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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 램프를 켜다

시적 진술 / 오규원

by 丹野 2010. 12. 19.

 

 

 

시적 진술 / 오규원

 

-시적 진술과 설명-

 

다음의 작품을 보자

 

복사꽃 피고, 복사꽃 지고, 뱀이 눈 뜨고, 초록 제비 묻혀 오는 하늬바람 위에 혼령 있는

하늘이여, 피가 잘 돌아······· 아무 病 없으면

가시내야, 슬픈 일좀, 슬픈 일좀 있어야겠다.

--서정주, <봄>

 

이시는 앞서 보아온 묘사형의 시와는 사뭇 다른 데가 있다. 하늘이여 “피가 잘 돌아······· 아무 病 없으면 / 가시내야, 슬픈 일좀, 슬픈 일좀 있어야겠다.”는 시행의 언술 형태의 특성 때문이다. 얼핏 보아 묘사형의 작품 속에 끼어드는 설명과 유사해 보이지만, 설명과는 아주 다른 것이다. 이른바 내가 시적 진술(詩的陳述)이라고, 시적 묘사(詩的描寫)와 더불어 시적언술의 특징을 드러내는 큰 갈래 중 하나로 구분하는 것인데, 외형상 드러난 모양으로는 독백이다. 그러나 이 독백은 의미 있는 깨달음을 바닥에 깔고 있어 정서적 호소력이 큰 표현이다. 이 시적 진술과 설명 또는 묘사의 차이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이 작품의 언술 형태를 분석 검토해 보자.

 

복사꽃 피고, 복사꽃 지고, 뱀이 눈 뜨고, 초록 제비 묻혀 오는 하늬바람 위에 혼령 있는

하늘(이여)

 

여기까지는 봄날과 하늘을 주관적·객관적으로 묘사한 부분이다. 주관적이라고 함은 ‘혼령 있는 -> 하늘’로 하여, 하늘에 특정한 의미가 부여되어 잇기 때문이며, 나머지는 모두 봄날에 있을 수 있는 객관적 사실의 열거이다. 그러니까,

 

하늘이여

 

의 밑줄 부분은 묘사형태의 구문에서 흔히 탈각될 수도 있는 작가의 감정을 덧붙이기 위해 사용한 영탄법(咏嘆法)의 구사이다.

 

피가 잘 돌아······· 아무 病 없으면

가시내야, 슬픈 일좀, 슬픈 일좀 있어야겠다.

 

위의 시행 가운데 좀 느닷없이 삽입된 ‘가시내야’는 일정한 대상을 두고 표현한 것이 아니다. 앞과 뒤의 시행을 보다 효과적으로 강조하고, 마치 누구에겐가 속삭이듯, 부르짖듯, 탄원하듯 하는 정서적 효과를 갖도록 하는 돈호법(頓呼法)이다. 그러므로 이 시행에서 돈호법이나 반복법을 제외하면 아래와 같이 된다.

 

피가 잘 돌아······· 아무 病 없으면

슬픈 일좀 있어야겠다.

 

이 구절을 앞에서 설명적이라고 지적한 것과 비교해 보자.

 

계란꽃 질긴 중기 힘들여 꺾어

가슴털 껄끄러운 미군에게 주던 언니도

미군카메라 앞에서 초콜렛 꼭 쥐고 사진 찍히던 동생도

내겐 단지 구경거리였다.

난 일곱 살이었으니까.

 

묘사된 경험적 사실들이 그 자체로 독립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구경거리’라는 시적화자인 ‘나’의 설명에 구체성을 부여하는 열거자료로 되어 있다. 그러니까,

 

-----------

-----------언니

-----------동생

으로만 묘사될 때는 경험적 사실의 객관적 정황으로 독립해 있게 되지만,

 

-----------

-----------도

-----------도

내겐 단지 구경거리였다.

난 일곱 살이었으니까.

 

라고 했을 때는 경험적 사실이 설명의 내용으로 바뀐다. 즉 “내겐··········일곱 살이었으니까.”라는 표현이 5행을 모두 설명의 구체적 내용으로 흡수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피가 돌아······· 슬픈 일 좀 있어야겠다.”는 설명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독특한 독백이다. 다시 말하면 작가가 심리를 객관적으로 묘사하려 하지 않고 직접 토로하는 형식이다. 그러므로 이런 시적 진술은 묘사와 다른 형태를 띠게 된다.

다음의 예를 보자

 

A)

배꽃가지

반쯤 가리고

달이 가네.

 

경주군 내동면

혹은 외동면

불국사 터를 잡은

그 언저리로

 

배꽃가지

반쯤 가리고

달이 가네.

--박목월 <달>

 

 

B)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너머 산 너머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너머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싫여·······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시 오면,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 앉아 앳되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박두진 <해>

 

A)와 B)는 시적 묘사와 시적 진술이 보여주는 전형적인 차이이다. 그러니까 시적묘사는 근본적으로 언어를 회화적인 방향으로 가시화하고 시적 진술은 독백의 양상으로 가청화한다. 시적 진술은 시각적 인식과 맞닿아 있는 묘사와는 달리 청각을 통한 설득과 깊은 관련을 지니고 있다. “피가 잘 돌아······· 슬픈 일좀 있어야겠다.”가 돈호법이나 반복법을 차용하고 있음도 그러한 까닭에서이다. 뿐만 아니라 이 시구는 근본적으로 역설(paradox)의 구조 위에 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피가 잘 돌고’ ‘아무 病’ 없는 봄날이면 당연히 기쁜 일 좀 있을 만 하다. 그러나 우리들 삶이 늘 그러하듯, 현실은 그와 다르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기쁜 일 좀 있기는커녕 슬픈 일 조차 없는 날의 절망이다. 그 절망적 깨달음의 표현이 바로 ‘슬픈 일좀 있어야겠다.’이다.

 

(오규원의 현대 시작법 21쇄 발행 중 P128~P132 발췌)

 

 

-참고-

 

같은 책에서 동시인은 묘사의 종류를 4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즉, <설명적 묘사>와 <암시적 묘사>, 그리고 <주관적 묘사>와 <객관적 묘사>이다.

 

 

 

 

     
Memories Of You / David London