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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 램프를 켜다

연민의 시선, 따뜻한 세상으로 가는 길 / 김현정

by 丹野 2010. 12. 30.


 

【우리詩월평】

 

 

 

 

  연민의 시선, 따뜻한 세상으로 가는 길

 

                                                 김 현 정 (문학평론가)

 

 

 

* 김순일,「 깡통」(《현대시학》, 2010년7월호)

* 이은봉,「 석모도의 저녁」(《우리詩》2010년7월호)

* 나태주,「 꽃이 지고 있더라고」(《문학마당》2010년여름호)

* 유순예,「 2009년, 9월 귀뚜라미」(《우리詩》2010년7월호)

* 박지우,「 시간의 침묵」(《시에》2010년여름호)

* 오세영,「 댐」(《한국문학》2010년여름호)

 

 

 

1. 연민의 시선, 혹은 사랑

 

 

 

 

  맹자의 말씀 중 ‘사단四端’은 ‘맹모삼천지교’와 더불어 우리에게 많이 알

려져 있는 말이다. 이는『맹자』의 ‘공손추公孫丑’ 상편에 나오는 것으로, 인

간의 본성에서 우러나는 네 가지의 마음씨를 말한다. 즉, 인仁, 의義, 예禮,

지智에서 우러나는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

비지심是非之心이 그것이다. 이 중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라는 뜻을 지닌

측은지심은 다른 심성의 기본이 된다. 어떤 대상에 대해 불쌍히 여기는 마

음이 있으면, 불의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선하지 못한 것을 미워할 줄도, 어

떤 것을 사양할 줄도, 옳고 그름을 가릴 줄도 알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측은지심’과 유사한 말로 ‘연민憐憫’을 들 수 있다. 연민도 불쌍

하고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라는 뜻을 지닌다. 이러한 연민의 시선으로 세

상을 바라볼 때, 세상은 더 밝아지고 따뜻해질 수 있다. 이 시선에 의해 훼

손되거나 상처 입은 대상들이 많이 치유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통

연민의 대상은 소외되거나 결여되어 있다. 소외되어 있다는 것은 원래의

자리에서 밀려났음을 뜻하고, 결여되어 있다는 것은 있어야 할 것이 부족

하거나 부재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소외되고 결핍된 대상들을 연민의 시선

에 의해 ‘원형原型’을 회복하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고 하겠다.

 

 

 

 

골목길에서 밤새 알몸으로 떨고 있는 사랑을 모셔옵니다

공원이나 놀이터에 몰래 내버린 사랑을 모셔옵니다

단물 한 방울까지 다 빨아먹고 냅다 차버린 사랑을 모셔옵니다

구두발로 납작하게 밟아 뭉개버린 사랑을 모셔옵니다

주식시장 바닥에 코풀어 버린 사랑을 모셔옵니다

새벽마다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쓰레기 사랑을 모셔오는 노파

주일날이면 무거운 다리 가볍게 끌고 나가

척박한 자선 상자에 꼬기꼬기 접은 할미꽃 사랑을 심습니다.

           - 김순일,『 깡통』(《현대시학》, 2010년7월호)

 

 

 

 

 

  위 시는 보잘것없어 버려진, 하찮은 ‘깡통’에, 그리고 그 깡통을 줍는 노

파에게 연민의 정을 보내고 있는 작품이다. 골목길에, 공원이나 놀이터에

버려진, 그리고 주식시장 바닥에 버려진 깡통을 노파는 끌어 모은다. 온전

한 깡통은 물론, 채이거나 밟혀 형체가 찌그러진 깡통도, 심지어는 이물질

이 들어있는 깡통까지도 가리지 않고 수집한다. 원래 깡통의 자화상은 “알

몸으로 떨고 있”거나 “몰래 내버”려진, “냅다” 채였거나 “뭉개”진, 그리고

“코풀어 버”려진, 일그러진 모습이다. 그러나 이렇게 훼손되고 상처입은,

그리하여 우울하기까지 한 깡통은 ‘사랑’을 만나면서 생기를 얻게 된다. 아

무렇게나 버려진 쓰레기 깡통이 ‘노파’의 정성스런 손길에 의해 ‘사랑’으

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시인은 이 사랑을 극진히 “모셔” 온다. 이처럼 노

파가 하찮고 보잘 것 없는 깡통에 연민의 시선을 느끼고 사랑으로 감쌀 수

있었던 것은 이 깡통이 불우 이웃에 대한 사랑을 베풀 수 있는 매개가 되기

때문이다. “무거운 다리 가볍게 끌고 나가” 불우 이웃을 돕는 시적 화자의

모습에서 깡통에 대한 사랑은 ‘할미꽃 사랑’으로 승화된다. 시인은 이처럼

아무렇게나 버려진 깡통에, 그리고 생에서 점점 밀려나는 노파에게 연민의

시선을 보내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 시를 통해 우리는 연민의 시

선에 의해 결여된 대상이 ‘사랑’으로 채워지는 모습을 보았다. 이처럼 연민

의 시선은 ‘지금-이곳’의 각박한 현실에 사랑의 물꼬를 터줄 수 있는 매개

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2. 연민의 시선, 상처와 결핍 치유하기

 

 

 

 

  연민의 시선은 가장 친밀한 집단이라 할 수 있는 가족 간에서도 필요하

다. 요즘 가족 간의 대화 부족으로 적잖은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는

데, 사실 그것의 실마리는 연민의 시선에 있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부부

간에도 연민의 정이 있어야만 상대방을 감싸안을 수 있다.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에서, 자신의 부족한 것을 채우려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에서 우리는 연민의 정을 많이 느끼게 된다. 그러

면 부부간의 연민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시 한 편을 보기로 한다.

 

 

 

 

  폴더를 열고 핸드폰의 버튼을 누르자 3백리 저쪽에서 더듬거리는 아내의

목소리 들려왔다

  나머지 한 쪽 가슴에서도 뭉클, 멍울이 만져진다는……

  아내의 목소리가 하얗게 떨려, 내 목소리도 하얗게 떨렸다

  서둘러 광주를 떠나 서울로 왔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늘만 노랗게

어지러웠다

  우왕좌왕 하루를 보내고 일요일 아침, 아내를 싣고 어디론가 차를 몰았다

  도착해 보니 강화도였고, 도착해 보니 석모도였다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그윽한 오후, 보문사 대웅전에 엎드려 울었다

  우느라고 기도는커녕 살려달라고 빌지도 못했다

  어느새 절간 가득 샛노란 황혼이 내리고 있었다

  석모도의 저녁, 긴 계단을 걸어 내려오는 동안 아내가 도리어 걱정 말라며

내 어깨를 툭툭 쳤다

  땅거미가 내려 사방이 캄캄해지자 멀리 인천 앞바다의 불빛들 밝게 반짝

이기 시작했다

  불빛 따라 차를 몰다 보니 눈가가 다시 보송보송해졌다 차츰 내일이 보

이기 시작했다

  문득 나머지 가슴마저 없어져도 살 수만 있으면 좋다는 생각이 환하게

이마에 불을 밝혔다.

                     - 이은봉,『 석모도의 저녁』(《우리詩》2010년7월호)

 

 

 

  아내에 대한 연민의 정을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나머지 한 쪽

가슴에서도” 멍울이 만져진다는 아내의 말에 시적 화자는 “하얗게” 놀란

다. 시의 내용으로 보아 그녀는 이미 가슴 한 쪽을 수술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데, 시적 화자는 다른 가슴마저 떼어낼지도 모른다는 불안

감에 많이 놀란 것이다. 아내에게 아무 말도 못한 그는 다음 날 강화도를

지나 석모도에 있는 보문사로 향한다. 그곳에서 그는 기도도 못하고 펑펑

울기만 한다. 오히려 아내가 나를 위로한다. 돌아오면서 “나머지 가슴마저

없어져도 살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그렇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

는다. 시인은 연민의 시선을 통해 아내의 삶을 들여다본다. 동고동락했던

삶의 이면을 본다. 그리고 동고동락의 힘을 믿는다. 행여 두 가슴을 잃을지

라도 무너지지 않을, 환한 희망의 불빛을 발견한 것이다. 어둠 속에서 불빛

이 더 발하듯, 힘겨운 오늘을 뛰어 넘을, 희망이 담긴 내일을 본 것이다. 이

시에서 우리는 연민의 시선을 통해 아내의 상처를 보듬어 줄 희망의 메시

지를 얻는 광경을 목도하게 된다.

 

 

 

그런가 하면 남매 간의 연민의 정을 엿볼 수 있는 시도 보인다.

 

 

 

 

청양 누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해마다 꽃철이면 같이 꽃을 보자 그랬는데

올해는 그 약속 지키지 못했노라고

 

 

칠갑산 장곡사로 가는 시오리길

휘어져 구불구불 두 줄로 벚꽃 피어 있던 길

멀리서 보거나 가까이 보거나 꿈결 속 같던 길

코끝까지 꽃향기로 매캐하던 길

 

 

그래도 생각이 나 찾아가 보니

올해 핀 꽃들은 어느새 지고 있더라고

그 꽃 다시 보려면 1년은 더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전화기로 들려오는 누이의 목소리에서

아득히 멀리 꽃잎이 날리고 있었다

꽃잎 가운데서도 분홍빛 물먹은 청양의

칠갑산 장곡사 꽃잎이 날리고 있었다

    - 나태주,『 꽃이 지고 있더라고』(《문학마당》2010년여름호)

 

 

 

 

 

  누이와 함께 아름다운 꽃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는 시이다.

해마다 꽃철이 되면 같이 보자던 꽃을 누이의 사정으로 못 보게 된다. 아쉬

움을 달래며 예전에 본 청양의 칠갑산 장곡사 길에 피어있던 꽃을 떠올린

다. “ 멀리서 보거나 가까이 보거나 꿈결 속 같은 길”에 핀, “ 코끝까지 꽃향

기로 매캐하던 길”에 핀 꽃을 말이다. 멀리에서든 가까이에서든 모두 아름

답고 진한 향기를 발산하는 그 꽃길이 그리워질 것이다. 그렇다고 시인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누이를 원망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연민의 정을 가

지고 누이와 함께 했던 꽃길을 기억해낸다. 누이 또한 자신 때문에 약속을

지키지 못한 마음을 달래려는 듯 꽃이 지고 있는 그 길을 다녀온다. 벌써

지고 있는 꽃잎을 보며 1년 뒤에나 다시 볼 수 있을 것임을 시인에게 전한

다. 시인은 누이와 통화하는 과정에서 “아득히 멀리 꽃잎이 날리고” 있는

풍경을 느낀다. 연민의 정을 가져야만 서로 가능한 일들이다. 이처럼 연민

의 시선은 가족 간에 원할한 소통의 매개가 되고 있는 것이다.

 

 

 

 

3. 연민의 시선으로 또 다른 세상 읽기

 

 

  ‘지금-이곳’의 현실에는 다양한 소리가 존재한다. 크고 작은 소리가 혼

재되어 있다. 때로는 단성單聲으로, 때로는 다성多聲으로 다가오는 소리에

우리는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 소리는 곧 어떠한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메시지는 연민의 시선으로 통찰할 때 더 쉽게 감지할 수 있

다. 신동엽 시인이 다소 경직될 수 있는 리얼리즘 계열의 시를 많이 발표했

음에도 우리에게 많은 공감을 주는 것은 그의 시에 연민의 시선이 짙게 깔

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소리

를 연민의 시선으로 포착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겠다.

 

 

2월 16일 김수환 추기경도 가고

5월 23일 바보도 가고

8월 18일 디제이도 갔다.

 

큰 별 셋 받아먹고 만삭이 된

하늘이 노란 똥을 싸댔다.

 

하늘의 말씀을 전파하던 사람도

부엉이바위에 날개를 달아 준 사람도

민주주의를 외치던 사람도

 

없는

 

2009년, 9월

에고 에고 에고……

귀뚜라미,

곡을 한다.

 

노란 똥을 받아먹고 탈이 난

땅이 트림을 해댄다.

 

뚫어, 뚫어, 귀 뚫어……

울타리를 삼킨

 

박 넌출을 향해

귀뚜라미,

단독시위 중이다.

    - 유순예,『 2009년, 9월 귀뚜라미』(《우리詩》2010년 7월호)

 

 

 

 

 

  소통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시이다. 2009년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던 이들이 유명을 달리했다. 다른 것은 소유하지 않아도 법정스님의『무

소유』만큼은 소유하고 싶다고 한 김수환 추기경과 일생을 서민과 인권을

위해 몸 바친 노무현 전 대통령, 그리고 고난과 좌절 속에서도 민주화를 위

해 헌신한 인동초 김대중 전 대통령 등. 그들은 국민들과 벗하며 한평생을

소신껏 살아온 이들이었기에 그들의 타계 소식은 많은 사람들을 더욱 안타

깝게 했다. 이들은 모두 연민의 시선을 통해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파악하려 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그들은 가난과 고통에 시달리고 절망에

빠져 있는 이들의 소리를 듣는 데 게을리하지 않았고, 그것을 실천하는 데

에도 힘썼다. 시인은 이러한 분들의 부재를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그리고

이 시에서 하늘/땅의 세계를 구분하여 바라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2연에

서는 “큰 별 셋 받아먹고 만삭이 된/ 하늘이 노란 똥을 싸댔다.”라고 하여

한꺼번에 많은 이들이 승천했기에 과하여 “노란 똥”을 싸는 장면이 나오고,

6연에서는 “노란 똥을 받아먹고 탈이 난/ 땅이 트림을 해낸다.”라고 하여

그 “노란똥”을 받아 먹은 땅이 “트림”하는 모습이 보인다. “ 큰 별 셋”을얻

은 천상계와 “큰 별 셋”을 잃은 지상계의 희비가 교차하고 있다. “ 큰 별 셋”

의 부재가 더욱 크게 느껴지는 곳은 귀뚜라미가 “뚫어, 뚫어, 귀 뚫어……”

라고 하면서 단독시위하는 장면에서이다. ‘ 지금-이곳’의 소통이 부재하기

때문에 그들의 공백이 더욱 크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지

금-이곳’의 현실에 대한 연민의 정이 없이는 포착할 수 없는 모습들이다.

 

 

 

 

천안함 침몰 5일째 3월 30일

침묵의 두께는 40미터, 수압으로 봉쇄된 문은 열리지 않았다

죽은 사람들은 모두 특별한 사람들이야*

어둠을 뜯어먹던 구덩이의 한 문장이 뜬금없이 튀어나왔다

눈은 자꾸만 밖으로 나간다 구름다리를 건너 출입구가 없는 절벽에 매달려

타란튤라의 동굴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침몰 7일째 4월 1일

내 눈 속에 박힌 새떼들이 날아갔다

사람들은 바다를 믿지 않았다

소금기 묻은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안개 같은 대본은 수시로 수정되었다

심해처럼 어두워진 유족들

아슬아슬하게 시간 위를 걷는 눈

죽음의 냄새를 감추고 있는 바다의 절망을 읽는다

 

침몰 8일째 4월 2일

희망은 납덩이를 채운 채 깊은 수심을 헤맸다

결국, 죽은 자를 구하기 위해 산 자를 바쳤다

생존한계 70시간이 지나가고

바쁘게 걸어온 기억들로 둥글게 발화점을 찾는 눈

슬픔이 시간의 줄을 타고 더 깊어질 바다의 한 페이지에 출렁인다

 

바다는 거대한 묘지

끝내 문은 열리지 앉았다

 

 

*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소설『구덩이』에서 인용

                       - 박지우,『 시간의 침묵』(《시에》2010년여름호)

 

 

 

 

  시인은 지난 봄, 병사들의 청운의 꿈을 앗아간 천안함 침몰 사고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출하고 있다. 생존 한계 70시간이 지나면서 생존을 염원하던

사람들의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지금은

  ‘천안함 침몰 사고’에 대한 모든 것이 거의 마무리된 상태이지만, 이 시에

서 나오듯 천안함 사고 초기에는 생존자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것이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 시는 당시의 현장감을 더 살리기 위해 일기 형식으

로 쓰고 있다. 천안함 침몰 5일째부터 8일째까지 생생한 기록과 안타까운

심정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1연에서는 침몰 5일째의 상황을

그리고 있다. 수압으로 인해 천안함의 문을 열지 못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때 “죽은 사람들은 모두 특별한 사람들이야”라는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소설『구덩이』의 한 대목이 등장한다. 왜일까? 아직 구조되지 않은 병사들

에게서 어떤 죽음의 징후를 발견한 것은 아닐까. 어떤 이들은 이미 그들이

생존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안 것은 아닐까. 때문에 그들이 죽었다면 그들

은 아주 “특별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은연 중에 유포하고 싶은 욕망을 드러

내려 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어쩌면 너무 앞선 생각일지

도 모른다. 아직 생존 가능성을 포기해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7

일째 되던 날“사람들은 바다를 믿지 않”게 된다. “소금기 묻은 바람이 불

어올 때마다/ 안개 같은 대본은 수시로 수정되”는 장면은 불신을 더 가중시

키게 된다. 유족들은 “죽음의 냄새를 감추고 있는 바다의 절망”을 읽게 된

다. 다음 날엔 최악의 사태가 발생했다. “죽은 자를 구하기 위해 산 자”가

희생된 것이다. 점점 “생존한계 70시간”이 넘어서면서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연민의 시선을 통해 천안함에 타고 있던 병사들의 슬픔과 죽음

의 징후들, 절망들을 건져올리고 있다.

 

 

 

 

불온한 식민지 백성인가.

언로言路를 막고, 집회, 결사의 자유를

제한하더니

급기야

곳곳에 보호 감호소를 지어 아예

격리 수용해 버리는구나.

 

한 생은

샘에서 태어나 바다로 가는 길

이 풍진 세상, 물길이 그러하거늘 어찌

삶이 다르겠느냐.

                      - 오세영,『 댐』(《한국문학》2010년여름호)

 

 

 

 

  위 시는 댐의 부정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댐과 인생의 상관성을 노래하고

있다. 댐은 순기능과 역기능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수자원 확보와 가뭄

과 홍수의 피해 감소 등이 전자라면, 수질오염의 악화와 생태계 파괴 등이

후자에 해당한다. 시인은 댐의 부정적인 측면에 촉수를 드리운다. 시인은

댐에 갇힌 물을 “불온한 식민지 백성”으로 비유하여 “언로言路”가 막히고

집회, 결사의 자유”까지 제한 당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심지어는

“보호 감호소”를 지어 격리 수용 당하고 있다고 토로한다. 강은 샘에서 발

원하여 바다로 가는 것이 진리인데, 댐에 의해 그 진리가 밀쳐지고 있는 현

실을 비유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자연의 이치를 ‘흐름’으로 인식하고 있는

시인에게 그 흐름을 막고 있는 인위적인 물막이인 댐은 부정적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2연에서는 ‘댐’과 ‘인생’의 공통점을 드러내고 있다. 강이든

사람이든 막힘없이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강에 대한

연민의 정이, 사람에 대한 연민의 정이 깊게 배인 발화이다. 이 시는 요즘 4

대강 살리기 사업의 일환으로 한창 건설 중인 ‘보洑’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

다. 우리는 “한 생은/ 샘에서 태어나 바다로 가는 길/ 이 풍진 세상, 물길이

그러하거늘 어찌/ 삶이 다르겠느냐”라고 한 시인의 강한 절규를 귀담아 들

을 필요가 있다. 삶이든 자연이든 흐름과 소통이 있어야 된다는 사실을 말

이다.

  ‘지금-이곳’에는 가난과 고통, 좌절과 절망에 익숙한 이들이 참으로 많

다. 대부분 생채기를 입은, 결핍된 대상들이다. 이들을 연민의 시선으로 보

는 일은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부족한 것을 채우는, 아주 중요한 일이라

하겠다.

 

 

 

 

 

 

             김현정

          * 1999년《작가마당》으로 비평활동 시작.

          * 저서『백철문학 연구』『한국현대문학의 고향담론과 탈식민성』

           『대전충청지역의 고향시』(공저) 『윤곤강 전집 1·2』(공저) 등.

          * 대전대, 충북대 강사.

 

출처 / 우리시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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