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 램프를 켜다

대상에 대한 인식과 거리(2) / 조태일

by 丹野 2010. 12. 29.


  

 

대상에 대한 인식과 거리(2)

 

                                   조태일

 

 

 

 

2. 좋지 못한 인식의 여러 유형들

 

 

 

(1) 피상적 인식

 

 

피상적 인식은 말뜻 그대로 대상의 외형만을 단순하게 바라보는 인식

 

태도이다. 이러한 인식태도는 수박 겉핥기식으로 대상의 거죽만을 보여

 

주기 때문에 그 안에 숨겨진 진실이나 의미, 가치 등의 새로운 발견을

 

이끌어내지 못한 체 인식 주체자의 사적인 넋두리나 푸념으로 그치기가 쉽다.

 

 

 

 

(2)관습적 인식

 

 

관습적 인식은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태도가 지극히 고정된 틀에

 

매여 있거나 자동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인식태도는 대상에

 

대하여 누구나 알고 있는 뻔한 사실을 늘어놓기 때문에 진부하게 마련

 

이다. 따라서 사물에 대한 새로운 통찰이나 발견도 있을 수 없다. "시는

 

세계와 감추어진 부분으로부터 베일을 벗기며, 혹은 눈에 익숙한 사물

 

을 처음 보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는 셀리의 말처럼 시 창작이란 우리들

 

의 삶 속에서 낡고 관습적인 틀로 고정되어 버린 사물의 모습을 벗겨서

 

새롭게 조명해 내는 작업이다.

 

그러므로 대상에 대해서 관습적인 시각을 떨쳐 내는 일이야말로 창작

 

하는 사람에게는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할 과제이다. 사고가 낡았는데

 

새로운 언어가 태어날 리 없고, 새로운 세계가 발견될 리 없기 때문이다.

 

 

 

 

(3)기계적 인식

 

 

기계적 인식은 대상에 대한 치열하고 적극적인 사고없이 형식적이고

 

건성적인 관찰로 대상을 시적 공간에 옮겨 놓는 인식태도이다. 이러한

 

인식은 앞에서 살펴보았던 피상적 인식이나 관습적 인식과 마찬가리로

 

대상의 외형만을 대충 바라보는 태도이기 때문에 시적 깊이를 형성할

 

수가 없다.

 

 

  

(4)추상적 인식

 

 

 

'추상적'이라는 말은 문학에서 결코 가치 있고 바람직한 것을 의미하

 

지는 않는다. 특히 시인이 어떤 대상에 대하여 보고 느끼고 생가한 인

 

식의 총체를 구체적인 형상으로 가시화하는 곳이 시적 공간이기에 이

 

'추상적'이라는 용어는 시에서 가급적 피해야 할 성질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추상적 인식이란 대상에 대한 사고방법이나 태도가 구체성을

 

확보하지 못해 내용이 모호하고 불투명하며 그 의미 파악이 힘든 경우

 

이다.

 

 

 

3. 구체적 인식

 

 

시는 어떤 대상에 대하여 일반적인 개념이나 사실 따위를 객관적으로

 

진술하는 문장이 결코 아니다. 시의 세계에는 일간지의 신문기사들이

 

보여주는 피상성과는 달리 구체적인 시적 진실을 담고 있다. 시적 진실

 

이란 이성으로 판단하고 분별해서 얻은 과학적. 논리적 진실이 아니라

 

구체적 체험과 주관적인 감성에 의하여 새롭게 깨닫고 발견해 낸 의미

 

이며 가치이며 세계인 것이다. 또한 이것은 저마다 독특하게 갖고 있는

 

마음의 눈으로 얻은 인생의 진실이기도 하다. 그런데 시가 이러한 시적

 

진실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우선은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인식이 선행되

 

고 바탕이 되어야 한다.

 

 

 

구체적 인식은 대상의 외형적인 관찰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보이지 않는 내면까지 훤하게 꿰뚫어 보는 통찰에 의해서 생겨난다. 그

 

래서 사물의 숨겨진 의미와 세계를 만나고 이를 통해서 우리들 삶의 깊

 

이와 넓이를 확대 심화시켜 가게 만든다.

 

삶을 더욱 넓고 깊게 본다는 것은 곧 인생의 정수이며 가치인 '진실'에

 

접근해 가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워즈워드는 시를 일러 '인생의 내면적

 

진실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했고, 공자 또한 '사람으로서 시를 공부하지

 

않으면 그것은 마치 담벼락에 맞대고 서 있는 것과 같다"고 했다.

 




 

   

4. 대상과 심리적 거리

 

 

 

사람마다 각기 주어진 환경이나 처지에 따라서 대상을 인식하고 받아

 

들이는 마음의 상태, 감정의 개입 등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즉 대상이

 

나 사건 혹은 현상에 대하여 그것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심정적으

 

로 그것과 얼마큼 밀착되느냐에 따라서 마음의 거리가 각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

 

.

 

시 창작에서도 대상에 대한 인식 주체자의 심리적 거리를 갖게 마련

 

인데, 이 심리적 거리는 대상을 어떻게 미적으로 형상화하느냐 하는 문

 

제와 직결된다. 대상에 대한 거리가 너무 멀어도 혹은 너무 짧아도 예

 

술적 형상화에 실패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창작뿐만 아니라 작품

 

을 감상하는 사람에게도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감상자 역시 다른 목

 

적 없이 순수하게 예술작품의 미를 감상할 수 있는 마음의 상태를 필요

 

로 하기 떄문이다.

 

창작에 있어서나 감상에 있어서나 대상의 '미적 관조'에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쓰고 있는 이 '심리적 거리'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

 

은 영국의 비평가 블로프였는데, 그는 이 용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심리적 거리란 미적 관조의 대상과 이 대상의 미적 호소로부터 감상자

 

자신을 분리시킴으로써, 즉 실제적 욕구나 목적으로부터 그 대상을 분리

 

시킴으로써 획득된다.

 

 

 

블로프의 설명에서 알 수 있듯이 '심리적 거리'는 대상을 인식하는 데

 

있어서 자신의 개인적은 목적의식이나 실용적인 목적에서 벗어나 순수

 

하게 대상의 아름다움을 지각할 수 있는 마음의 상태이다. 이렇게 하나

 

의 대상에 대하여 인식 주체자의 실제적인 관심이나 목적을 버리고 초

 

연하고도 순수한 마음이 되는 것은 대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것을

 

향유할 수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심리적 거리는 바로 '미적 거리'가 되는

 

것이다.

 

 

 

프레밍거는 심리적 거리와 '미적 거리'를 똑같은 개념으로 쓰고 있는

 

데 그는 이 '미적 거리'에 대해 말하길, 그것은 공간적 개념이거나 시간적

 

개념이라기보다 오히려 본질상 심리학적인 것이며, 한 개인이 자신에

 

대한 어떤 사적이고 실제적인 관심에서 분리되어 한 대상을 관조할 때

 

그 대상을 향한 그의 태도나 투시화법을 기술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처럼 심리적 거리는 대상을 미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마음의 상태

 

이기 때문에 시를 창작하는 사람은 누구나가 대상에 대하여 심리적 거

 

리를 갖게 된다. 그러나 모든 창작자가 시 창작에 가장 알맞는 심리적

 

거리를 갖는 것은 아니다. 인식 주체자의 태도나 능력, 관점 등 여러 조

 

건에 의해서 거리조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5. 부족한 거리조정과 지나친 거리조정

 

 

부족한 거리조정은 대상과 인식주체자의 심리적 거리가 알맞은 거리를

 

유지하지 못한 경우이다. 즉 대상에 대한 심리적 거리가 너무 짧아서 시인

 

의 감정이 직접적으로 노출되거나 감정의 과잉상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6. 알맞은 미적 거리

 

 

시 창작가에서 대상에 대한 적절한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대상

 

의 미적 형상화에 필수적인 조건이 된다. 그러므로 시를 쓰는 사람은

 

가장 알맞은 거리조정을 위해서 노력해야만 한다. 시적 천재라 하더라

 

도 이 거리 조정에 실패하면 작품은 파탄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시 창작가의 첫출발은 어떤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정서나 사고(관념)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앞에서 부적절한 거리조정의 두 가

 

지 유형을 살펴보아서 알 수 있듯이 생경하개 노출되는 정서와 관념은

 

결코 미적 거리를 유지할 수 없게 만든다. 정서든 관념이든 그것이 '시'

 

라는 형식의 언어로 표현될 때는 시적 장이-리듬, 이미지, 어조, 화자,

 

비유-를 통해 양식화되어야 한는 것이다.

 

 

 

브룩스와 웨렌은 <<시의 이해>>에서 "시와 관련되는 한 관념은 시 속에

 

서 극화되거나 시를 버리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 부가치하다"고 말하고

 

발레리 또한 " 시 속에 들어 있는 사랑(관념)은 과일의 영양분 같이 숨어

 

있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라고 했다. 두 사람의 이러한 말들은 시에서의

 

관념은 산문처럼 직접적으로 노출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관념은 시

 

의 전체적인 내용이나 요소, 형식들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한다. 그

 

자체로 혼자 불거져 나와서는 안되며 시 속에 완전히 융해되어서 우러

 

나오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념의 극화, 관념의 정서화가 이루

 

어질 때 대상에 대한 심리적 거리가 너무 먼 '지나친 거리조정'애서 벗어

 

날 수 있다.

 

 

 

워즈워드는 "모든 좋은 시는 강한 감정의 자연발생적인 표현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 말은 무엇보다도 시에서 주관적인 정서를 강조하

 

고 있지만, 이것은 시인의 감정을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표출하라는

 

의미도 아니며, 더구나 시가 주관적 감정에 사로잡힌 세계라는 의미는

 

더욱 아니다, 워즈워드는 같은 글에서 말을 이어가길 "조금 전에 나는

 

시는 강한 감정의 자연발생적인 표현이라고 했다, 그러나 시는 고요히

 

회상된 정서에서 기원하는 것이다. 그렇게 회상된 정서를 한동안 묵상

 

하고나면 일종의 반사작용에 의하여 그 고요의 상태는 차츰 사라지고

 

처음 명상의 대상이었던 정서와 닮은 제 2의 정서가 생겨나서 실제로 마

 

음 속에 자리잡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훌륭한 창작이 시작되는 것이

 

보통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워즈워드의 이러한 말 속에는 우리는 시의 가장 중심요소인 '정서'란

 

시인의 원초적이고 실제생활의 감정이 아니라 여과되고 순화된 감정인

 

것을 알 수 있다. 즉 이 여과와 순화를 통해 시인은 자신의 감정과 일

 

정한 거리를 유지하게 되며 대상과도 일정한 거리를 갖게 된다.

 

 

 

따라서 시인은 자신의 주관적이고 원초적인 감정을 직접 노출시키지

 

않고 시적 장치를 통해 객관적인 감정으로 전이시키고 변형시키는 것이

 

다. 이것이 주관적 감정의 객관화이며, 감정의 양식화(형식화)이다. 이

 

러한 감정의 객관화에 의해서 대상에 대한 알맞은 미적 거리를 만들고

 

아울러 독자들에세도 시 감상에 필요한 심리적 거리를 마련하게 된다.

 

 

 

 

*[조태일]알기쉬운 시창작 강의 - 책의 원본과 다름을 알려드립니다. (예시문의 시와 해설을 생략하였습니다.)

 

 

 

   

15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