈 키호테의 꿈은 내 꿈이었고, 돈 키호테의 패배는 내 꿈의 패배였다. 풍차를 향해 돌격하는 그의 코미디는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사람들은 비웃었고, 그의 말 로시난테는 마르고 볼품 없었으며, 그의 친구이자 하인 산초 판자는 정상에도 들지 못하는 모자란 사람이었다. 세상 물정이 어둡고 사람 관계를 제대로 못하는 나 역시 사람들에게 그렇게 보였을 것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돈 키호테가 실컷 바깥에서 두들겨 맞고 병들어 고향에 돌아와 죽으면서 남긴 말은 “그러나 나는 행복하였다”였다. 하지만 그것은 패배자의 자기 위안은 아니었을까. 나는 진정으로 돈 키호테의 패배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희망이 사람의 목줄을 움켜잡고 함부로 인생을 탕진하는 쪽으로 끌고 다닐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기꺼이 자신의 동의 속에서 이루어지는 적극적인 계약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기꺼이 내 코뚜레를 그 손에 넘겨주었던 것이다. 무작정 따라 걷기, 이끄는 곳이 구렁텅이이든 수풀 속이든 무조건 따라가기. 열정으로 몸이 달아오른 사람에게 선택의 폭은 많지 않다. 늙거나 병들거나 외롭거나 아무것도 갖지 못했거나, 결국, 꿈이 이끄는 쪽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다는 것. 그렇다. 포기할 수 없는 꿈이 그를 몰고 가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그 길 어디쯤인가를 허우적허우적 맹목적으로 걸어가고 있을 것이다.  

돈 키호테를 만나다
나는 노인 하나를 잡았다
공원에 혼자 앉아 있는 걸 붙들어왔다
뒤를 밟아온 나무들은 더 이상의 추적을 포기했다
그는 모르는 게 없고, 안 가본 곳이 없으므로
나는 노인의 딱딱한 등짝에 올라탔다
저기 팽팽 지칠 줄 모르고 돌아가는
당신의 칠십세로 나를 안내하시오,
촛농처럼 아래로 흘러내린 뱃살을 나는 걷어찼다
아귀가 맞지 않는 뼈들이 후두둑
무너지는 소리가 내 안에서도 들렸다
이보게, 그렇게 서둘지 않아도……
나는 노인의 목에 맨 줄을 힘껏 당겼다
희망이 얼마나 지겨운지, 노인이
들고 있는 물그릇을 빼앗아 나는 밟아버렸다
노인이 불쌍하다는 생각은 나쁜 것이다
 
노인은 나무뿌리 같은 손가락을 펴서 땅을 짚은 채
엉금엉금 기기 시작했다
힐끗힐끗 바람 속을 떠다니는 청년들이 쳐다보았으나
아무도 탓하는 사람은 없었다
노인은 천천히 풍차를 향해 걸어갔다
텅 빈 양철깡통 소리
뎅그렁뎅그렁, 밤 12시를 향하여
바람부는 서쪽을 향하여
나는 노인을 몰고 갔다

최금진   2001년 《창작과비평》 신인시인상으로 등단. 시집 『새들의 역사』. 오장환문학상 수상.
 

<총론> 비순수의 순수
―― 고백과 독백을 넘어 대화의 세계로

    이    재    복

문학 논의에서 가장 애매모호하고 난해한 문제 중의 하나가 바로 장르에 대한 이해이다. 장르에 대한 이해는 이미 고대 희랍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보면 문학의 장르를 서정, 서사, 극으로 3분류하고 있다. 이러한 분류는 각각의 장르에 대한 나름대로의 특성을 토대로 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지금까지도 그 근간은 크게 변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장르의 분류가 굳어지면서 문학은 점점 제도화되거나 범주화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서정, 서사, 극이 비록 문학의 보편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세계 각국의 다양한 문학을 수렴하고 범주화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의 경우에도 근대 이전의 문학을 장르의 개념으로 범주화하기에는 명백한 한계가 존재한다. 가령 비교적 많은 수의 작품이 다양하게 남아 있는 조선조의 문학을 서정, 서사, 극이라는 3분법으로 분류하다 보면 가사歌辭, 경기체가景幾體歌, 악장樂章, 전傳 등 조선조만의 특수한 형태를 지닌 작품들은 그 진면목이 제대로 드러날 수 없다. 3분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서구에서도 프라이나 헤르나디의 독특한 분류법이 등장했으며, 우리의 경우에도 조동일에 의해 교술敎述이라는 새로운 장르 개념이 등장하기에 이른다.

지금까지 계속되어온 이러한 장르 구분법은 알게 모르게 문학 전반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해 왔으며, 그로 인해 문학은 통합적이고 총체적인 양식과 표현의 차원을 구현하는 데 일정한 한계를 노정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삶은 서정과 서사 그리고 극이 결합된 총체적인 형태로 드러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장르의 구분은 그것을 불가능하게 했다고 할 수 있다. 탈근대가 도래하면서 장르의 구분이 하나의 도그마로 인식되어 해체의 대상이 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장르의 해체는 단순한 양식의 차원이 아닌 세계 인식의 차원에서의 해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장르의 구분이 전제되면 창작의 주체는 그 범주 안에서 상상과 표현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장르를 넘나드는 창작 행위는 곧 그것의 해체를 의미한다. 그러나 장르 해체의 경우라도 그것이 다른 장르와의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보다는 한 장르 안에서 이루어지는 해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장르와의 경계 해체를 통한 창작 행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가령 시와 소설 사이의 경계를 해체한 시설이라든가, 소설과 수필 사이의 경계를 해체한 에세이 같은 소설 혹은 사소설 같은 것이 비근한 예에 해당하지만 일정한 확산과 공감을 얻지 못해 하나의 시도에 그친 감이 없지 않다. 그만큼 장르에 대한 인식이 창작 주체의 의식과 무의식을 강하게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양상은 장르를 넘나드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경우에도 강하게 드러난다. 소설 속에 시나 극이 수용된다든가, 아니면 그 역 역시 제한된 차원 안에서 드물게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비교적 창작 주체에 의해 많이 행해진 경우가 소설 속에 시를 수용하거나 시 속에 극을 수용하는 경우이다. 하지만 소설 속에 시를 수용하는 경우 결코 그것이 전체 서사에 영향을 미친다거나 양식의 성격을 바꾼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기껏해야 소설 속 주인공의 취향이나 취미를 드러내는 데 기여할 뿐이다. 시의 수용이 인상적인 최인훈의 『광장』의 경우1)를 보아도 그것이 이명준의 대학 시절의 시적 취향을 드러낼 뿐, 조금 더 의미를 부여한다면 이명준의 젊은 날의 고뇌와 감수성을 드러내는 것일 뿐 그것이 소설 전체의 성격을 좌지우지할 만큼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광장』 이외에도 소설 속에 시가 수용된 경우는 많다. 그러나 그 의미는 이러한 차원을 넘어서지 못한다. 시의 경우는 극 양식의 수용이 문제가 될 수 있다. 김지하의 『대설 남南』에서 시인이 수용한 판소리의 판의 양식2)이라든가 고정희의 『초혼제』에서 시인이 수용한 마당굿의 양식3)은 능히 시와 극의 장르상의 넘나들기를 이야기해도 무방할 만큼 성공적으로 우리의 전통적인 극의 양식을 현대시에 적절하게 수용하고 있다. 이것은 이 두 사람이 민중 지향의 예술을 실천적으로 행한 시인들이기 때문이다. 판소리와 마당굿에서 민중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시적으로 실천한 결과물로 단순히 시와 극의 소통을 넘어 전통과 현대의 소통이라는 의미를 보여주지만 90년대 이후 그것이 새롭게 변용되어 계승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의 장르적인 가능성을 말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소설 속의 시, 시 속의 극 장르의 수용은 근대 이후 그 나름의 시도들이 있었지만 시 속의 소설의 수용은 그다지 주목할 만한 경우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시라는 장르의 특성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시는 소설과는 달리 다양한 언어 및 비언어적인 양식들을 수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장르이다. 소설은 태생 자체가 잡스럽기 때문에 다양한 양식들을 수용하여 대화적인 관계를 유지해왔지만 시의 경우는 자기고백이나 독백의 특성이 강하기 때문에 소설만큼 대화적인 관계를 유지해오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시에서 고백이나 독백을 강조하는 경우에는 더더욱 소설의 양식을 수용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고백이나 독백이 세계를 자아화하는 것이라면 자아를 세계화하는 소설의 양식과는 서로 상충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이 사실은 시에서의 소설의 수용이 고백이나 독백의 해체를 전제로 할 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좀더 깊이 있는 공부가 있어야 하지만 시 속에 소설을 수용한 경우는 그러한 서정적인 시의 양식을 해체한 시인들의 작품을 통해 드러난다는 점이다. 시의 해체는 시적인 특성을 고수할 때가 아니라 그것을 개방할 때 성립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시의 해체로 소설의 양식을 수용하는 것은 하나의 좋은 실천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소설의 양식이 들어옴으로써 시의 고백이나 독백의 양식은 대화적인 관계를 유지하게 되고, 견고한 서정의 세계에 하나의 틈이 생기는 것이다. 끊임없이 시 양식의 해체를 겨냥하는 시인에게 이질적인 소설의 양식의 수용은 하나의 또 다른 낯설게 하기의 전략에 다름 아닌 것이다. 시 속의 소설의 수용을 실질적인 작품의 차원을 넘어 소설적인 혹은 서사적인 구조의 차원으로 확장하면 그 전략의 진면목은 보다 명확하게 드러난다. 최근 우리 젊은 시인들이 보여주는 파편화된 서술화 경향도 따지고 보면 시 속의 서사적인 양식의 수용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사실은 시에서의 소설의 수용은 실험적이고 해체적인 양상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가령 오규원 시인이
아가씨여, 저는 마린드라니아 섬의 주인, 거인 카라쿨리암브로이온데 라만차의 돈 키호테님에게 단번에 패해, 아가씨 존전에 뵈오라는 분부를 받았습니다. 아가씨여, 이 몸을 마음에 드시는 대로 처분하옵소서. 미소가 떠오름. 창밖을 보니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가볍게 발을 옮김.
태양신 아폴로가 광활한 대지의 얼굴 위에 그 아름다운 황금의 수실을 펼쳐내자마자 색색소조色色小鳥들이 투정하는 남편의 품속을 빠져나와 라 만차의 지평선의 문과 발코니에 나타난 장밋빛 새벽 여신의 강림을 달콤한 노래로 맞아들일 틈도 없이, 라 만차의 케하다 씨氏 아니 돈 키호테 로시난테에 올라 몬티엘 평야를 출발함. 한 손에 창을 들고 한 손에는 방패를 들고.막막한 들. 그러나 딸깍딸깍 로시난테의 말발굽 소리. ―소리 또는 있음, 그대여. 그대 사랑하는 탓으로 고통을 사랑으로 선택하는 한 하인을, 그대는 용납하소서.4)
                                    *본고 중 고딕 부분은 소설 『돈 키호테』에서 인용. 

라고 노래할 때 시 속에 수용된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는 이 시의 고백적이고 독백적인 구조를 해체하는 이질적인 목소리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시인은 왜 이런 이질적인 목소리를 시 속에 수용한 것일까? 시인이 시 속에 담으려고 하는 것은 ‘양평동’으로 표상되는 소외되고 일그러진 도시의 그늘지고 부정적인 현실이다. 시의 순수성 혹은 시인의 순수성만으로 그 순수하지 않은 현실을 드러내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런 이질적인 목소리를 수용한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시인은 돈 키호테를 등장시켜 자신이 보지 못하는 ‘등기되지 않은 현실’에 대해 반성적인 거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등기된 현실’을 날카롭게 해부하고 그것을 해체하려는 시적 전략이 여기에 내재해 있는 것이다. 순수하지 못한 현실을 순수한 서정적 언어로 드러내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은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없다. 현실이 순수하지 못하다면 그 순수하지 못한 현실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 그것을 즐기고 그것을 토대로 반성적인 거리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타락한 시대 혹은 현실은 타락한 방식으로 접근할 때 보다 진정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오규원처럼 시와 소설의 경계 해체를 통해 새로운 시적 실험을 보여주고 있는 시인으로 장정일을 들 수 있다. 「PP.13~35」에서 그는 “이 작품은 《우리 세대의 문학》 4집에 발표된 박인홍의 소설 「설경」(13~35쪽에 수록)을 시작화한 것으로 해당된 각 페이지에서 얻은 느낌을 시로 변주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이 시는 박인홍의 「설경」 중 13~35쪽을 읽고 그것을 시작화한 작품이다. 소설의 한 대목을 그대로 시 속에 수용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것을 시인이 재해석해서 형상화하는 것이 목적인 것이다. 이것은 이 시의 시적 대상인 「설경」을 시인이 비틀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시인의 이 비틈이 겨냥한 대상은 「설경」이라기보다는 그의 식으로 이야기하면 그건 ‘우리들의 한국’이 된다. 가령 그는
 
‘34~61에게, 혹은 어느 80년대 시인에게’에서
넌 나빠. 무엇이든, 아주 나빠
무엇이든, 팝 아트 식으로 처리하자는 식으로
그래서 넌, 나빠, 나빠, 아주 나빠,
네가 질 책임을 나에게, 나에게만 미루어 놓는
넌 나빠. 그게 나빠, 나빠, 나빠, 나빠, 못써!
팝 아트는 가벼운 것이라구
자꾸 자꾸 가벼워지는 것이지. 그런게, 그게, 나빠, 나빠
모든 책임은, 대중에게만, 있지 않느냐는 식으로
나에게, 나에게, 나에게만, 떠맡기고
자신은 살짝 빠져 달아나는, 너는, 나빠
그러니까, 봐라, 이게, 너희들이, 사랑해, 못사는,
몬로 아니니? 엘비스 아니니? 해사면서
이게 너희들의 추악이지
이게 너희들의 위선이지, 해사면서
자신은 공기처럼 무화되어 사라지는 너. 나빠, 나빠 안 돼
그러지 마, 나빠, 못써, 너, 나빠5)

라고 말한다. 시인이 겨냥하고 있는 대상은 ‘무엇이든 가볍게 처리하고 남에게 책임을 떠맡기고 자신은 빠져 달아나는 추악하고 위선에 가득 찬 자들’이다. 시인이 겨냥한 대상 중의 한 부류가 바로 ‘80년대 시인들’이다. 시인은 ‘우리들의 한국’을 조소하고 비판하기 위해 박인홍의 소설 「설경」,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설경」의 이미지와 ‘트릭 같은 문체’를 시인의 방식으로 비틀고 있다. 설경의 이미지는 잡것이 섞이지 않은 순수 그 자체지만 시인은 이것을 ‘캄캄한 마음’으로 치환한다. 캄캄한 마음이 설경처럼 펼쳐져 있는 것으로 시인에 의해 재해석되는 것이다. 그리고 박인홍이 구사한 트릭 같은 문체는 다시 시인에 의해 추악하고 위선에 가득 찬 자들을 향한 날카로운 비수로 바뀐다.

언제나 수정궁 같은 견고한 체계와 구조로 표상되는 권력을 향해 거침없는 독설을 쏟아내는 시인에게 고백이나 독백의 서정성으로 표상되는 시 역시 해체의 대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시인이 구사한 해체의 방식은 시 내부에서가 아니라 시 외부에서 그것을 구하는 것이다. 시 속으로 다양한 문학 혹은 문화적인 양식을 수용함으로써 수정궁같이 견고한 고백과 독백의 체계를 부수고 해체한다. 이런 점에서 그의 시 속에 소설의 양식이 들어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시인이 겨냥하는 수정궁 같은 문명의 견고함 속에 도사리고 있는 야만적이고 추악한 인간의 욕망이다. 이런 점에서 시의 순수함을 고집하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 보면 허위요 위선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의 순수 이면에 비순수가 내재해 있듯이 비순수 이면에 순수가 내재해 있는 것이다. 시 속의 소설의 수용이 시의 순수성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단정해 버리면 장르와 장르 사이의 대화적인 관계는 성립될 수 없을 것이다. 시의 본질이 고백이나 독백에 있다는 식의 정의는 올바른 규정이라고 할 수 없다. 시 역시 고백이나 독백을 넘어 대화적인 관계 속에서 새롭게 규정될 수 있다. 우리 시에 대한 인식이 지나치게 고백이나 독백을 토대로 하는 서정성에 기울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시가 순수해야 한다는 말, 혹은 순수시라는 개념 역시 이런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순수 혹은 순수시라는 말이 시에서 성립된다는 주장은 언어의 순수성을 이야기하는 것만큼 부질없는 일이다. 이 세상에 순수 혹은 순수시라는 것이 어떻게 존재한다는 말인가? 어떤 존재든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서 성립된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시에서 중요한 것은 시를 넘어선 다른 존재 양식(소설, 극, 영화, 그림, 음악 등)과의 대화라고 할 수 있다. 시 속에 들어온 소설을 낯선 시선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것이 시에 어떤 낯선 변화와 변주를 가능하게 할지 그 가능성을 주목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1) 아카시아/우거진 언덕을/우리는 단둘이/늘 걸어가곤 했다/푸른 싹이/향긋한 버러지처럼/움터나오는 철에/벗은 오히려/하늘을 보면서/말했다/멋있는 서막이/바로 눈앞에/다가 있는 성싶어/아카시아 새싹 같은 말이여/응?//아무도 나빠할 리 없는/꽃 피는 철이 되더니/벗은 또 멋지게 꽃잎을/코끝에 대면서/말한 것이다/아 참 삶은 멋있어/아카시아 꽃내음처럼/기막혀//이리하여/하늘이/저렇게 높아가는/이 무렵//벗은 이윽이/가지에 눈을 주며 말하는 거다/삶은 섬뜩한 것이야/이 아카시아 가지처럼/단단해//그래도 나는/아주 아무렇지 않은 낯빛으로/천천히 한 대 피워물면/그도 하릴없이/담배를 꺼내물고//아카시아/우거진 언덕을/우리는 또 말없이/걸어가는 것이었다
    - 최인훈, 「아카시아가 있는 그림」, 『광장』, 문학과지성사, 1976, pp.31〜32.

2) 사람들이 본시 모두 다 제가끔 저 생겨먹고 싶은 대로 생겨먹어
   그 쌍통 생김새가 하나도 똑같은 놈 없고
   길짐승 날짐승 물짐승에 풀 나무 돌멩이
   왼갖 버러지 갖은 병균나부랭이마자 다 저마다 내노라 하고 뻐겨싸면서 혹은 길게
   혹은 짧게 어떤 놈은 빨갛게 어떤 놈은 퍼렇게 제멋대로 이리저리 각각이 생겨먹었건마는

3) 무당 원은 이뤄야 맛이 나고
     고는 풀어야 맛이 나고
     세상은 평등해야 맛이 나제 ?
마당 네 - 네
박수 나락은 익어야 고개숙이고
     도는 닦아야 빛이 나고
     등불은 달아야 제구실하제?
마당 네 - 네
무당․박수(함께)
     있는 것은 나눠 먹고
     없는 것은 보태주고
     집은 들어줘야 즐거웁제?
마당 네 - 네 그렇고 말고요
- 고정희, 「사람 돌아오는 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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