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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 램프를 켜다

[6회]「안면도 바다」에 관하여 外

by 丹野 2011. 1. 1.

 

 

    

임보 시인의 알기 쉬운 시 창작교실

 

 

 

 

 

 

                               

 

 

  당신도 좋은 시를 쓸 수 있다 [연재 6회]

 

 

 

 

                                                    임 보 (시인 • 전 충북대 교수)

 

 

 

 

 

 

[제15신]

 

「안면도 바다」에 관하여

 

   로메다 님,

   하나의 이미지가 떠오르면 그와 연관된 또 다른 이미지들이 발생하여 이미저리로 발전해 간다는 얘기를 전에 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은 내 경험을 통해서 하나의 이미지가 어떻게 발전해 가는가를 설명해 보려고 합니다. 우선 작품을 먼저 읽어본 다음 얘기를 시작할까요?

 

 

四月 봄 바다가

몸살하는 걸

잠든 섬

갯가에서

처음 보았지

 

갯마루 언덕마다

타는 진달래

진달래 불꽃에 눈이 멀어

쓰러져 혀로 걷는

바달 보았지

 

봄마다

몸살하는

매운 꽃바람

그 바람이 어디서

이는지를

 

잠든 섬

갯가에서

보고

왔었지.

 

                      ―「안면도安眠島 바다」전문

 

 

 

   로메다 님, 어떤 정황인지 상상이 되십니까? 별로 어려운 내용은 아닙니다만 이해가 쉽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안면도安眠島라는 평화로운 이름을 가진 섬이 있지 않습니까? 서산 앞 서해안에 자리한 기다란 섬인데 지금은 연육교가 놓이고 개발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관광지로 이름을 얻었지요. 그러나 15, 6년 전만 해도 아주 한적한 섬이었습니다. 나는 그 ‘안면도(安眠島:편안하게 잠자는 섬)’라는 섬의 이름에 끌려 지도를 펴놓고 자주 들여다보다가 드디어 그 섬을 찾아 차를 몰았습니다.

   송림이 우거진 어느 한 해변에 닿았는데, 4월이었으니까 바다를 찾는 사람들도 없었고 모래사장에 부드럽고 잔잔한 파도가 밀려들고 있었습니다. 동해와는 달리 서해의 바다 물결은 얼마나 부드럽습니까? 그 부드러운 물결의 이미지가 마치 ‘혀’처럼 느껴졌습니다. 부드러운 모래사장을 혀로 계속 핥고 있는 바다, 물결이 혀라는 느낌이 들자 바다가 엎드려 있다는 연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쓰러진 바다’라는 두 번째 이미지로 발전합니다. 그런데 왜 바다가 쓰러졌지? 하는 데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때 갯가의 언덕에는 진달래꽃이 불붙듯이 환하게 타고 있었습니다. 옳지, 저 꽃을 향해 달려가다가 그 꽃이 너무 눈부셔 그만 쓰려졌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로메다 님, 어떻습니까? 내 상상력이 그럴듯합니까? 그런데 쓰러진 바다가 멈추지 않고 계속 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혀로 걷는 바다’라는 세 번째 이미지로 발전합니다. 그리고 한 발견에 도달합니다.

   진달래꽃 해안과 움직이는 바다 사이에 바람이 일어난다고―, 그 바람이 바로 ‘꽃샘바람’이라고―. 해마다 이른 봄 꽃필 무렵 불어오는 차가운 꽃샘바람이 어디서 오는지를 몰랐는데 바로 여기서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로메다 님, 내 얘기를 들으니 충분히 이해가 가지요? 바다 물결의 리듬을 생각하면서 7․5조의 율격에 담았습니다. 그러나 각 연의 분량은 자유스럽게 배치했습니다.

   제1연은 두 개의 7․5, 제2연은 세 개의 7․5, 제3연은 다시 두 개의 7․5, 마지막 제4연은 한 개의 7․5입니다. 각 연의 행의 배열도 7․5의 율격과는 상관없이 자유스럽게 했습니다. 그러나 작은 물결들에 어울리게 비교적 짧게 배열했습니다. 마지막 연은 분량이 적으니까 행의 길이들이 더욱 짧게 되었습니다. 작품 전제의 구성은 기승전결의 4단 구성입니다.

 

   로메다 님, 지난 몇 차례에 걸쳐 작품의 전개 유형들에 관해 말씀 드렸습니다만 내가 제시한 것들은 가장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것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도식적인 전개 구조에 지나치게 얽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지의 발전을 좇아 자연스럽게 펼쳐나가십시오.

   그러면서 어떤 형태가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에 가장 적절한가를 모색하여 결정하면 됩니다. 이것이 정형시와는 다른 자유시의 특권입니다. 정형시는 지켜야 할 이미 정해진 틀이 있지만 자유시는 내 마음대로 작품의 형태를 결정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만들어내도 괜찮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 내용에 가장 합당한 형식을 찾아내야 하는 책임이 따르니까요. 그래서 자유시는 작품마다 새로운 형식을 창조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자유시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자유시가 정형시보다 쉽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큰 오산입니다. 또 부담스러운 얘기를 했나요? 그렇다면 이것도 쉽게 생각하십시오. 생각을 따라 그냥 자연스럽게 전개해 가면 된다고―. 그렇게 많이 쓰다보면 언젠가는 자연히 최선의 방법을 터득하게 될 것입니다, 건필을 기대합니다.

 

 

 

 

[제16신]

 

시의 길

 

   로메다 님, 보내온 편지를 읽고 나는 지금 상당한 심리적 갈등을 느끼고 있습니다. 로메다 님에게 계속 시를 가르쳐야 할 것인지 아니면, 시의 길을 가지 말라고 말려야 할 것인지 망설이지 않을 수 없군요.

   대학입시에 두 번씩이나 고배를 마신, 그러니까 3수생이군요. 시를 쓰기 위해 대학 입시 공부를 포기하고 싶다고요? 실로 조언하기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도 청소년기에 그와 유사한 딜레마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내가 겪었던 일을 말씀드리면 결단하는 데 혹 도움이 될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시골 중학교에 다니면서 멋쟁이 체육 선생님을 만나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얘기를 했었지요? 그 시골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때문이었든지 도의 행정 도시에 자리한 지방의 한 명문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학교에 입학하자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학교의 도서관이었습니다. 시골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수만 권의 책들이 꽂혀 있는 도서관, 나는 매일 방과 후 그 책들에 묻혀 살았습니다. 배고픈 누에가 정신없이 뽕잎을 갉아먹듯이 닥치는 대로 읽었습니다. 그리고 고2에 접어들면서 내 일생의 진로를 문학으로 결정했습니다. 전에는 세상 사람들이 선호하는 법과대학을 나도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고3이 되자 학교에서는 입시 공부를 철저히 시켰습니다. 매월 모의고사를 치르고, 100등 이내의 학생들의 명단을 학교 본관의 현관 위 벽에 게시했습니다. 마치 과거시험에 합격한 인재들을 세상에 알리는 방문처럼 크게 걸었습니다.

 

   나는 고등학교에 들어와 두 선생님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한 분은 교장 선생님이고 다른 한 분은 국어 선생님이었지요. 교장 선생님을 좋아하다니 잘 이해가 안 갈지 모르지만 나뿐만 아니라 많은 학생들이 그 교장 선생님을 흠모했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매주 월요일 아침 운동장에서 갖는 전체조회 시간에 우리에게 꿈을 심어주는 아름다운 말씀들을 자주 하셨습니다. 만일 비라도 내려 운동장 조회를 못하게 되는 경우에는 그 훈화의 말씀을 못 듣는 것이 얼마나 아쉬웠는지 모릅니다. 방학 때면 교장 선생님께 긴 편지를 보내곤 했습니다.

 

   굵은 뿔테안경을 쓰신 국어 선생님은 항상 위트와 유머가 넘쳤습니다. 교과서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예술과 철학 얘기를 많이 들려주셨습니다. 보들레르를 위시해서 랭보나 말라르메 발레리 같은 상징파 시인들, 고흐나 고갱 같은 인상파 화가들, 사르트르나 까뮈 같은 실존주의 철학자들, 그리고 생의 철학자 린위탕(林語堂)의 『생활의 발견』이라든지, 일본의 구라다하쿠조(倉田百三)의 『사랑과 인식의 출발』같은 사색적인 책들을 소개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내가 당대의 유한한 삶을 넘어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길을 꿈꾸며 문학을 선택하게 된 것도 아마 국어 선생님의 영향이 컷을 것입니다.

   3학년 1학기 6월경이나 되었을 것입니다. 하루는 방과 후에 국어 선생님이 나를 부르셨습니다. 몇 개월 동안 모의고사 100등 안에 내가 끼지 못한 것을 보시고 요즈음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궁금해 하셨습니다. 문학의 길로 가겠다고 결심한 후 나는 학교 공부에 별로 마음을 쓰지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대학에 갈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글을 쓰는 것은 학벌과는 상관없는 일이 아닌가. 많이 읽고 많이 써 보는 일이 최선이다. 비싼 등록금을 치르고 대학에 들어가느니보다는 차라리 그 돈으로 내가 원하는 책을 사보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등바등 입시공부에 매달린 친구들을 보며 냉소를 지었습니다. 모의고사 답안지에도 장난스레 시 비슷한 잡문을 적어 넣곤 했습니다.

 

   국어 선생님께 사실대로 말씀드렸지요. 그랬더니 선생님께서 빙긋이 웃으시면서

“그래, 네 말이 맞다. 대학에 들어가 봐야 특별히 배울 것도 없지. 교수들의 이론이야 그들이 써놓은 책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알 수 있고….“ 하시며 내 말에 맞장구를 치셨습니다.

   그러시더니 끝에 가서“그런데 말이야, 대학에는 대학 생활이라는 것이 있어. 학우와 학우들 사이 혹은 스승과 제자 사이의 낭만적인 삶이 있거든. 그건 대학에 가지 않고는 맛볼 수가 없지. 그 낭만적인 대학 생활까지도 별 흥미를 못 느낀다면 가지 않아도 상관없지.“ 라고 덧붙이셨습니다.

 

   로메다 님, 나는 그 ‘낭만적인 대학 생활’을 놓고 며칠 밤을 전전반측하며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래 그 낭만적인 생활이 어떤 것인지 후회되지 않도록 한번 맛보기로 하자. 들어가서 재미없으면 그때 그만 둬도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다시 입시공부에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서울의 괜찮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고(아마 운도 따랐을 것입니다) 그 덕분에 내가 좋아하는 시 얘기를 하면서 밥벌이도 할 수 있는 대학의 직장도 얻게 될 수 있었습니다.

 

   로메다 님, 나는 늘 그 국어 선생님께 감사합니다. 만일 그 분이 그때 분별력이 없는 건방진 나를 보고

“이놈아, 너는 아직 몰라. 대학 가지 않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문학은 대학에 들어가고 난 뒤에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 잔말 말고 입시 공부나 열심히 해!”

라고 나무라셨다면 나는 오히려 반발심으로 대학에 가지 않겠다는 나의 결심을 더욱 굳혔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나는 아마도 반거들충이가 되어 지금까지 떠돌이 인생을 살고 있을 지 누가 압니까?

 

   로메다 님. 인생의 어느 시절이 가장 아름다웠던가 회고해 보면 역시 학창 시절입니다. 곤궁과 시대적인 고통으로 어려움을 적지 않게 겪었지만 인생의 황금시대는 역시 젊음의 학창시절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습니다.

   로메다 님,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다시 그 학창시절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이것이 로메다 님의 물음에 대한 나의 대답입니다.

   졸문 「시의 길」을 덧붙입니다. 한번 읽어보시고 시의 길이 얼마나 고된 길인가를 다시 생각하면서 마음의 결단을 내리기 바랍니다.

 

 

                   [첨부자료]

 

시의 길

 

   시는 한 톨의 쌀도 생산해 내지 못한다.

   말하자면 우리가 일상생활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 시는 하등의 물질적 도움을 주지 못한다. 아니, 도움을 주기는커녕 시를 열심히 읽으면 읽을수록 오히려 그만큼 더 생산의 효율성은 줄어들는지 모른다.

   시를 쓰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경우에 따라서는 인세印稅나 고료稿料의 수입을 기대할 수 없는 바는 아니지만 그것은 다른 소득행위를 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하찮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수입은 시작詩作 행위의 목적과는 상관없는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다. 말하자면 시인의 시 쓰기의 의도는 경제적인 효용성과는 무관하다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물질적인 척도에 따라 평가되고 있는 사회에서 시에 매달려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딱하기 이를 데 없다. 그것도 일시적으로가 아니라 한평생을 시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시인들을 보면 측은한 생각마저 든다. 도대체 그 시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시인들은 시의 고삐에 코가 꿰인 채 소처럼 끌려가고 있단 말인가.

 

   시도 하나의 발언發言이다. 하고 싶은 말을 세상을 향해 내쏟는 일종의 발언이다. 다만 일상적인 언술言述과는 달리 기술적으로 압축 미화美化된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기술적’이라고 하는 것이 시의 특성을 형성하는 시적 장치가 되는 셈이다. 그런데 기술적으로 표현된 그 발언 곧 시라고 하는 글이 경우에 따라서는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기도 한다. 아니 몇 세기를 두고 두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세상을 울리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훌륭한 시는 긴 생명을 지닌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들은 생명이 긴 발언 곧 훌륭한 시를 만들어 보겠다는 욕망 속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몽상인夢想人들이라 해도 무방하리라.

 

   세상을 움직이는 막강한 힘을 가진 사람들로 우리는 흔히 권력을 잡고 있는 정치가나 막대한 금력을 쥐고 있는 실업가들을 든다. 그들은 산을 헐어 길을 만들 수도 있고 바다를 막아 평야를 일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지니고 있는 것은 물리적인 힘이다. 물리적인 힘은 물리적인 세계를 움직일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물리적인 충족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리적인 면 못지않게 정서적인 충족을 또한 요구하고 있다. 그 정서적 욕구는 정치가나 실업가들이 지닌 물리적 힘만으로는 성취되기 어렵다. 정서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 더 나아가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예술가들의 몫이다.

 

   한 사람의 위대한 소월素月이 열 사람의 위대한 재상들보다 세상을 더욱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유구한 역사를 다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이 단 몇 십 년의 과거만 돌이켜보기로 하자. 이 땅에 얼마나 많은 기라성 같은 명재상들이 명멸明滅하며 지나갔던가. 그러나 몇 십 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도 그들의 흔적은 거의 찾을 길이 없다. 천지를 흔들던 그들의 사자후는 어디로 갔는가. 아니 그들의 이름조차 이제 우리에겐 생소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시인의 경우는 어떠한가. 소월素月이나 만해萬海 그리고 육사陸史나 백석白石 들을 보라. 그들이 살아있던 당대에는 세상의 주목을 별로 받지 못한 하찮은 인물들이었지만 이들은 날이 갈수록 세상 사람들의 가슴속에 더욱 형형히 빛나고 있다. 무엇이 그들에게 구원의 생명을 부여했는가. 그들이 남긴 몇 편의 시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림으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모든 시인들의 시가 긴 생명을 지닌 것은 아니다. 수천 명 아니 수만 명의 시인들 가운데 후세의 사람들이 기억해 줄 사람은 몇 십 명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만큼 세상을 울리는 작품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시인들은 기적과도 같은 한 편의 명품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한평생을 내걸고 있는 무모하고 외로운 도박자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세상의 평판을 기다리기 조급한 시인들 가운데는 비평가들을 동원해서 자신의 작품을 선전하기도 하고, 향리鄕里에 손수 시비詩碑를 세워 자신의 작품을 돌 속에 담아 오래 남기고자 하는 사람도 있다. 소중한 내 작품이 눈먼 세상 사람들이 잘 알아보지 못하고 어둠 속에 그냥 묻혀 버리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안타까운 마음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진솔한 시인이라면 보통의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세속적인 욕망에 초연할 수 있어야 하리라.

   시업詩業이란 애초부터 세상의 보상을 기대하고 출발한 것이 아니니까, 자신의 작품에 대한 세상의 평가에 너무 연연해하는 것은 시인의 체통에 걸맞지 않아 보인다.

 

   세상에 드러나 반짝이는 보석들은 몇 개 되지 않는다. 9할이 넘는 대다수의 보석들은 땅 속에 아직 묻혀 있다. 그중 혹 어떤 것들은 광부의 손에 닿아 운 좋게 세상에 드러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머지 것들은 영원한 어둠 속에 갇혀 있으면서도 아무런 불평을 하지 않는다. 진정한 시인은 세상이 그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땅속에 깊이 묻혀 있는 보석들처럼 불평하지 않고 의연히 살아가는 그런 초연한 사람인 지도 모른다.

                      ―『엄살의 시학』 pp.188~189

 

 

 

 

[제17신]

 

시적 장치의 특성

 

   로메다 님, 지난번의 내 글을 읽고 진학의 결심을 새롭게 했다니 반가운 일입니다. 그런데 나의 시 강론은 계속 듣고 싶다니 공부에 지장이 없을지 염려되는군요. 당분간 시에 대한 내 담론 시간을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로메다 님, 무슨 글이든 글을 쓸 때 핵심이 되는 것은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 입니다. 이를 내용과 형식이라고 구분해서 논하기도 하는데 구조주의 문학이론가들은 이렇게 구분한 것을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기도 합니다. 그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수박의 겉과 속의 경계가 모호하지만 분명히 겉과 속이 있는 것처럼, 작품의 내용과 형식이 서로 겹쳐서 그 구분이 명료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할지라도 내용과 형식 즉 주제와 표현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없는 바는 아닙니다. 나는 서로 겹치는 모호성을 극복하기 위해서 내용과 형식이라는 말 대신 ‘편 내용’, ‘편 형식’이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합니다. (내용과 형식에 관한 논의는 첨부자료를 참고하기 바랍니다.)

 

   우리가 맨 처음 거론했던 이미지는 편 내용적인 것이고, 앞에서 소개했던 대우나 기승전결의 구조 같은 것은 편 형식의 범주에서 다룰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시에서 즐겨 사용하는 표현 기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고 또한 그것들이 지닌 특성은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보통의 산문과는 달리 시에서 즐겨 구사되는 표현 형식 즉 시라는 글이 되게 하는 형식을 나는 ‘시적 장치’라고 부릅니다. 시적 장치라고 할 수 있는 대표적인 표현 기법으로 비유(은유), 상징, 전이轉移, 우의寓意, 의인擬人, 역설, 과장, 운율, 대우 등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이들 표현 기법들을 나는 다음과 같이 3가지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첫째, 감춤의 성질(은폐지향성)---상징, 은유, 우의, 전이

둘째, 불림의 성질(과장지향성)---역설, 과장, 비유, 의인

셋째, 꾸밈의 성질(심미지향성)---운율, 대우, 아어雅語

 

 

   첫째, 감춤의 성질은 은폐지향성입니다. 시에서는 산문에서처럼 직설적으로 명료하게 표현하기보다는 은근히 숨겨서 표현하고자 합니다. 어떤 추상적 정황을 구체적인 다른 사물을 끌어다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상징의 기법이 그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비유 가운데 은유의 그 원관념(본의)을 숨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간의 일을 동․식물의 입장을 빌어 표현하는 우의寓意도 그렇고, 자신의 이야기를 타자에 의탁해서 서술하는 전이轉移도 감춤의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불림의 성질은 과장지향성입니다. 시에서는 사실대로 기술하기보다는 사실보다 불려서 표현하고자 합니다. 시는 정보가 아닌 정서 전달의 글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백발이 삼천 발' 같은 과장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고, 논리적인 모순을 담고 있는 역설적인 진술도 과장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에서 구사된 비유도 과장적인 요소를 담고 있을 때 능률적으로 작용합니다. 비 인물을 인물로 표현하는 의인법이나 무생물을 생물로 표현하는 활유법 역시 과장에 근거한 기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셋째, 꾸밈의 성질은 심미지향성입니다. 즉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경향이지요. 시가 예술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에 운율을 실어 율동적으로 표현하려는 것은 미의식의 발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는 대우의 구조 역시 심미성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요즈음 현대시 이론에서는 시어詩語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만 보편적인 시에 보다 적합한 시어들이 없는 바가 아닙니다. 딱딱한 것보다는 부드러운 것이, 추한 것보다는 고운 것이, 속된 것보다는 우아한 것들이 선호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러한 시어들을 만들기 위해서 시인들은 시어의 조탁彫琢을 게을리 하지 않는데 이 또한 심미지향성 때문이라고 아니 할 수 없습니다.

 

   <감춤>과 <불림>과 <꾸밈>, 이 세 가지가 시다운 표현 곧 시적 장치의 특성인데, 나는 이들을 아울러 <엄살스럽게>라는 말로 즐겨 표현합니다. 시는 우리의 생각이나 감정을 엄살스럽게 표현한 짧은 글입니다. 각 장치들에 대한 개별적인 논의는 다음 기회에 할 것입니다. 건투를 빕니다.

 

 

[참고 자료]

 

내용內容과 형식形式

 

   예술 작품을 논할 때 자주 내용과 형식이라는 말이 거론됨을 볼 수 있다. 예술 작품을 내용과 형식으로 양분해서 설명하려는 태도는 멀리는 아리스토텔레스에까지 이어지는 오랜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 흔히 내용과 형식의 관계를 음식과 그릇에 비유해서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작품에서의 내용과 형식의 관계가 음식과 그릇의 관계처럼 분명한 한계를 지닌 것이 아니므로 내용과 형식을 구분하는 일은 무의미한 것이라고 구조주의자들은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은 작품을 이루는 어떤 요소가 내용이면서 형식일 수 있고, 또한 형식이면서 내용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무용 속에서 동작과 육체를 구분할 수 없는 것처럼 내용과 형식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럴듯한 지론으로 보인다. 그러나 좀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양분론兩分論과 불가분론不可分論에는 각기 어떤 문제성을 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품을 이루고 있는 구성 요소들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요소들 가운데 어떤 것은 불가분론자의 주장처럼 내용과 형식의 한계가 모호한 것도 드물지 않다. 그러나 어떤 요소들은 내용에만 관여하는가 하면 또 어떤 요소들은 형식에만 관여하는 것도 없지 않다. 말하자면 작품에서의 주제는 전자의 대표적인 예가 되고 정형시에서의 그 틀은 후자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양분론의 결함은 양면 걸침의 경우를 도외시하고 모든 요소들을 양분할 수 있다고 믿는 데 있고, 불가분론의 문제점은 모든 요소를 걸침의 관계로만 보려는 데 있다. 구분할 수 있는 것도 있고 구분할 수 없는 것도 있다는 사실을 서로 인정한다면 문제는 풀리지 못할 것도 없다.

   걸침의 관계에 있는 요소들도 편 내용적인 것과 편 형식적인 것으로 구분할 수도 있으리라. 시에서의 소재는 편 내용적인 것이고, 운율은 편 형식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아이스크림을 담고 있는 깔때기 과자는 먹을 수도 있는 그릇이니까 편 형식적이라고 할 수 있고, 아이스크림 위에 얹힌 고명 땅콩은 편 내용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아예 모든 요소들을 내용과 형식으로 나누는 일이 거북하고 곤란하다면 편 내용적, 편 형식적이라는 용어로 바꾸어 써도 무방하리라 생각한다. 불가분론자들도 구분의 어려움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 내용이나 형식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요사이 작품의 분석에서 내용과 형식을 거론하면 보수적인 낡은 문학이론에 젖어 있는 것으로 오해하기 쉬운데 이는 크게 잘못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내용과 형식에 상관되는 걸침의 요소일수록 우리는 그것을 회피해 갈 것이 아니라 더욱 문제삼아 분별해 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즉 그 요소가 지닌 어떠한 기능은 그 작품의 내용에 어떻게 관여하고 있고, 또 다른 어떤 기능은 형식의 구조에 어떻게 참여하고 있는가를 보다 치밀하게 따져 보는 일이야말로 보다 가깝게 작품의 구조에 접근하는 길이 아니겠는가. 분별하기 어려우므로 뭉뚱그려 함께 생각하자는 것은 일을 처리하는 현명한 방법일 수 없다. 무용가의 한 동작에서도 춤의 내용과 형식을 분별해 낼 수 있다면 이 얼마나 황홀한 일이겠는가.

                                                  ―『엄살의 시학』pp.188~189

 

 

                                                                                                              

                                                                                            -월간『우리詩』 8월호

 

 

 

출처 / 우리시회 http://cafe.daum.net/uri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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