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詩》월평 ■
그릇의 미학
김 현 정 (문학평론가)
최금진,「 오래된 그릇」(《우리詩》2010년 10월호)
김혜경,「 길, 잃어야겠네」(《우리詩》2010년 10월호)
김선우,「 마흔」(《문학동네》2010년 가을호)
문태준,「 구순의 입과 입술에는」(《문학과창작》2010년 가을호)
전건호,「 굿바이 스트라익아웃」(《시향》2010년 10월호)
고 은,「 내 변방은 어디 갔나」(《세계의문학》2010년 가을호)
1. 그릇의 의미
『논어』에 보면 “불기不器”와 “주이불비周而不比”라는 말이 있다. 군자의 그
릇은 어느 한 그릇에 담을 수 없다는 의미를, 그리고 어느 한 곳에 치우치
지 않고 두루 두루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그릇이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어떤 한 그릇에 국한되어서도 안 되고, 어느 한 그릇에 치우쳐서도
안되는 이 그릇은 옛 선비들이 추구한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였다. 이 책이
나온 지 2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는 ‘그릇’에 대해 종종 말하곤 한다.
지금은 소인과 차별되는 군자만이 갖추어야 되는 것이 아닌, ‘지금-이곳’
을 살아가는 이들의 바람이 되어버렸다. 그리하여 우리는 흔히 “그릇이 큰
사람”이라는 말이나 “그 사람은 그 일을 할 만한 그릇이 못 돼”라는 표현을
쓴다. 전자가 도량이 넓은 사람을, 후자가 그러한 도량을 갖추지 못한 사람
을 의미하는 것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어떤 일을 해 나갈 만한
도량이나 능력을 갖추었다는 것은 그만큼 인생과 세상의 깊이를 잘 헤아린
다는 의미도 된다.
그릇의 원래 의미는 ‘어떤 물건을 담는 도구’이다. 그 그릇에는 다양한
내용물로 채워진다.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거대한 것까지 말이다. 그리고
그릇은 각각이 분리되어 있기도 하지만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기도 한
다. 각각에 담겨 있을 때에는 하나의 개체로서 존재하지만, 그 각각의 개체
를 담고 있는 그릇은 또 다른 형태의 이름으로 된 그릇과 유기적으로 연결
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것은 하나의 우주라는 그릇과 긴밀하게 연결
된 것이다. 이러한 시각으로 보면 이 세상은 각각의 그릇이 모인, 하나의
커다란 그릇이라 할 수 있다. 크고 작은 그 그릇은 하나의 큰 그릇 속에서
보이지 않는 유기적 관계를 유지하며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는 것이다.
2. ‘ 마흔’이라는그릇
시인들은 그릇의 원래의 의미인 어떤 물건을 담는 도구라는 것을 다양화
하여 새롭게 표출한다. 우리의 몸을 비롯하여 만물의 모든 것을 ‘그릇’의
의미로 치환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그릇의 의미를 사전적 정의를 넘어
서서 다양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확장된 의미로 형상화하고 있는 시들
을 보기로 한다.
먼저 마흔의 길목에서 자신의 삶을 노래하고 있는 시를 살펴보자.
누가 깨우지도 않았는데 자꾸 저절로 눈이 떠진다
창밖엔 눈이 오는지 희미하게 몰려오는 한기
두리번거리며 방안을 둘러본다
누런 벽지, 문짝이 떨어져 삐걱거리는 장롱, 땀냄새 나는 베개
어제까지의 일들을 고스란히 인수인계하는
까닭모를 삶의 의지가 눈송이처럼 날아와 쌓이는 동안
나는 하나의 텅 빈 그릇을 생각한다
내가 누운 셋방, 얇은 여름 이불, 잠옷이랄 것도 없는 추리닝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껴입은 사람 형상의 몸
나는 이런 것들의 그릇에 담겨
공중을 헤매다 온 눈송이 같은 내 혼백의 깃털이
아주 조금 따스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머리맡 물그릇은 차갑게 식어있고
저온으로 맞춘 보일러가 돌 듯 심장이 뛰는 소리
할머니가 새벽 군불 지피면
굴뚝을 타고 파랗게 하늘에 스며들던 연기처럼
흩어지는 입김
고개를 옆으로 돌려 보면
내가 흘려놓은 잠꼬대, 무감각하게 몸속을 흘러다니던 사소한 꿈을
생각해 보면 별것도 아닌 오늘의 근심들을
체온으로 살살 녹여가며 나는 한숨을 쉰다
창밖엔 눈이 내리고 있을 것이고
지상의 우묵한 그릇에 쌓여오는 하루의 시간들
식탁엔 어제 먹다 만 저녁 찬과 밥이 식어 있고
마흔이 되면서 문득 늙어버린 내 손을 가만히 쓰다듬어보면
다 먹은 밥그릇에 걸쳐진 오래된 수저 한 벌
내 첫 생일상에 밥과 국을 따뜻하게 올려놓고선
너는 커서 이러이러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여운 눈으로 나를 그렁그렁 바라보았을 아버지가 생각난다
이 텅 빈 새벽에
만물은 각각 그 오래고 낡은 제 그릇에 담긴 채
길고 긴 겨울밤을 나고 있다
마당에 있는 찌그러진 개 밥그릇에도 조용히 눈은 내리고
- 최금진,「 오래된그릇」전문(《우리詩》2010년 10월호)
만물은 각기 주어진 그릇에 담겨 살아간다. 사람 역시 자신이 만든 그릇
을 가지고 삶을 영위해 나간다. 시인은 불혹의 세월을 살아오면서 자신의
몸을 지탱해온 “텅 빈 그릇”을 생각한다. 시인에게 “가여운 눈으로” “너는
커서 이러이러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을 아버지의 말도 떠올려본다.
아마도 ‘출세’를 염두에 둔 아버지의 소망이 담긴 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적 화자의 모습은 그러한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누런 벽지, 문짝이 떨
어져 삐걱거리는 장롱, 땀냄새 나는 베개”와 “내가 누운 셋방, 엷은 여름 이
불, 잠옷이랄 것도 없는 추리닝”, 그리고 “어제 먹다 만 저녁 찬과 밥”과
“다 먹은 밥그릇에 걸쳐진 오래된 수저 한 벌” 등에서 어렵지 않게 이를 확
인할 수 있다. 시인의 궁색함과 진한 쓸쓸함을 엿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
러나 시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그릇에 따라 살아온 지난 날의 삶에 대해 긍
정적으로 바라본다. 지금까지의 삶을 이끌어온 자신의 “혼백의 깃털”에 대
해 “아주 조금 따스하다”고 한 데서 엿볼 수 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부러
워하는 출세의 길은 아니지만, 자신의 “혼백”이 욕망하는 길과 크게 어긋나
지 않은 삶을 살아온 것에 대해 그다지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인은 무
의식적 욕망대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준 ‘그릇’에 감사한다. “오래
고 낡은” 그릇이 되기까지 동행해 준 것에 고마움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자신의 그릇에 대해 심사숙고하던 그의 생각은 만물의 그릇에까지
미친다. 그는 만물이 모두 자신에게 맞는, 필요한 그릇을 가지고 있음을 인
지하게 된다. 그리하여 “만물은 각각 그 오래고 낡은 제 그릇에 담긴 채/ 길
고 긴 겨울밤을 나고 있”다고 노래한다. “마당에 있는 찌그러진 개 밥그릇
에도 조용히 눈은 내리고”라는 마지막 구절은 모든 그릇은 소중하다는 그
릇의 참된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시인은 만물이 각기 자신만의 그
릇을 가지고 있으며, 그 그릇에 따라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자연스
럽게 시사하고 있다.
또한 불혹의 나이에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는 시도 보인다.
열네 살, 첫 달거리가 끝나던 날
월남전에서 왼다리 잃은 삼촌의
삼천리호 자전거 훔쳐 타고 내달린 적 있지
숨 가쁘게 페달을 밟으면 두 바퀴에 칭칭
햇살은 감겨들고 한달음이면 솟구쳐 오르던
언덕빼기 바람보다 더 빠르게
다리를 건너고 들판 지나 아랫마을까지
되짚어올 만큼만 달렸을 뿐
마을의 반경 십 리도 벗어나지 못했네
떠남과 돌아옴의 경계 그 안전선 언저리에서
가슴 졸이며 머뭇거렸을 뿐
밋밋한 길바닥 같은 마흔 해
나 이제라도 길 잃어야겠네
해묵은 페달 기운차게 밟아
사뿐히 바람을 싣고 녹슨 바퀴살에
눈부신 그리움 챙챙 감으며
당신 향한 일방통행의 길 좇아
삼천리보다 더 머나먼 세상 밖으로
나 이제부터
- 김혜경,「 길, 잃어야겠네」전문(《우리詩》2010년 10월호)
김혜경의 시는 불혹의 나이를 맞아 생의 ‘안전선’에서 벗어나 미개척의
새로운 길을 찾아가겠다는 의지를 잘 표출하고 있다. 위 시처럼 인생에서
‘불혹’이 주는 의미는 적지 않다. 이미 알려진 대로 공자는 나이 사십을 어
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불혹의 나이로 보았다. 그만큼 자신의 철학
과 가치관이 확고해진 시기로 본 것이다. 그런데 공자가 자신의 삶을 토대
로 규정지은 이 불혹이라는 개념은 지극히 보편적이면서도 주관적인 것이
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삶을 지향하지만 모두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
문이다. 이 시에 나와 있는 것처럼 불혹까지 걸어온 시인의 인생은 지극히
“밋밋한 길바닥과 같은”, “ 떠남과 돌아옴의 경계 그 안전선 언저리”에서 조
금도 벗어나지 않은, 모범적인(?) 삶이었다. 기존의 윤리와 질서에 충실한,
흐트러짐 없는 생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삶보다
는 이성에 충실한, 의식적인 욕망에 길들여진 인생이었다. 그러나 시인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에 대해 회의감을 표출한다. 모험이 결여된 삶
의 방식에 문제제기를 던진 것이다. 그리하여 시적 화자는 생의 모험을 꿈
꾼다. 그동안 억압하거나 모른 체 했던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
인 것이다. 그리하여 “가슴 졸이며 머뭇거렸”던 떠남과 돌아옴의 경계선에
서 탈출하기로 마음 먹은 시적 화자는 “나 이제라도 길 잃어야겠”다고 다짐
한다. 의식적인 욕망에 충실한 삶에서 무의식적 욕망에 귀기울이는 삶으로
전환한것이다.“ 당신 향한 일방통행의 길”을 걸어가겠다고 노래하고 있다.
이렇듯 시인은 불혹의 나이가 되어 안전하지만 무료한 일상에서의 탈출을
감행하게 된 것이다. 이는 자신의 내면에 자리한, 또 다른 그릇을 발견하였
기에 가능한 것이다.
내가 피 흘렸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공기방울이
내게 다가오는 저녁은 무서운가
나를 기억하는 공기방울을 쫓아
수목원에 들어선 길이었다 들어서고 나니
마흔이었다 폐업 신고중인 수목원에서
출가한 시인의 소식을 듣는다
꽃잎이 느리게 졌다
누가 죽었다는 얘기를
다시 태어나려 한다는 얘기로 들을 때처럼
평화롭다
바람이 느리게 불어
공기의 결에 난 상처 딱지를 살살 떼어내고
기억하는 가장 쓸쓸한 배꼽들에 연씨를 심어드린다
누군가는 아직도 내게 출가를 권하지만
출가해 수행자가 되면
내게 오는 모든 이를 사랑해야 할 텐데
마흔,
나는 이제 세상에 이해 못할 사람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아직 그 모두를 사랑할 자신은 없어서
편협한 사랑이 용서되는 시인으로 남기로 한다
사라질 수목원의 정문 위에 붉은 공기방울을 찍어 비문을 쓰면서;
여기까지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려왔지만
여기서부터 나는 시속 1센티미터로 사라질 테다
(날이 저문다……킥킥……공기방울들이 터진다……억울하지 않다……
너를 찾으면서……킥킥……살아 있다면……누구나 마흔은 될 테니까)
- 김선우,「 마흔」전문(《문학동네》2010년 가을호)
위 시는 성聖과 속俗의 경계에서 ‘속俗의 성聖’을 읽어내고 있는 시이다.
폐업으로 인해 사라질 수목원에서 출가한 시인의 소식을 듣는다. ‘ 출가’에
대한 ‘연緣’이 지속적으로 머무르고 있던 시적 화자는 꿈틀한다. 내재된 평
상심이 잠시 흔들린 탓일까. 그러나 시인은 곧 “누가 죽었다는 얘기를/ 다
시 태어나려 한다는 얘기로 들을 때처럼”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 ‘꽃잎’이
지는 것을 다시 피어나기 위한 것으로 보듯, 시인은 ‘출가’한 것을 ‘성聖’에
서 태어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아니 출가의 의미는 ‘성’을 통해 ‘속’
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듯 싶다.
이는 “상처 딱지를 살살 떼어내고/ 기억하는 가장 쓸쓸한 배꼽들에 연씨
를” 심는 일이기도 하다. 훗날 그 ‘연씨’는 진흙이 있는 연못에서 싹을 틔
우고 꽃을 피우게 된다. 모두 ‘마흔’을 통해 얻어진 것들이다. 출가의 유혹
도 이겨내고, “ 꽃잎이 느리게” 지는 것을 관조하는 것도 결국 마흔이 될 때
까지 치열하게 살아온, 켜켜이 쌓인 내공의 힘 때문이다. ‘마흔’이라는 나
이에 이르기까지 살아온 삶은 속도 위주의 패기/열정의 삶이었다. 그리하
여 시인은 “여기까지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려왔지만/ 여기서부터 나는 시
속 1센티미터로 사라질 테다”라고 다짐한다. 시인은 마흔 이전의 삶을 정리
하려 한다. 수목원이 폐업으로 사라지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해
서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하지는 않는다. 그 공간에는 “나를 기억하는 공기방
울”이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마흔이 넘어도 그 이
전에 남아 있는 것들에 애정의 눈길을 보낸다. 그리고 마흔이 된 시인은
“이제 세상에 이해 못할 사람이 없다는 걸” 어느 정도 알게 되었어도 출가
의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아직 “내게 오는 모든 이”를 모두 사랑할 만큼 그
경지에 오르지 못했음을 겸손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편
협한 사랑”이 어느 정도 용서되는 ‘시인’의 길을 계속 가기로 한다. 아주
느리게 말이다. 이처럼 불혹의 나이가 되면서 시인은 세상에 이해 못할 사
람도 없어지고,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법도 어느 정도 터득했지만 그렇다
고 자만하지 않는다. 마흔이 인생의 종착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해서도 그러하다. 그리하여 시인은 ‘성 속의 속’
보다는 ‘속의 성’을 택한 것이다. 이것이 어쩌면 그를 더 큰 그릇으로 만들
어줄지도 모르겠다.
3. 세상이라는 그릇
불혹이 주는 의미는 이처럼 묵직하다.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지만, 이전
과는 다른, 불연속적 연속성을 지닌 어떤 새로운 의미가 있다. 그것은 만물
이 제각기 자신만의 그릇을 지니고 있음을 어느 정도 알게 해준다. 그리하
여 그릇의 단독성의 의미를 넘어 복수성의 의미를 인지하게 된다. 그릇의
복수성, 그릇이 다양하되 결코 동일하지 않은 어떤 독특함을 투시하고 있
는 것이다.
이러한 시선으로 불혹의 나이를 두 번이나 경험했을 구순 할머니의 그릇
을 들여다본다.
내 옆집 구순九旬의 입과 입술에는 작은 언덕이 하나 느릿느릿 움직여
갔습니다
구붓하게 걸어갈 때 큰 귀가 풀잎처럼 떠 있었습니다
숨이 가쁘고 지난 해 풀벌레 소리가 났습니다
가끔 어떤 속말에는 잔물결처럼 웃고 이내 허물어지듯 손을 내저었습니다
앉아도 꽤 여럿이 앉을 긴 의자에 혼자 앉았습니다
흐릿한 빛이 지나가는지 슬며시 눈을 감았다 떴습니다
두어 번 물어도 그렇지, 그러지, 라고만 나직이 말했습니다
구순의 입과 입술에는 저 먼 계곡처럼 무른 구름더미가 가득하였습니다
- 문태준,「 구순의 입과 입술에는」전문(《문학과창작》2010년 가을호)
구순 할머니의 삶의 여유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고령화사회가 되면서 구
순九旬까지 사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구순이 더 이상 꿈의 나이가
아닌 현실적인 나이가 된 것이다. 노인들의 입에서 심심치 않게 나오는
‘8899234’(팔팔하게 구십구세까지 살다가 이삼일 고생하다 죽는다는 의
미)라는 말도 아주 허황되게 들리지 않는다. 장수하되 ‘건강하게’ 살고 싶
은 욕망을 담고 있는 이 말은 이제 모든 사람의 바람이 된 것이다. 그러나
위 시에 나오는 구순의 할머니는 그리 건강한 모습은 아니다. “숨이 가쁘
고” 귀에서 “풀벌레 소리”도 나고, 귀도 잘 안 들리는 모습에서 어렵지 않
게 감지할 수 있다. “ 앉아도 꽤 여럿이 앉을 긴 의자에 혼자 앉”아있는 광
경에서는 진한 쓸쓸함을 엿볼 수 있다. 이렇듯 외롭고 쓸쓸한, 그리고 건강
도 여의치 않은 시적 화자를 시인은 따뜻하게 감싸안는다. 시인을 통해 시
적 화자의 긍정적인 면을 발견하게 된다. 화자의 입과 입술을 통해 “작은
언덕이 하나 느릿느릿 움직여”가는 모습을 보고, “저 먼 계곡처럼 무른 구
름더미”와 같은 촉촉함도 감지하게 된다. 구순이라는 연륜에서만 엿볼 수
있는 생기와 여유이다. 그리고 “가끔 어떤 속말에는 잔물결처럼 웃고 이내
허물어지듯 손을 내저었습니다”라는 구절에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천진난
만함도 보인다. “두어 번 물어도 그렇지, 그러지”라고 나직이 말하는 장면
에서는 불혹, 지천명, 이순 등의 단계를 초월한 ‘긍정’의 힘도 보인다. 이렇
듯 시인은 구순 할머니를 통해 ‘구순’이라는 연륜이 지닌 느림과 긍정의 미
학을 발견하고 있다. 시인은 구순이라는 ‘그릇’에 내재된 커다란 힘을 들여
다 보고 있는 것이다.
이제 눈을 돌려 범종의 내면을 보기로 한다.
영국사 범종이
직구 변화구 커브를 뿌린다
전율하는 모세혈관
예측할 수 없는 실핏줄의 파동
헛스윙, 파울이 거듭되는 동안
외야석 은행나무 노랗다
무소의 뿔처럼 받아 넘길 공을
흘려보낸 손 끝에
엘로카드처럼 그믐달이 걸린다
띠리릭 걸려온 벨소리에
초점을 잃은 눈 연신 헛스윙을 한다
뿔뿔이 흩어지는 뜬구름
참새들의 야유를 향해
견제구로 낙차 큰 커브가 난사된다
백팔 개의 비수같이 파고드는 슬라이더에
가슴 시퍼렇게 멍이 든다
텅 빈 공 하나에 생을 맡겨야하는
투 쓰리 풀카운트
풀벌레마저 숨을 죽이는 찰나
범천을 넘나드는 마지막 종소리
무심으로 空을 받아넘기자
텅 빈 몸을 진동시키는 공명음
산허리를 훌쩍 넘긴다
십 년 묵은 체증 한꺼번에 날리는
만루 홈런
- 전건호,「 굿바이 스트라익아웃」전문(《시향》2010년10월호)
큰 절에 가면 범종梵鐘이 있다. 절 한 켠에 종대에 매달려 있는 범종은 당
목撞木으로 친다. 그 종은 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공명음을 내게 된다. 바
람에 따라 제각기 종소리를 내는 풍경風磬과는 사뭇 다르다. 시인은 범종의
울림을 야구에 비유하여 다양하게 형상화한다. 범종은 “직구 변화구 커브”
를 다양하게 뿌리는 대상이고, 당목은 종을 치는 대상이다. 그러나 어떠한
조건들이 맞아야 홈런이 가능하듯, 종도 당목과 절묘한 우발성이 있어야
강한 공명음을 발산할 수 있다. 그런데 범종과 당목의 엇박자로 인해 계속
“헛스윙, 파울”이 나오게 된다. 그에 따라 “외야석 은행나무”도 노랗게 되
고 “무소의 뿔처럼 받아 넘길 공을/ 흘려보낸 손 끝”에는 엘로카드처럼 “그
믐달”이 걸리기도 한다. 이렇듯 파울과 헛스윙으로 종은 “가슴 시퍼렇게 멍
이”든다. 그러다가 범종과 당목 사이의 우발성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한
방에 의해 “텅 빈 몸을 진동시키는 공명음”이 산 너머까지 훌쩍 퍼지게 된
다. 이러한 우발성이 가능했던 것은 “무심으로 空”을 받아넘겼기 때문이다.
사심私心을 버린 무심無心에다가 “공空”이 보태져 가능했던 것이다. 범종도
하나의 큰 그릇이라 할 수 있다. 그 큰 그릇이 당목이라는 그릇과 절묘하게
만나야 제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릇 사이의 유기적 관계도
우발성에 의해 빛을 발하게 된다. 범종과 당목의 관계를 투수와 타자의 관
계로 본 점이 독특한 이 시는 범종을 통해 그릇 사이의 우발성을 노래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대상의 폭을 좀 더 넓혀 우리 국토를 형상화하고 있는 시도
보인다.
어쭙잖구나
삼천리강산이 모조리 서울이 되어 간다
오 휘황한 이벤트의 나라
너도나도
모조리 모조리
뉴욕이 되어 간다
그놈의 허브 내지 허브 짝퉁이 되어 간다
말하겠다
가장 흉측망측하고 뻔뻔한 중심이라는 것 이것이 되어 간다
서러웠던 곳
내 마음의 개털 바닥
해걸이 명자꽃이 똑똑하던 곳
무식한 아버지
묵은 밭 어둑어둑 갈던 곳
소작료 37제로 뼈 빠져 버린 곳
썩은 한숨의 곳
커다란 달밤
누군가가 그 달밤에
식칼 갈아 허공 포 뜨며 번뜩이던 곳
두고 온 그곳
내 변방은 어디 갔나
- 고은,「 내 변방은 어디 갔나」전문(《세계의문학》2010년 가을호)
모든 것이 중심을 닮아가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시이다.
“삼천리강산”이 모두 “서울”과 “뉴욕”으로, “그놈의 허브 내지 허브 짝퉁”
으로 변해간다고 직설적으로 폭로하고 있다. “가장 흉측망측하고 뻔뻔한
중심”과 흡사해지는 광경에 시인은 분노한다. 시인은 자신이 살던 옛 터전
인 변방이 ‘중심’으로 바뀌어 사라진 것에 발끈한다. 그렇다고 그곳이 대부
분의 시인의 고향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있고 행복한 추억이 있는 공간도
아니다. 오히려 그곳은 “서러웠던 곳”이다. “ 무식한 아버지”가 존재하는 곳
이고,“ 소작료 37제로 뼈 빠져 버린 곳”이며, “ 썩은 한숨의 곳”이기도하다.
그럼에도 시인이 이처럼 분개하는 것은 그곳에는 서러움과 아픔이 있지만,
잊혀지지 않는 “명자꽃”의 모습과 “달밤”의 모습도 존재한다. 또한 그곳은
자신을 키워준 곳이기도 하고, 꿈과 이상이 싹튼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한
“내 변방”이 “이벤트”에 의해 서울화로 된 것이다. 그것도 제대로 된 서울
이 아니라 “짝퉁” 서울이 된 것이다. 변방에 있던 서민적이고 정이 넘치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자본만이 판을 치는 서울 세상으로 바뀐 것이다.
시인은중심이 ‘변방’을 흡수하여 중심을 더 키우는, “ 뻔뻔한 중심”이 되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중앙과 지방이 아닌, 지역과 지역이라는 균형
적인 시각에 의해 발전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을 제기한 것이다. 이는
곧 중심의 그릇과 변방의 그릇이 각기 역할이 있는데, 이 변방의 그릇을 중
심의 그릇에 편입시킴으로써 한 쪽 그릇의 기능이 상실되는 것을 안타깝게
보고 있는 것이다. 이 시를 통해 시인은 중심과 변두리의 그릇에 내재하는
차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그릇 사이의 유기적 관계를 존중해 주는
그러한 모습을 희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김현정
* 1999년《작가마당》으로 비평활동 시작.
* 저서『백철문학 연구』
『한국현대문학의 고향담론과 탈식민성』
『대전충청지역의 고향시』(공저)
『윤곤강 전집 1·2』(공저) 등. 대전대, 충북대 강사.
출처 / 우리시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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