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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 램프를 켜다

대상에 대한 인식과 거리(1) / 조태일

by 丹野 2010. 12. 29.



 

대상에 대한 인식과 거리(1)

    

                             

                                                                           조태일

    

 

 

시를 쓴다는 것은 어떤 대상에 대하여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발견한

 

것을 언어로 가시화(형상화)하는 일이다. 즉 어떤 대상에 대한 인식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작업인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

 

에 존재하고 있는 사물을 오감이라는 감각을 통하여 뇌리에서 반영. 지

 

각함으로써 그 사물의 '현존'과 '형태'와 '성질'을 인식하게 된다. 따라서

 

사물과 세계를 통한 구체적인 인식은 시 창작의 출발점이며, 이러한 인

 

식이 바탕이 되지 않고서는 시를 쓸 수가 없다.

 

 

 

영국의 시인인 흄은 "시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라고 하

 

었다. 이 말의 의미는 사물의 외형에만 우리의 시각과 사고를 고정시키

 

지 말라는 것이며, 특히 피상적 인식에 의하여 왜곡되어 있는 사물의

 

거짓된 모습을 벗겨내고 그 참모습을 보여주는 일이야말로 시의 진정한

 

의무라는 것이다.

 

 

 

우리가 사물이 지닌 그 고유의 모습과 본질에 접근하고 그것들을 정

 

확하게 보아내기 위해서는 일상적으로 해왔던 자동화되고 관습화된 인

 

식태도에서 벗어나 사물을 새롭고도 넓고 깊이 있게 통찰할 수 있어야

 

한다. 사물[대상]에 대한 관습화되고 고정된 시선을 움직이며 움직인

 

폭만큼 사물이 존재하는 세상은 넓어지고 새로워진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대상의 전면에만 고정되었던 시선을 오른쪽 옆면,

 

뒷면, 왼쪽 옆면, 윗면, 밑면, 그리고 대상의 내부까지 옮기면 대상의

 

영역이 그만큼 넓어지고 새로워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선 움직임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인식을 얻어야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시 창작은 대상에 대한 구체적 인식을 통해 그 참

 

모습과 의미를 발견하고 그것을 미적으로 형상화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대상에 대한 인식의 깊이는 곧 시 세계의 깊이와 맞닿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대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인식태도는 어떠했

 

던가를 스스로 물어보고 시 창작에서 바람직한 인식태도란 무엇인가 살

 

펴보기로 하자.

 

 

 

 

 

 

1. 대상을 바라 보는 8가지 시각(8가지 단계)

 

 

 

똑같은 사물이라도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각은 모두 다를 수 있

 

으며, 사고의 깊이에도 차이가 생기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한 송이의

 

장미꽃을 본다고 하자. 우선 그 꽃 빛깔의 아름다움에 눈길이 쏠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향기에 관심을 집중시키는 사람도 있다. 꽃송이만

 

을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파리와 줄기, 가시 등을 포함하는 전체

 

적인 모습까지 세밀하게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어떤 경우에는

 

그 꽃송이를 피워 올리느라 땅 속 깊이에서 묵묵하게 일하는 뿌리의 수

 

고로움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 꽃 속에서 사랑하는 연인의

 

모습이나 마음씨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아름

 

다움이나 본질이란 무엇인가 하는 철학적 사고를 펴 보는 일도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하나의 사물에 대해서도 보거나 생각하는 방향은 차이가 나고

 

다양하기에 인식된 내용이나 깊이도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시

 

쓰기가 사물에 대한 구체적인 인식에서 출발한다고 할 떄 사물을 어떤

 

시각으로 생각하느냐 하는 것은 지극히 중요한 문제이며 시의

 

발상 차원에서도 큰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일본의

 

시인인 이토케이치는 한 그루 나무를 통해서 나타나는 인식의 과정을

 

8가지 단계로 나누어 다음과 같이 예를 들었다.

 

 

 

 

(1) 나무를 그대로 나무로 본다.

 

(2) 나무의 종류나 모양을 본다.

 

(3) 나무가 어떻게 흔들리고 있는가를 본다.

 

(4) 나무의 이파리가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세밀하고 본다.

 

(5) 나무 속에 승화된 생명력을 본다.

 

(6) 나무의 모습과 생명력의 상관관계에서 생기는 나무의 사상을 본다.

 

(7) 나무를 흔들고 있는 바람 그 자체를 생각해 본다.

 

(8) 나무를 매개로 하여 나무 저쪽에 있는 세계를 본다.

 

 

 

 

위에서 예시한 시각의 8가지 다계 중에서 (1)의 단계는 대부분의 사

 

람들에게서 보이는 사물에 대한 시각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일상적으로

 

낯익은 사물이기에 아무런 생각없이 자동화된 인식으로 사물을 지각한

 

다. 따라서 여기에는 사물에 대한 어떤 궁금증이나 호기심도 생겨나지

 

않는다. 시작태도와는 가장 거리가 먼 인식방법이다.

 

 

 

(2)의 단계는 (1)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태도이지만 지극히 일상적

 

이고 관습적인 태도의 수준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3)과 (4)의 단계에서는 나무에 대한 관심을 적극적으로 갖고 의도적

 

인 관찰을 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시가 눈에 보이는 형상을 통해서 보

 

이지 않는 세계와 의미까지 발견하는 일이라고 할 때 우선적으로 사물

 

을 주의깊게 살피는 자세는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단

 

계에서는 비록 사물의 외형적 관찰에 머물고 있어 사고의 깊이는 느껴

 

지지 않지만 대상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기초단계

 

인 것이다.

 

 

 

(5)에서 (6)의 단계부터는 지금까지와 다른 차원의 태도가 나타난다.

 

마음의 눈으로 나무의 내면세계까지 들여다보기 때문에 상식이나 관습

 

적인 시각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5), (6)의 단계는 사고가

 

'나무'라는 대상에만 여전히 머물러 있기에 상상력에 의한 창조적인 인

 

식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7)의 단계에서는 사고가 나무에 얽매이지 않고 그와 관계를 맺고 있

 

는 다른 대상으로 인식이 확대되는 것을 볼 수 있다.

 

 

 

(8)의 단계에 이르면 상상력을 통해서 인식의 놀라운 비약을 이루게

 

된다. 나무를 통해서 나무 저쪽에 있는 세계를 본다는 것은 지금까지는

 

없었떤 새로온 세계를 발견해 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물을 바라보는 이 8가지 단계를 통해서 똑같은 대상이지만

 

인식을 어느 깊이까지 확대시키느냐에 따라서 사물의 모습과 의미가 전

 

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이것을 다시 요약. 정

 

리 해보면 4단계로 나우어 볼 수 있다.

 

 

 

첫째,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보는 단계(관념도 포함)(1~4)

 

둘째, 눈에 안보이는 부분까지 생각하는 단계(5~6)

 

셋째, 관계 맺고 있는 다른 대상에까지 인식을 확대하는 단계(7)

 

넷째, 다른 세계를 새롭게 발견하거나 창조하는 다계(8)

 

 

 

시는 무엇보다도 대상에 대한 창조적인 인식이며 그것을 미적으로 형

 

상화한 언어예술이다. 그러므로 시를 쓰려는 사람들은 일상적이고 관습

 

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얼마나 독특하게 자기 마음의 눈으로 사물을 보

 

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첫째 단계는 시를 처음 써 보는 토보자가 거쳐

 

야 할 단계인데 점차 시 창작이 숙련되면 둘째, 셋째 단계를 거쳐 넷째

 

의 단계, 다른 세계를 새롭게 발견하거나 창조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도

 

록 노력해야 한다. 즉 눈에 보이는 대상 저편에 있는 새로운 세계와 의

 

미들을 창조할 수 있도록 인식의 깊이를 더욱 심화시켜 가야 하는 것이

 

다. 이떄 인식 주체자의 내면세계가 더욱 확대되고 깊어지는 것은 물론

 

이거니와 그러한 시를 읽는 독자들 역시 똑같은 체험을 통해서 자신들

 

의 정신세계까지 넓혀 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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